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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i Mar 20. 2021

[조지아] 그래서 조지아가 어떤 나라냐면요.

어쩌면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나라 조지아. 조지아는 이런 나라예요.


조지아의 국기.


조지아가 어디 있는 나라예요? 물어보면 주섬주섬 구글맵을 켠다. 일단 튀르키예와 러시아 사이에 있다고 설명한다.



조지아(Republic of Georiga · 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


인구   약 374만 명(PopulationPyramid.net, 2022) 기준

면적   약 69,700km2(대한민국 면적의 약 3분의 2)

언어   조지아어(ქართული ენა)

종교   정교회, 이슬람교,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등

수도   트빌리시(Tbilisi)

주요도시   쿠타이시(Kutaisi), 바투미(Batumi), 고리(Gori) 등

시차   한국 시간보다 5시간 느리다.

통화   라리(Lari, ლ), 테트리(Tetri, თეთრი, 라리의 1/100)

1인당 GDP   USD 4,769.19(세계 89위 통계청 KOSIS, 2019) 기준

비자   한국인 360일 무비자. 조지아인은 한국 방문 시 비자 필요.

기후   여름에는 한국보다 덜 덥고 건조하다. 겨울에는 한국보다 덜 춥고 우기이다.

키워드   #포도  #크베브리와인  #천국의식탁  #천혜의자연  #코카서스




조지아라고 불러주세요


조지아는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나라이다. 한국에는 ‘그루지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조지아는 러시아어 표현인 ‘그루지야(грузи́н)’가 아닌 영어 표현인 ‘조지아(Georgia)’로 불리길 원한다. 조지아는 조지아어로 ‘사카르트벨로(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 Sakartvelo)’라고 한다.


4백만 명이 채 안 되는, 그러니까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조지아인들이 이 조지아어를 사용하며 소박하지만 풍요롭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어쩌면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나라, 조지아


조지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많은 한국 사람들이 ‘커피’라고 대답할 것이다. TV 광고에서, 자판기에서, 편의점에서 조지아 커피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커피는 조지아에서 팔고 있지 않다. 조지아는 커피가 아니라, 세계 최초로 와인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와인의 나라’이다! 와인의 나라라고 하니 유럽 그 어딘가에 위치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지아는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그 중간 즈음에 위치한 아름답고 특별한 나라이다. 지도를 함께 살펴보자. 위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는 튀르키예, 남쪽으로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국경을 접하고 있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묶어 ‘코카서스 3국’이라고도 말한다. 코카서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서린 곳이자, 실크로드의 중심지이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의 역사를 함께한 거룩한 땅이다.




조지아의 삶 속에 물든 정교회


조지아는 아르메니아, 로마 제국과 비슷한 시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조지아에 전파된 종교는 정교회인데, 조지아인들에게 정교회란 조지아를 지탱해주는 영혼이자 일상에 녹아있는 삶 그 자체이다.


조지아 특유의 건축 양식을 가진 교회.




조지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조지아를 구성하는 인종은 대부분 코카서스인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튀르키예인’과 ‘러시아인’을 언급하면 머리에 흔히 그려지는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카서스인’이라고 하면 감이 잘 안 온다. 나는 막연히 조지아 사람들이 튀르키예 사람들과 같은 외모를 가졌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조지아에 도착해보니 나의 상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었다. 조지아인들의 피부는 백색부터 갈색빛까지 다양하고 푸른빛, 녹색빛, 갈색빛 등 여러 가지 색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졌다. 무엇보다 코카서스 혈통을 타고 내려온 아주 강인한 체격과 풍채가 눈에 띄었다. 내가 조지아 사람들에게 처음 느낀 인상은, ‘우와, 정말 튼튼해 보인다.’였다.


건장한 체격은 스포츠에서 두드러진다. 일본을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조지아 출신 스모선수 토치노신 츠요시(Tochinoshin Tsuyoshi)*는 스포츠 마니아들 사이에서 그 인기가 대단하다. 190cm가 넘는 큰 키와 우람한 몸을 가진 그는 낯선 땅에서 혹독한 연습과 노력으로 눈부신 성적을 거두며 국민 영웅의 자리를 꿰찼다. 고리(Gori) 지역의 한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와인 창고에서 토치노신의 사진이 액자에 크게 걸려있는 걸 보았다. 와이너리 주인아저씨께서는 그의 열렬한 팬이라고 말씀하시며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본명은 레반 고르가드제(ლევან გორგაძე, Levan Gorgadze)이다.


