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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 Jul 27. 2022

엄마가 떠나간 다음날

해야할 일들과 겪어야만 하는 것들과 함께

잠과 싸우다 패배한 체로 다음날을 맞이했다.

둘째 날은 바빴다. 하와이에서 장례식을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가족 어르신 분들의 비행기표를 우리가 전부 도와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것도 우는 것도 모든 게 다 괴로웠기 때문에 차라리 바쁜 게 나은 거 같기도 했다.


시간을 인지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하루(24시간)전으로만 돌아갈 수 있다면.. 몇시간 전에는 엄마랑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바꿀 수 있을거같은데.. 하는 '그랬더라면'과의 끝없는 싸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에겐 평범한 일상일 그 하루가, 나에겐 치열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오전에 우연히 연이 닿은 상담사분께 연락을 드렸다. 연신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아픔에 깊이 공감해주셨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내 세상이 동그랗다면 그 절반이 넘는 부분이 뜯겨 나간 거라 했다. 맞다. 내 심장이 지금 뜯겨 나갔다. 내 세계가 아무런 신호도 없이 갑자기 뜯겨 나갔다. 그런 세상은 아파하면서 메꾸는 거란다. 


난 이 날, 앞으로 얼마나 더 아플지가 너무너무 무서웠다.


내가 첫째라서, 내 전화로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했다. 엄마의 소식을 들은 아주 가까운 가족 또는 아주 가까운 친구분들이었다. 한 분, 한 분 전화를 받을 때마다 눈물이 터졌다. 괜찮아졌다 생각하고 침착하게 받아도 전혀 괜찮지 못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는 모두에게 감사했다.


특히 외삼촌(어머니의 남동생)은 굉장히 덤덤한 분으로 알고 있는데도, 나에게 전화를 하셨을 때 침착하게 통화를 시작해도 몇 단어 못 뱉으시고, 금방 목소리가 잠기셨다. 그렇게 다시 전화하겠다고 연락을 급히 끊는 게 여러 번이었다.


내가 엄마의 역할을 해야 된다는 몇몇 분들의 말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내가 과연 엄마처럼 자비롭고 넓은 가슴으로 품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도 들었지만 할 수 있을 거 같다. 엄마를 대신할 수는 없어도 엄마가 해오던 역할은 내가 한 번 해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밤, SNS를 통해 어머니에게 기도할 것을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이런 소식을 SNS에 올리냐 하며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만, 난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사랑이 엄마에게 닿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눈감고 여러 번 셀 수 없이 기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믿음과 기도와 사랑뿐이었다.


우리 천사 같은 엄마에게 기도가 닿기를..




많은 사람들의 연민 가득한 위로는 신이 세상에 조금씩 숨어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해 준다. 

혹자는 연민과 위로로 상처를 받는다고도 하지만, 난 연민 속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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