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전복할 큰것 또는 처음것.
괴베클리 테페는* 튀르키예 남동부 고원 지대에 위치한 고대 유적인데, 이에 따르면 인류 문명의 시기는 이제껏 알려진 수메르나 이집트보다 일만 년 이상 일러진다. 믿기 힘든 도약이자 나머지 전부와 맞먹는 거대한 공백을 남기는 변화다.
이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돼 있다. 이제 해석이 남아 있으며 최초 발굴자 클라우스 슈미트(Klaus Schmidt) 고고학자의 사후 중단이라고 할 만큼 추가 발굴은 지연되는 중이다. 주된 발굴은 1994년부터 2014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괴베클리 테페가 무엇인가는 답하기 어렵다. 과거의 모든 것은 엄격하게는 상상의 영역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끄집어낸 것만으로 상상력이 설레는 저것이 무언지는 알 만하다. 너무 커서 그것의 의미는 달리 비틀 수가 없다. 괴베클리 테페는 ‘이전의 모든 것의 종말’이다.
종말이라는 말의 어감이 어떨지 상상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이 없다. 자잘하게 보면 세부사항이 다종다양하지만 ‘멀리서 보면’ 인류의 지성이 확장되고 학문이 다져온 방향은 차차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고 땅에서도 다시 사람에게, 초월적인 사람 그러나 동시에 무가치하고 다른 모두와 별다를 게 없는 초라한 사람에게 집중해온 역사다. 우리는 점점 더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마르크스 사유의 연장선에 서 있고, 인간의 존엄을 주장할수록 인간을 사물화하고 개인을 앞세울수록 소외하는 비틀걸음을 걸어왔다. 이 풍경을 받아들이는 냉정은 소중하되 ‘이게 다인가?’ 되물을 수 있다. 그리고 개개인의 엇나간 소망이나 집념과 별개로 인류는 집단적으로 ”이게 다예요“라며 모든 질문에 답한 모든 답들의 도서관을 쌓아 왔다. 그리고 이 답들이 늘고 공고해질수록 답변은 냉담하고 공격적으로 이전의 다른 답, 좀 더 먼(그러므로 좀 더 하늘에 가깝고, 사물보다 의미를 우선하는) 답들에 대해 비난하고 파괴해 왔다. 사라진 자, 죽은 자들과 토론해 얻은 승리의 트로피는 승자를 위로하지도 기쁘게 하지도 않았지만 기술의 발전과 잇따른 생활의 편리가 이를 잊게 했다. 중독의 시대라지만 우리가 중독된 건 현대세계의 일부가 아니라 세계 자체이며, 이러한 사고방식 자체일 것이다. 즉, 이게 전부다. 우리는 넘어설 것도 없고, 너머란 없다, 거짓말이다, 최소한 여기에 의미 없다.
그리고 괴베클리 테페는 인류가 할 수 있거나 하고 싶은 걸 한 게 아니라, 다시 역사가 기록을 남기는 시작점에 다다르는 일만 년 뒤까지 해야만 [한다고 생각/믿는]하는 것을 하기 위해 모든 걸 견디고 모든 걸 시도해서 해냈고, 부대한 다른 전부도 이루었다는 걸 제시한다.
아직 해석이 그치지 않아 괴베클리 테페의 대관식은, 도래할 의식의 혁명, 사고의 혁명, 인류의 전 기억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고, 당긴 시위처럼 활을 매겨 팽팽히 조여 있다. 놓으면, 끝이다. 모든 왕들이 왕좌에서 내려올 사건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말을 아끼며, 아직은 내 취향, 즐거운생활의 저류로서 배불뚝이 언덕의 유적과 거기 담겨 있다 열려진 세계의 향기를 술회한다. 그것은 우리가 무의미하기 여긴 것들이 모두 돌아와 군림하고 배제하던 거짓 왕들을 쫓아내고, 죽은 자들을 살릴 것이다.
괴베클리 테페는 탄생이나 발명이 아니다. 인간정신에서 상실한 그리움, 본래 기관의 회복, 바야흐로,
“왕의 귀환“이다.
休
*나무위키 괴베클리 테페 항목은 이런 문단으로 시작된다: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는 튀르키예어로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이름의 지명으로, 튀르키예 남동쪽 샨르우르파(Şanlıurfa)도 외렌직(Örencik)군에 있는 석기 시대의 유적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