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질문으로 상대방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느낄 수만 있다면.
타인과 대화할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호감을 사는 것이다.
타인을 즐겁게 해 주려는 욕망에 휘둘려 나는 마치 학예회 날 학교를 찾은 학부모처럼
그다지 우습지 않은 농담에도 크게 웃는다.
(생략)
나는 대다수 사람들이 신봉하는 관념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의문을 품지 않았다.
나는 권력을 쥔 인물의 동의를 추구했으며,
그들과의 만남이 있은 후에는 그들이 나를 어떤 존재로 받아들일지 노심초사했다.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정명진, 청미래, 2012, p.14
즐거운 대화란 무엇일까?
각자의 의무를 다하며 살기 바쁜 요즘
누군가와 마주 앉아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의 소중함을 더더욱 알게 된다.
특히나 일요일 밤 같은 때이면
기쁜 일, 슬픈 일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시간일 때면
은은한 노래가 나오는 카페에 앉아 깊고 차분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 대화 덕분에 마음이 채워졌다고 느껴질 만큼
유쾌하고 즐거운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내가 노심초사하는 것은
이야기의 주제가 내 관심사 위주로만 흘러갈까 봐,
말하는 할당량을 내가 더 많이 가져갈까 봐 염려하는 것이다.
행여나 나의 배려심이 부족해 상대방에게는 그 대화가, 그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졌다면 슬플 것이다.
타인을 즐겁게 해 주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 중
경청하고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대방을 들뜨게 해주는 주제를 펼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질문을 건네면서
상대방의 내적 가려움을 긁어주는 대화를 펼치고 싶다.
상대방의 장황한 말을 요약해줌으로써
상황을 함께 관찰하는 동행인이자 조력자가 되고 싶다.
상대방은 그게 나의 열띤 노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요일 저녁 같은 때이면
질문을 잘하는 사람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더더욱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