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Anisona - 페르소나가 아니에염...
어릴적엔 '곰같은 힘이여 솟아라'라고 외치는 만화를 보면서 마치 내가 곰이라도 된 양, 표효하는 포즈를 취하고 으르렁 대고는 했다. 실제로는 그냥 어린 아이였던 나의 동경심이 마치 하루는 곰인듯이, 또 다른 하루는 호랑이 인듯이 나타나고는 했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동네 골목을 동네 형동생들과 소리지르며 뛰어놀았다. 일요일 아침 만화가 TV에 나오면 너무 행복했다. 재미있는 만화가 줄을 이었다.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살다보면 20를 지나고, 30대가 되어간다. 내 기억으로는 20대 시절에 가장 강한 욕망을 비이성적으로 발휘했던 것 같다. 윤리의식도 좀 모자라고, 일단은 하고보자는 마음을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생존이 달려있다고 생각도 했다.
그래도 내가 범죄자가 되지 않은 이유는 '어릴 적 본 만화'때문이 아닐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항상 정의롭게 살아가는 소년만화의 주인공들, 김용 무협지에 나왔던 다양한 영웅들. 항상 부조리보다는 합리적 정의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검정색이 온 몸을 뒤 덮을 때가 있더라. 신입사원 시절 '너희 아빠가 택시 기사면 니가 택시 잘 잡냐?'라며 비아냥대던 00대리 한명이 기억난다. 퇴사를 생각하고 그를 때렸던 것 같다. 물론 다음 날 출근 후 그는 나에게 사과를 했다. 정의와 악당의 논리로 바라보기에는 너무 회색같은 사회생활. 숨어있는 흑색과 백색 그리고 회색이 흐리멍텅했다.
결국 무지하게 화가나거나, 강하게 욕망을 해야만 그 컬러가 온몸을 뒤덮는다. 흑백논리의 유년시절을 시나, 그레이존으로 가득찬 20대를 보내면서 난 정말 우울한 인간이 되었던 것 같다. 가끔씩 코난의 범죄자처럼 온통 검정색으로 변했을 때가 많았다. 특히 취하면 그랬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총기가 금지인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동물의 얼굴을 가만히 보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선입관을 그대로 투영시켜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들이받는 코뿔소, 사악한 레오파드, 게으른 사자, 멍청한 원숭이, 착한 강아지, 교묘한 고양이 등 문화권마다 각 동물의 스테레오타입이 정해져있다.
얼굴에 집중하게되는 요즘. 사람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생김새/표정/감정/얼굴의 낡음새/화장발/조명발 등등 사람의 얼굴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살찐 여성의 얼굴에서 '수동적이며, 연약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렵듯', '강인한 각진 근육형 체형과 얼굴에서 심미적인 세심함을 느끼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이것도 저것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한다. 그냥 그 순간의 형상과 다수의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가 형상화될 뿐.
꿈꾸면서 들이받던 시절의 코뿔소
안정적인 희망을 기다리며 초점을 잃은 작은 원숭이
죽은 후 시체처럼 더 이상 표정을 만들 수 없는 눈이 시뻘건 개코원숭이
이 모든 건 내가 늙어가면서 보았던 거울 속의 내 얼굴들이다. 그나마 정확한...
아무래도 아주 나이들면
이런 느낌으로 변해가지 않을까 싶다.
상처입어서 죽을둥 기다리는 놀란 표범같은 느낌이랄까....
위씨아자씨의 재미있는 동물얼굴놀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