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이야기
“다소 과장을 해보자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새롭게 발전시키며,
우리의 존재를 스치는 모든 영향들의 교차점을 지나며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오시이 마모루 감독 1995년작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는
우리가 분절해서 지칭할 수 있는 개인/개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광대한 네트net 안에서 낱낱의 신체를 지니는 것이
진화의 산물이긴하지만
본래 우리는 그 안을 떠도는 정보이며
‘나’라는 것은 진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정보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구획, 문(門)이라고 합니다.
영화는 내내 이를 굳이 영어로 표현하지요. 게이트Gate.
어쩌면 그럴지도.
관객은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게끔 이끌립니다.
아니라면, 그냥 그 관객은
이 영화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시종 알아채지 못하고
‘난해하다’고 말할 뿐입니다.
듣는다면 바로 알아 들을 수밖에 없고,
다르게 알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듣는 마음은 아예
아무것도 [알아] 듣지 못합니다.
불경에도 비슷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연속’한다는 착각을 붙들고 고집하는 ‘아집’의 존재, ‘나’를 지니지만
실제로 연속하는 나는 없고
끊임없이 생멸(生滅)한다고, 깜박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예전 형광등처럼 말입니다.
600분의 1초 주기로 켜졌다 꺼지는 형광등은
때로 뭔가 끊기는 느낌이야 주지만 대체로 내내 밝게 비추는 불빛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사실.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감각하고, 인지하는 것뿐이지
어쩌면 칸트의 지적처럼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 thing-in-itself)는
영영 알 수 없는 것인지도요.
그럼에도 우리는 이 세계의 그물(網, net)을 형성합니다.
힌두 전통은 이를 일컬어 인드라망(Indra網)이라고 부르고,
인드라망 속에서 각각의 존재자는 따로 제 모습이 있는 게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비추어 나타나는 형상일 뿐,
그러므로 무엇이 나다, 너다, 저것이 그다, 이를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모든 가르침들은 특정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변화의 사상입니다.
그리고 개체의 환상[그것이 가치 있다거나 가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의 사상이라는 점.
우리는 오롯하게 개체이지 않고
실상은 ‘상호 결정하는 관계, 관계적 존재’일 뿐이라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내가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숙고하여 관찰하고 발견해야 하는 건
내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느냐,
다시 말해,
나는 어떤 태도를 갖는 존재인가,
어떤 태도를 선택하여 관계 맺는가입니다.
이 말을 짧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요?”
게 누구요,
거기 누구 없소?
休
*울리히 베어 엮음, 이강진 옮김, 『당신은 당신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삶을 위한 일곱 개의 주석』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