정 떼기, 휘어진 세상, 관계 자르기, 파묻히기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새로운 자리로 옮겨야할 것 같은 타이밍에 제안을 했다. 결과치는 결코 일관되지 않았다. '아..모자란 저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시다니..."
이건 '니가 제안한 첫 번째 내용은 좋아서 내가 오케이한건데, 두번째 제안은 좀 아닌 것 같아'라는 말이다. ㅋㅋ '머리검은 존재라 했던가?'. 세상에 확실한 건 없다. 일단 무언가 주고 나면 결코 Pay back을 20%라도 기대하면 상처가 된다.
정이라는 풍선을 떼면 팔이 잘려나가는 착각이 든다. 이건 타인의 문제가 아니다. 내 자신의 문제다.
다들 가치관은 다르다. 내 경우에는 '전문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주변에서 나오는 사탕발림같은 칭찬에 난 내가 전문가인 줄 알았다. 결과를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단순히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전문성의 유일한 인정은 그 사람의 인력 노동을 고용했을 때 지불하는 금전적 가치에 정비례한다'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겠다던 그 甲사의 甲 오브 甲 전무님의 말씀과는 달리 그들은 끈임없는 비용의 네고를 요청했다. 깍여나가는 것은 내 전문성이 아니었다. 그냥 내 일상 생활력이었다. 그들이 20%를 깍으면 '내 아내와 딸아이에게 제공될 수 있었던 더 좋은 것의 20%가 깍여나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런 네고를 치면서 '스스로 인간적이라고 자위를 하는 중으로 보인다'. 그래도 이 중에서 내가 좀 더 낳은 인간아니냐고..ㅋㅋ
세상 일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칼로 무자르듯 자를 수 없다고 본다. 여러 인간이 붙어있을 때 가장 사이코패스적인 효율적 방식은 '저건 인간이 아니야. 인간 지네야'라고 생각해야한다는 거다.
A의 하반신을 자르고, C의 상반신을 붙힐 때의 효율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매니지먼트다. 헐. 정말 非인간적이나, 정말 효율적인 사고방식이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 직장이다. 정반대 조직인 가족에서 커온 일반인들로는 사회생활이라는 미명하에 이런 식의 무자비한 사고방식을 배워간다. 그리고 아주 현명한 '방어 논리까지 더불어 배운다'. 대학 교육과 인문학의 최대 수혜가 아닐까싶다.
요즘 기무리뷰라는 영화 채널에 푹 빠져있다. 스트레스가 늘어나면 왠지 고어한 장르가 당긴다. 왜 그럴까? 뭐. 스스로에게 재 물음을 하지 않더라도, 본능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 그 리뷰를 보면서 놀랐던 감정도 한 한달 지나니까 이제는 객관화가 가능해진다. 아무것도 아니다싶다.
기무리뷰의 대사는 정말 객관화의 끝을 달린다. '미드소마'를 기무가 리뷰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괜한 의미부여같은 거 하지 말고, 철저한 객체화를 통해서 벌어지는 말도 안되는 비휴먼적인 사고를 거리를 두며 바라보면 베르톨트 브레히트 수준은 아니더라도 '거리두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코로나로 일상화된 거리두기는 이제 감정/관념/가치에도 벌어지는게 아닐까 싶다. 인간은 멀어지고, 변하지 않으면 땅에 박혀버린 나무같이 늙고 건조해지기 마련이다.
뭘 하던 간에, 긍정이던 부정이던 일단 감정이라는 에너지가 몸 안에 돌지 않으면 사람을 땅 속으로 꺼져버리는 것 같다.
애니웨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