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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i Mar 18. 2021

[조지아] 여긴 조지아, 나는 누구?

조지아에서의 삶은 이렇게 어리둥절 시작됐다.

조지아에 오기 전 상상했던 트빌리시의 모습. 모든 풍경이 이렇게 동화 같을 줄 알았다.



동양인은 나 혼자



한국에서 10시간을 날아 폴란드 바르샤바(Warsaw) 공항에 도착했다. 당시 조지아에 직항으로 갈 수 있는 비행기가 없었다. 면세점에서 젤리를 몇 개사고 설레는 마음으로 조지아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아니 잠깐, 여기저기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동양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생소한 나라에 가는 걸까? 이 비행기 정말 조지아로 가는 거 맞겠지? 기분이 이상했다. 나도 자연스러운 척, 유럽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이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라탔다. 작지만 우렁찬 소리를 내는 비행기는 한겨울 칼바람을 뚫고 새벽 5시, 조지아 트빌리시 공항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내 몸집만 한 캐리어 한 개와, 작은 캐리어 하나, 그리고 배낭에 크로스백까지 부랴부랴 챙기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픽업을 나오기로 한 조지아 직원에게 연락하려고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와이파이가 안 터진다! 처음부터 삐걱거린다. 조지아는 와이파이가 안 터지는 나라인가? 나를 못 찾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출국 문을 나서는 순간 어머, 공항이 작아도 너무 작다. 한국의 고속 터미널만 한 작은 공항에서 키 크고 다부진 조지아 직원이 단번에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어리바리한 모습을 한 동양인이 나뿐이었으니, 찾기는 쉬웠을 것이다.


“안.뇽.하.세.요!” 서툴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직원에게 나는 비행기에서 연신 외웠던 “가마르조바!(გამარჯობა! : 조지아어로 안녕하세요!)”를 정통 한국식 발음으로 내뱉었다.


드디어 트빌리시 땅을 밟았다. '그 도시는 당신을 사랑한다'라고 쓰여있는데 와이파이가 안 터진다! 정말 사랑하긴 하는 거니.



악 사카르트벨로, აქ 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 여기는 조지아



꼬불꼬불한 글자들, 한산하지만 들떠있는 공항, 한국보다는 덜 춥지만, 어딘가 모르게 더 어두워 보이는 날씨, 그리고 이국적인 노란 불빛이 나를 반겼다. 체격 좋은 조지아 직원은 무거운 짐을 후다닥 차에 싣더니 이제 집으로 가자고 한다. 바로 내가 살게 될 집으로 가는 것이다. 차를 타려고 문을 열었는데, 내가 연 좌석에 떡하니 운전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차는 운전석이 오른쪽, 조수석이 왼쪽에 있는 일본 브랜드의 차였다. 조지아에는 이렇게 운전석이 오른쪽이 있는 차들과 왼쪽에 있는 차들이 동시에 거리를 누빈다는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스름한 조지아의 새벽길을 쌩쌩 달렸다.


낯설고 차가운 그 길을 달려 집에 도착하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곳이 조지아구나.” 실감하려고 집 밖을 나서는데 어머머머, 풍경이 정말 낡았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곳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조지아에 오기 전 인터넷에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를 검색했을 때는 동화 같던 모습들만 나왔는데. 내 눈앞에는 낡고 오래된 회색빛 건물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겨울이어서 그랬는지, 날씨가 흐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가 본 조지아의 처음 모습은 칙칙하고 어둑어둑했다.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지는 오래된 건물들, 웃지 않는 것 같은 사람들, 내가 이방인이라는 걸 증명하는 듯 전혀 읽을 수 없는 외계어 같은 글씨들.


내가 이 나라를 좋아하게 될 수 있을까? 조지아가 어떤 곳인지 알아갈 시간이 필요했다. 조지아에서의 삶은 이렇게 어리둥절 시작됐다.



처음 마주한 트빌리시의 모습. 조수석이 왼쪽에 있는 일본 브랜드의 차를 타고 집으로!


처음 맞이한 조지아의 밤거리. 밤이면 묵직하게 내려앉은 노란 불빛이 거리를 감싼다. 마치 카페에 온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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