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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제니 Dec 13. 2022

나는 왜 일하는 걸까?

답은 사랑

뭐든지 '왜'를 묻기를 좋아하는 나다. 이건 왜 해야 하는 거야? 진짜 중요한 거 맞아? 나는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이유 없는 일들도 세상엔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선택들에 있어서는 내 나름의 이유와 기준을 가지고 살아나가고 싶다는 작고도 거창한 꿈이 있다.


그런 나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던 책 - Find your why! 그 이름도 거창한 '너의 왜를 찾아라.' 이 책을 읽으면... 나의 인생의 '왜'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


한창 읽어보니 사이먼 사이넥은 두 가지를 강조하더라.


첫째,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기 위해서 일하는지 찾고, 그것을 '~~ 으로써 ~~ 한다.'의 형태로 표현해라. 

둘째, why 문장을 쓰기 위한 모든 과정은 혼자 해서는 안되며,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키워드를 찾아줄 수 있는 적당히 친한 타인과 함께 진행해라. 


매뉴얼대로 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친구 H에게 밥과 간식을 대접하며 why 찾기 활동을 진행했다.


장장 4시간 넘는 대화를 거쳤지만, 기대와는 달리 똑 떨어지는 하나의 문장을 찾지는 못했다. 그때 썼던 문장은 다음과 같았는데, 지금 읽어보니 썩 마음에 드는 문장이 아니며, 딱히 나의 why를 관통한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당시에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거나, 자아실현을 도움으로써 사람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이 활동을 하면서 친구와 내가 공통으로 품었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꼭 why가 사람들한테 뭘 주는 것에서 찾아야 하는 거야?' 


저자 사이먼 사이넥은 왜 why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어떤 음악가가 진정한 자기만족과 음악적 완성을 위해 연주를 거듭한다면, 그의 why는 딱히 사이먼 사이넥 선생의 저 문장 형태로 똑 떨어지게 정리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저 문장 밑에 하나의 키워드가 더 있을 것 같았다. 그 사람이 믿는 핵심적인 가치.

내가 그날 친구와 나눴던 대화들을 타고 타고 내려가다 보니, 나의 핵심 가치는 하나의 단어로 수렴했다. '의무감.'


나는 많은 특권을 타고 태어난 사람임을 알고 있다. 온전한 몸을 가지고, 많은 사랑을 주신 가정에서 태어나, 아낌없는 지원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또 그 공부를 소화할 수 있는 지능과 의지가 주어졌고, 좋은 학교에서 똑똑하고 인성까지 훌륭한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세상을 배웠다. 심지어는 미국으로 교환학생도 가보고, 수많은 나라들로 여행도 가봤다. 

이 중에 단 하나만 가진 것으로도 매우 큰 특권을 가졌음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특권을 부여받은 나라는 사람은, 최대한 사회로부터 '투자'받은 것을 더 크게 '레버리지'하여 사회로 '배당해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갖고 있었다. (이는 내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다다른 결론이었고, 평상시에 이러한 생각을 인지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거창하게 '사회적 기업'과 같은 모양은 아니더라도,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사람들에게 가닿는 가치를 가능하면 크게 창출해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기회를 가진 사람이 해야 할 마땅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인지하니,


충격이었다. 내가 그동안 열심히 일한 기저에 있는 감정이 의무감?



그로부터 몇 주 뒤였다. 

회사에서 '커뮤니케이션 리드'를 담당하고 계시는 분과 사내 인터뷰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입사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으므로, 직무보다는 '일하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기로 했다. 자연스레 나의 최근 화두인 '왜 일을 하는가'로 대화가 집중되었고, 위의, 나름의 엄청난 깨달음에 대해 말했다. 저는 의무감 때문에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의무라기보다는, 음.... 기분 좋은 책임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듣고 보니, 의무와 책임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꽤나 결이 다른 단어였다. 의무는 타의로 주어진 어깨의 무거운 짐이라면, 책임은 자발적으로 택한 내가 맡고 수행할 일. 

둘 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주체성과 자발성은 삶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므로, '책임'으로의 명명은 꽤나 큰 변화였다.


그날의 인터뷰를 정리해주시며 그녀는 내게 하나의 메시지를 선물처럼 남겨주셨다.


"우리 거저 받은 것들을 많이 누리고, 또 세상에 퍼뜨리면서 살아요."


그렇지, 내가 받은 것들을 많이 행복하게 누리고, 또 그만큼 그에 감사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돌려주면 되는 거지! 어려울 것 하나 없는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그로부터 또 몇 달이 지나, 내가 참 존경하는 친구 J를 만날 일이 있었다. 그녀는 성교육 활동가로 일하다가 현재는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는 참 멋진 친구다. 그녀에게 위의 이야기들을 쭉 전했다. 그녀가 열심히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음, 의무, 책임보다는... 사랑인 것 같아요! 먼저 계셨던 분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걸 앞으로 전달해줄 타인에 대한 사랑이요."


아, 머리가 띵했다. 맞네, 사랑! 나와 직접적으로 닿아있지 않은 누군가에게 연결감을 느끼고,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을 주고 싶은 마음.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하지. 

사랑이라는 단어가 뜬구름 잡는 단어가 아니라, 이보다 적절한 단어는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항상 타인과 함께 공존한다. 우리 모두에게 무작위 하게 주어진 삶의 출발선이 다르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앞서 달리고, 누군가는 뒤처져서 달린다. 뒤쳐진 누군가는 삶에서 재기할 두 번째 기회를 얻지 못하기도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끝끝내 도움을 받지 못한다. 

또 그런가 하면, 절망의 순간에 건네어진 친절한 한마디는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사무실에 꽂아둔 꽃 하나가 일주일간 수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깊은 공감이 사람의 일생의 상처를 치유해주며, 한 번도 대화해본 적 없는 가수의 노래가 사람을 위로해준다. 아파서 무기력할 때 의사가 환자를 돌보아준다. 누군가를 만나야만 하는 순간에 택시기사가 빠르게 그곳으로 데려다준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있다. 그 연결감을 아주 잘 보여주는 글이 있다. 스티브잡스가 말년에 그 자신의 메일함에 남긴 메일. 

우리가 타인과 연결되어있음을 느끼면서 살 때, 내가 받고 있는 것, 그리고 주고 있는 것들을 느낄 때, 우리는 더 풍성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밥을 먹을 때, 이 밥을 누군가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었음을 떠올려보자.

또 누군가가 먼 거리를 빠르게 달려 이 음식을 당신의 앞으로 운반해주었음을 생각해보자.

아침 지하철을 탈 때, 누군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이 지하철을 운전하고 있음을 생각해보자.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배달하는 청년의 마음을 느껴보자. 

겨울 버스정류장에 앉을 때, 누군가가 추운 밤에 버스 정류장에 바람막이를 달아놓아, 잠시 바람을 피해갈 수 있음에 감사해보자.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일'로 가능하다.

누군가의 일과 노고를 느끼고, 더 많이 감사하자. 일에 담긴 누군가의 노고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때, 당신이 하고 있는 일 또한 더 귀하게 느껴질 것이다. 


존재에 대한 사랑이, 우리가 일을 할 수많은 남은 시간동안, 나와 당신이 길을 잃는 순간에 방향을 제시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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