고리의 와이너리에서 발견한 토치노신 츠요시의 액자.




조지아의 분위기는 어떨까


조지아의 풍경도 궁금해질 것이다. 유럽 같은 느낌일까? 아시아 같은 느낌일까? 아니면 상상보다 더 색다른 곳일까? 나는 잘 꾸며진 수도 트빌리시의 거리에서는 마치 동유럽 같이 단정한 분위기를 느꼈는데, 거리 곳곳에 자리 잡은 조지아 특유의 교회들은 이곳이 조지아임을 확연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트빌리시에도 러시아 정교의 상징인 양파형 돔이 있는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가 보일 때면 마치 러시아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구다우리(Gudauri)를 지나 까즈베기(Kazbegi)로 향하는 도로는 사방이 온통 녹색의 푸르른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화질이 아주 좋은 TV로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 여름의 도시인 바투미(Batumi)의 밤은 트빌리시보다 더욱 화려하게 반짝이고, 흑해를 따라 펼쳐진 긴 수변공원은 오로지 자유만이 존재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조지아 정교의 시작을 함께한 도시인 므츠헤타(Mtskheta)로 가면 그 고요함과 차분함에 마음마저 숙연해졌고, 사랑의 도시로 불리는 시그나기(Sighnaghi)로 가면 온통 빨간색 지붕을 덮은 집들이 도시를 더욱 로맨틱하게 연출했다.



유럽풍의 마르자니쉬빌리(Marjanishvili) 거리. 정말이지 조지아는 맥도널드 건물이 제일 예쁜 나라일 것이다.


까즈베기로 향하는 푸른 길.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이 까즈베기 산에서 간을 쪼아 먹는 형벌을 받았다는 신화가 서려있다.


여름의 도시 바투미의 수변 공원. 휴양지 느낌이 물씬 난다.


조지아 정교의 발상지, 므츠헤타. 지금 보이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입고 있던 가운을 보관했던 곳이라고 전해 내려온다.


사랑이 넘치는 도시, 시그나기. 정말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다.




사랑해요 조지아, 사랑해요 대한민국


조지아는 한국인에게 참 우호적이다. 조지아는 한국인에게 360일 무비자 체류를 허용하고 문호를 활짝 개방하고 있다. 조지아 사람들은 한국의 기술력과 경제 성장 과정을 배우고 싶어 하고, 한국 사람들은 조지아에서 와인 수입, 여행업 등 다양한 비즈니스를 개척하고 있다.


한류 물결이 이곳에까지 닿았는지, 젊은이들은 K-Pop에, 어른들은 K-Drama에 열광한다. 조지아에 도착한 첫날부터 K-Pop Fan들을 만났는데,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K-Pop 관련 선물을 가져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턴을 하며 <K-Pop Festival>을 기획하고 운영할 기회도 찾아왔다. 트빌리시에서 개최된 이 대회는 한국인의 도움이 거의 필요 없을 만큼 조지아 K-Pop Fan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활동으로 치러졌다. 그들은 대회 한 달 전부터 연습에 매진하며 무대 순서를 배정하고 무대에 맞는 의상과 메이크업, 소품, 음악을 직접 준비하는 등 대회를 위한 노력과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대회 현장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 목이 터지라 열창하는 관중들의 함성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을 돋게 했다.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 노래처럼 말 그대로 활활 불타오르는 광경이었다. 그들이 K-Pop을 얼마나 좋아하고 즐기고 있는지, K-Pop으로 인해 얼마나 큰 행복을 느끼고 있는지 알게 된 동시에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언젠가는 조지아에서 진짜 K-Pop 가수들이 무대를 펼치는 날도 상상해보았다.


2018 K-Pop Festival in Tbilisi. 그들의 땀과 열정이 무대를 장악했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다. 트빌리시의 자유대학교(Free University) 국제 관계(International Relations) 전공, 동아시아 지역(Far East) 프로그램 코스에는 한국어 수업이 개설되어 있고, 조지아-한국 간의 대학 교류 프로그램도 증가하고 있다. 트빌리시에는 한국어 학원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내 주변에는 한국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친구들이 많았으며, 우연히 길에서 한국어로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자주 만났다.


