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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i Mar 18. 2021

[조지아] 왜 하필 조지아였을까?

그런 삶 말고 다른 삶도 살아보고 싶었다.

조지아에서 파는 '진짜' 조지아 커피. 한 잔에 60테트리(약 200원)면 충분하다.


아, 그 조지아 커피?



“얘들아, 나 조지아로 인턴 하러 가!”

“아, 그 커피?”

“아니, 커피 아니고 와인의 나라야!”

조지아로 인턴을 떠난다고 말했을 때, 대부분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아니, 얘들아. 조지아는 커피가 아니라 와인이 유명한 나라이고, 튀르키예랑 러시아 사이에 위치하며 신이 선택한 땅으로 천혜의 자연과 경관을 자랑한대. 그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 조지아라는 나라를 설명하려면 속사포 랩을 연습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이들이 ‘조지아’라는 단어를 들으면 ‘커피’를 먼저 떠올리고, 그다음에는 미국의 한 주인 ‘조지아’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루지야’라고 말하면 아는 사람이 더 많다. 조지아에 대한 정보도 턱없이 부족하다. 나 역시도 조지아로 떠나기 전에 인터넷과 책을 샅샅이 뒤져 정보를 모았지만, 잘 알려진 것이 없어 조지아가 정말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조지아에 대해 1%도 모르는 채로 ‘일단 가서 살아보자’라고 결심하고 비행기에 올라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조지아로 떠날 결심을 했을까? 왜 하필 조지아였을까? 일해볼 만큼, 살아볼 만큼 가치가 있는 나라라고 확신했을까?



튀르키예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였다. 그때 터키인 룸메이트가 조지아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고 꼭 가보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조지아? 그곳이 어디인지 찾아보니 터키 옆에 붙어있는 작은 나라였다. 터키에 살고 있었음에도 조지아가 터키 옆에 붙어있는 나라인지 전혀 몰랐다. 늘 터키의 서쪽으로 펼쳐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생각만 했지, 동쪽 나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룸메이트의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움직인 것이었다.


아니, 이런 나라도 있어? 내가 아는 그 커피가 유명한 나라가 맞나?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프레임 안에서 조지아를 상상해보았다. 조지아 사람들은 그저 푸른 초원에서 가축을 기르며 살아갈 거라고, 세련된 쇼핑몰도 화려한 도시도 없을 거라고 말이다. 호기심은 차올랐지만, 당시에는 그저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조지아에 가보고 싶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귀국해 졸업반이 되어 동기들도 다 흩어지고 혼자 강의 듣고 혼자 학식 먹는 생활을 반복하던 어느 날, ‘어차피 평생 일하고 살 거라면 해외에서 일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해외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는 건 너무 두려웠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더욱이 새로운 땅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곳에서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나를 더 괴롭혔다. 갑자기 생뚱맞게 그곳에 왜 가는 거냐고,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그 시간에 자격증 하나를 더 따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 말들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해외에 다녀오면 내가 몇 살이고, 그 나이면 뭘 하고 있어야 하고…. 하는 온통 시간에 대한 조급함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다시, 과거에서 현재가 아닌, 미래에서 현재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서 지금을 생각해본다면 저지른 일 보다 저지르지 않은 일을 후회할 것 같았다. 후회는 뒤를 돌아보게 만드니까. 지금이 아니면 이 기회는 다시 찾아올 것 같지 않았다.


고민으로 시간을 흘려보내니 어느새 몇 달이 지나가 있었다. 후배 G와 함께 한강으로 갔다. 돗자리를 펴놓고 치킨을 시킨 다음 이런 나의 고민을 털어놨다. G가 말했다. 갈까 말까에 대한 고민이 사실, 가서 정말 잘 해내고 싶은데 완벽하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하는 고민이 아니냐고. 이미 답은 정해놓은 거 아니냐고 말이다.


그 말이 맞았다. 사람은 늘 고민을 털어놓을 때 이미 스스로 답을 정해놓고 그 답에 대한 확신만 얻고 싶어 한다는 것을.


며칠이 지났을까, 때마침 TV에서 조지아를 소개하는 방송이 나왔다. 카메라는 조지아의 현대식 모습부터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등 다양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중 산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조지아 사람들의 환한 웃음을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시간에 대한 조급함이 무엇인지, 그들은 그저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들에게 인생이란 뭘까? 내가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 또한 이런 나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주변이 모두 블러 처리가 된 것처럼 TV 화면에만 빨려 들어갔다. 그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정말이지 세상은 넓었고 내가 몰랐던 사연들이 넘쳤다.



그리고서는 결심했다. 그래, 이왕 조지아에 갈 거라면 조지아를 떠나는 날 꼭 “살아보길 잘했어.”는 말을 할 수 있게 나의 모든 시간을 다 써서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왜 조지아?라고 다시 묻는다면, 이렇게 조급한 시간 속에서 사는 삶 말고 다른 삶도 살아보고 싶었다고, 그들에게 인생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 시간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시간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거라고 확신했으니까.


시간은 어느덧 흘러 조지아로 떠나는 날이 되었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새벽, 아무것도 모르는 귀여운 얼굴을 한 우리 집 강아지를 몇 번이나 끌어안고 나서는 그렇게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기 전 새벽, 카메라로 연신 강아지를 담느라고 바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바리 얼굴이다. 정말 보고 싶을 거야.


여기서 내릴 수도 없고. 이제 정말 조지아로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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