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켓 팝송 Aug 26. 2019

 형.     

 지훈이 성은 코피를 자주 흘렸다. 툭하면 코피가 났다. 엄마는 형을 임신했을 때 태교를 잘 하지 못한 탓이라면서 형에게 미안해했다. 엄마는 형에게 여러 가지 민간요법을 써봤지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보니 마루 한켠 광주리에 오리 한 마리가 있었다. 오리는 목을 길게 뺀 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토끼농장에 이어 오리농장이 되는 건가.’ 오리의 먹이를 생각하다 배고파 부엌으로 가서 미숫가루를 꺼내 물에 타서 마셨다. 

 “너만 마셤나?”

 어디에 있었는지 지훈이 형이 팔짱을 낀 채 내 앞에 섰다.

 “형도 먹젠?”

 나는 빈 그릇을 형 얼굴 앞에 내밀며 약올렸다.

 형과 나는 자주 싸웠다.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싸웠다. 냉장고에 하나 남은 아이스크림 때문에 싸운 적도 있다. 서로에게 심부름을 떠넘기며 싸우기도 했다.

 “이상한 사람이네.”

 “이상한 사람? 그럼 내가 간첩이냐?”

 반공 교육이 여전하던 1980년대 초반이었기에 간첩이라 칭하는 것이 가장 큰 욕이었던 시절이었다. 

 형과 나의 싸움은 말싸움으로 끝나지 않고, 주먹다짐이 오가기도 했다. 한 살 터울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 형의 코에서 피가 나면 나는 엄마에게 크게 혼났다. 

 “지훈아.”

 뒤뜰에서 엄마가 형을 불렀다. 마루로 나가보니 오리가 보이지 않았다. 형이 뒤뜰로 가고, 나도 따라 가보았다. 

 뒤뜰에는 오리가 비파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하얀 목이 덩굴 같았다. 어머니 손에는 식칼이 들려 있었다. 엄마가 식칼로 오리의 목을 벴다. 오리의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엄마는 미리 준비한 사발로 피를 받았다. 오리는 꽥,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지훈아. 혼저 왕 이거 마시라.”

 엄마가 오리 피 가득 든 사발을 형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형이 망설이자 엄마가 채근했다.

 “얼른 마시라게. 겅해야 코피 안 난다.”

 형은 마치 사약을 받아든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며 오리 피를 들이켰다. 내가 오리 대신 꽥,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 후로 형의 코피가 멈췄다. 수도꼭지를 꽉 잠근 것 마냥 더는 코피가 나지 않았다. 엄마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옆 마을에 사는 심방으로부터 들은 대로 실행했다는 말이었다.

 형은 착하다. 형이 중학교 2학년일 때. 전화벨이 울려서 내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형 아는 사람이라면서 형을 바꿔 달라고 했다. 전화를 받은 형은 아주 깍듯하게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내가 누구냐고 묻자 졸업한 선배라고 했다.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거냐고 물으니 형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응. 학교에 불 지르라고 하네.”

 정말 불을 지를 것처럼 덤덤하게 대답했다. 

 사실 형은 중1일 때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집 마당에 있는 종려나무를 불태운 전과가 있었다. 

 형은 중학교에 불을 지르진 않았다. 그 협박 전화는 몇 번 더 오다가 말았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간 형은 용접을 하다 불꽃이 눈에 들어가 응급실에 갔다. 입원해 있는 형을 보고 “형은 불과 인연이 많아.” 라고 분위기 안 맞게 말했다가 아버지로부터 꿀밤을 맞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