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보내드리며, 아직은 4주 차
아버지가 곁을 떠난 지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누구도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괜찮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핸드폰 뒤에 넣어둔 아버지의 사진에 대해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발화되지 않는 말들로 인해, 많은 마음들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느낀다. 참아지고 있는 궁금한 마음들 속에 사랑을 느낀다.
상실을 견디는 방법
지난 시간 속에 가장 큰 힘은 아버지는 당신 나름의 행복한 삶을 사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에서 왔다. 나의 기억에 당신의 투병하던 모습이 짙게 남아있지만, 그 모습이 아버지의 인생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사진들을 많이 보고, 아버지의 친구분들에게 부러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들을 청해 들었다. 당신의 인생을 통합적으로 바라보았다.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었으므로, 내가 알지 못하는 당신의 밤들 속에 현명한 선택들을 내리셨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그 밤들을 당시에 내가 헤아릴 수 없었음으로 인해 비집어 슬퍼하지는 않기로 다짐했다.
20대 중후반을 넘어가면 인생에서 종종 상실을 마주하게 된다. 상실을 소화해내는 건 항상 어려운 과제다. 연인과 이별할 때에도 힘이 되었던 생각이 아버지와의 작별에서도 힘이 되었다. 당신이 내 곁에 없음으로 인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이 남긴 영향들이 내 안에 살아있고, 그러므로 당신은 연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 당신이 내게 준 좋은 영향들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는 것.
적확한 위로를 주는 사람에 대한 연민
장례를 치르면서 많은 사람들의 정성껏 고른 위로의 말을 받았다. 하나하나 소중한 말들 속에서, 유독 마음에 강하게 남는 위로, 지금의 나의 상태를 뾰족하게 뚫고 가는 말을 건네시는 분들이 있었다. 너무 듣고 싶었던 말이거나, 슬픔에 가려 보지 못하던 따뜻한 진실을 이야기해주는 사람들.
한 세대 위의 어른이 많았다. 그래서 슬펐다. 그들에게 이야기 한 적 없는 나의 슬픔을 바로 이해하고, 덤덤하게 묵직한 위로를 건네기까지 그들이 지나왔을 세월이 먹먹했다. 나보다 길게 인생을 살아낸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슬픈 순간에 느꼈다. 그들이 각자의 슬픔을 생채기 없이 무사히 건너왔기를 바랐다.
슬픈 사람은 영혼의 창문이 열려있다
슬픈 사람은 영혼의 창이 열려있다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고 한다. 큰 슬픔에 빠진 사람은 모든 감정을 평소보다 배로 크게 느낄 수 있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쳐두었던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더 많은 감정과 말과 사랑으로의 감각이 확장된다.
장례 중에 받았던 단단한 위로의 눈빛과 오랜 시간 고르고 골라 썼음이 느껴지는 메시지들, 표정 하나하나 신경 쓰는 조심스러움, 늦은 밤 전달된 장문의 메시지, 대신 흘려준 눈물, 10년 만에 찾아와 준 옛 친구, 밤늦게 찾아와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오래도록 쳐다보고 가신 친구분의 눈빛, 결혼식을 앞두고 장례식장에 들어가지 못해 미안하다며 앞에서 오래도록 안아주고 간 친구, 화장터에 함께 있어 주었던 피를 나누지 않은 나의 가족들, 약한 체력으로 꿋꿋이 버티던 언니, 말없이 힘든 엄마. 곳곳의 존재들에 사랑을 느꼈고, 이는 평소에 가까운 이들을 중심으로 특별한 순간들에 느끼는 사랑과는 다른 종류였다.
지금 느낀 이 사랑과 연민을 오래도록 생생하게 느끼면서 살 수 있다면, 그러면 좀 더 인생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섭섭함을 인정하자
대사를 치르고 나니, 섭섭한 마음들도 찾아왔다. 이 마음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이해하고, 이 마음을 인정하고, 이 마음에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기로 했다. 이 마음으로 인해 내 마음속 선을 의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20대의 말미에서, 더는 슬픔에 눈감지도, 슬픔으로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돌아가는 길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