조지아 친구 Lika의 한국어 공부 노트. 나도 잘 모르는 어려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물론 많은 한국 사람들이 조지아가 어디에 위치한 나라인지,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것처럼,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조지아 사람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한국을 정말 좋아하는 조지아인들의 애정과 사랑이 그런 무관심을 덮어버릴 정도였다.




가슴 아픈 역사를 닮은 민족


조지아와 한국은 어딘가 모르게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지아와 한국 모두 주변국의 침략 속에서도 순고한 정신과 전통을 꿋꿋이 지켜내 지금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도 닮았다. 조지아에는 압하지야(აფხაზეთი, Abkhazia)와 남오세티야(სამხრეთი ოსეთი, South Osetia)라는 미승인국이 존재한다. 조지아 친구에게 그곳에 갈 수 있냐고 물으니, 한국인은 갈 수 있겠지만 조지아 사람은 가지 못한다며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구소련 해체 이후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둘러싸고 여러 차례 분쟁이 일어나고 여러 나라들이 개입하면서 두 지역은 쓰는 언어도 생활도 조지아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조지아 사람들은 그곳 역시 하나의 조지아라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조지아 노래 중에 ‘Irma Araviashvili & Mariam Cqvitinidze’가 부른 <압하지 바르 აფხაზი ვარ, afxazi var>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압하지아 사람(I am Abkhazian)’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노래는 압하지야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담고 있으며 ‘우리는 하나의 조지아(ჩვენ ერთნი ვართ 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라고 말하고 있다. 구슬픈 가사와 멜로디가 심금을 울린다. 많은 이들이 꼭 들어보았으면 좋겠다.


그밖에 조지아 사람들, 한국 사람들 모두 자존심이 세고 쉽게 뜨거워지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 많다는 것도 닮았다. 그리고 술과 음악을 사랑한다. 아니, 술은 조지아 사람들이 조금 더 많이 마시고 더 잘 마시는 것 같다. 정수기 통만 한 병에 담긴 와인을 마트에서 팔고 있으니 말은 다 했다.



* Irma Araviashvili & Mariam Cqvitinidze - afxazi var 노래듣기

https://youtu.be/O4FYTjOoC1M




끊이지 않는 발걸음


우수한 조지아 와인을 맛보러 오는 여행객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조지아에 무비자로 올 수 있는 러시아인들을 비롯해 유럽 각지에서도 계속해서 조지아를 찾고 있다. 여행객들은 여름이면 조지아의 흑해 지역을 찾아 휴양을 즐기고, 겨울이면 스키를 타기 위해 구다우리(Gudauri), 바쿠리아니(Bakuriani) 등을 방문한다. 트빌리시에 살면서 인도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보았는데, 대부분 이곳의 의과대학을 다니며 유학을 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래서인지 Tbilisi State Medical University 등 대학가 주변에 인도 음식점들이 많다. 근처 카페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인도 학생들도 자주 보았다.  

마트에서 파는 대용량 와인. 가족끼리, 친구끼리 마시다 보면 신기하게도 금방 없어진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Tbilisi State Medical University 근처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니까 조지아는


조지아는 참으로 투박하고, 여유롭고, 가끔은 어디로 통통 튈지 모르는 매력이 넘치는 나라이다. 코카서스 산맥이 보여주는 장엄한 자연과 빛나는 흑해, 그윽한 빵 냄새, 먹음직스러운 왕만두, 일상 속 늘 함께하는 와인은 여행자들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노란 조명이 가득한 밤거리, 때 묻지 않은 시골 마을,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여유로움, 그리고 조지아인의 순수한 웃음과 따뜻한 마음은 우리가 떠날 수 없도록 발목을 붙잡는다.




알아갈 시간이 필요해


쌀쌀한 겨울, 처음에는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집은 춥고, 사람들은 무뚝뚝해 보이고 꼬불꼬불한 글씨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내가 이 나라를 좋아할 수 있을지 전혀 예상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비로소 조지아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점점 조지아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고 마음 깊숙이 사랑하게 되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이 생기고, 좋아하는 조지아 음식과 와인이 생기고 좋아하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조지아가 어떤 나라냐고 물어보면 신나서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조지아는 궁금해서라도 살아보기 충분한 나라, 아니 더할 나위 없이 새롭고 특별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매일같이 찾아갔던 올드 트빌리시. 해가 저무는 시간이 가장 예쁘다.



조지아식 왕만두, 힌깔리. 삶은 만두라서 정말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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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정말 살아보길 잘했어, 조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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