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은 거의 모두 영원하지 않은 것들이다. 시간, 재화, 지식, 체력 등 우리는 유한한 것들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우선 순위의 문제를 야기한다. 하고 싶은 것들은많은데, 해야할 것들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거나 재화 또는 체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을 선택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우선적으로 한다면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우리의 시간, 재화, 체력을 고갈시킬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곧 가치 없는 사소한 일들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지금껏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에 대해 수많은 가르침들이 있었다. 두 가지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먼저 『원씽』의 저자 게리 켈러는 성취할 경우 다른 모든 일을 쉽게 하거나 불필요하게 만드는 ‘단 한가지의 중요한 일(The One thing)’에 온전히 집중하라고 했다. 또한 세계적인 동기부여 강사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열 가지 중요한 일 리스트를 만들어 늘 품에 지니고 다니라고 말했다. 나는 이들의 말을 따라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했던 적도 있었고 매주 열가지 목표 리스트를 종이에 적어서 주머니에 가지고 다녔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내 삶은 딱 한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특히 바쁜 직장 생활은 내가 딱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또한 나는 열 가지 목표 리스트를 가지고도 생활해 보았는데, 리스트를 수시로 확인하지 않으면 목표들을 기억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많은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내게 큰 부담과 스트레스가 되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다음의 고민으로 이어졌다. “우선순위를 정할 때 몇 가지에 집중해야 하는가?” 무슨 대답이 나올지 바로 예상되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삼의 법칙 대로 세 가지다.
우선순위를 세울 때 세 가지 기준
그런데 처음 내가 세 가지 우선순위를 정하기 시작할 때, 한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것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시점에서 내가 진짜하고 싶은일들이 당장에 해야하는 일의 베일 속에 가려지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회사에서 내가 추진하는 과제, 작가로서 쓰고있는 글, 두 아이의 육아를 위해서 해야하는 일 등등 이미 내가 하고있는 일 중에서 세 가지 우선순위를 잡았다. 이러한 일들은 당장에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곧 완결 종료되기 일쑤였다. 나는 수시로 세 가지 우선순위 리스트를 재구성해야 했다. 무엇보다 내가 세 가지 우선순위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도 내 삶이 크게 바뀌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우선순위를 세울 때 세 가지 기준을 마련했다.
첫번째 기준은 이틀 이상 충분히 고민되었는지의 여부다. 최소 이틀의 시간을 가지고 고민해야, 현재의 바쁜 삶을 뛰어넘어 자신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일들을 발굴해 낼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직장에서 내가 자주 경험했던 현상이었다. 만약 한두 시간 안에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 세가지를 발굴하라고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미 진행하고 있고 해야만 하는 일들 중에서 세 가지를 선택한다. 반면 그들에게 이틀이란 충분한 시간을 주면, 그들은 장기적으로 중요하지만 현재의 업무가 바빠서 소홀하고 있었던 일이나 본인이 정말로 해보고 싶었던 것을 생각해낸다.
두번째 기준은 장기적으로 중요한 일을 선정하는 것이다.『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브 코비 박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긴급한 일을 중요한 일로 여기고 있으며, 긴급한 일을 하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성공하는 사람들, 생산성이 높은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중요한 일과 목적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세 가지 우선순위를 정할때 장기적으로 중요한 일을 선정해야 한다. 그동안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평가를 받았다. 경험적으로 내가 확신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모든 일은 중요하지 않다.” 그동안 당장 중요하다는 일들 정말로 많이 했다. 회사 분위기상 나는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빠짐없이 처리해야만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연말 인사 고과 때가 되면 늘 깨닫게 되는 것은 이것이다. 당장 중요하다는 수많은 일들이 아닌 장기적으로 중요한 몇 가지 일들이 상위 고과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누가 시키든 얼마나 급하든 결국 잡일은 잡일이다. 다만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그런 일들을 안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잡일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편이다.그래야 남은 시간에 장기적으로 중요한 일들, 결국 내 고과에 반영되는 일들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 기준은 내가 도전하고 싶은 것을 선정하는 것이다. 철학자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착각하며 산다고 말했다. 직장인이니까, 한 가정의 아비이니까 등의 이유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많이포기했던 것 같다. 포기하는 만큼 내가 가진 욕망의 총합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대신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여긴 것 같다. 나는 회사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가족이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여기며 오랫동안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마음 속에서 이런 음성이 들리 기시작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한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다 할 수는 없어도 한 두 가지 정도는 과감하게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때때로 나는 나 자신이 보이지 않는 알 껍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보이지 않는 알은 매우 특이한데, 하나의 껍질만 있는 것이 아니라 껍질 속에 껍질이 있고 그 껍질 속에 또 다른 껍질이 있다. 최초의 껍질은 어머니의 자궁이었고, 나는 양수막을 깨고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위의 수많은 껍질들을 깨고 성장해 여기까지 왔다.
내게 도전이라는 것은 껍질을 깨는 것과 같다. 껍질을 깨야 새롭게 성장하듯, 도전을 해야 비로소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는 세 가지 우선순위 리스트에는 가능한 내가 원하고 도전하고 싶은 것을 선정한다.
나는 세 가지 우선 순위를 정할 때 세 달 곧, 한 분기 동안 지속 가능한 일을 선정한다. 그 이유는 세 달이란 시간이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새롭게 교체되는데 걸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세 달의 시간 동안 나 자신이 새롭게 변화되는 만큼, 나는 세 달이 지나면 우선순위 리스트를 새롭게 교체한다. 예를 들어 2021년 2분기 나의 세 가지 우선순위 리스트는 다음과 같았다.
1. 왓이프 챌린지
2. 행복한 칼퇴 문화 만들기
3. 자녀들의 말에 “우와!”로 반응하기
왓이프 챌린지
왓이프 챌린지는 ‘만약 ~하면 어떨까?’라는 의미의 What if 질문을 자유롭게 던진 뒤 재미있겠다 싶은 질문에 무엇이든 도전하는 것이다. 왓이프 챌린지의 규칙은 딱 하나 있는데, 한 번에 단 하나에만 도전하는 것이고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진행하는 것이다. 21년 2분기 내가 도전한 왓이프 챌린지는 타자 속도 2배 만들기였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분당 2000타의 속도로 타이핑을 하는 우리나라 타이핑 속기 1등 ‘FishFast’의 영상을 보았다. 그 영상을 보는 내내 나는 감탄을 멈출 수 없었고, 영상을 본 뒤, “나도 그렇게 글을 빨리 쓸 수 있다면, 작가 활동을 할 때나 회사에서 보고서를 쓸 때 매우 편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5월 11일부터 타자 속도 2배 만들기라는 왓이프 챌린지를 시작했다. 내 한글의 평균 타이핑 속도는 분당 350타 정도인데만약 내가 이 속도의 2배인 한글 700타 이상을 찍으면 이번 왓이프 챌린지가 성공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한글 타이핑을 연습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 한글 타자 속도를 측 정하기 위해서 'Taza'라는 무료 어플을 다운로드 받았다. 5/11부터 30~40 분 정도 시간을 내어 이 어플이 제공하는 정규 연습 프로그램 (자리연습, 단어연습, 짧은글연습, 긴글연습)을 따라 연습했다. 그리고 어플에 들어 있는 장문 타자 연습을 통해 측정된 평균 속도를 매일 모니터링 했다.
첫 10일 동안 짬짬이 타자 연습을 꾸준히 해온 덕에 하루마다 평균 10 타 정도의 속도가 붙었다. 그래서 한글의 경우 최고 470타까지 실력이 향상되었다. 그런데 현재의 방법을 고수해서는 절대로 분당 500타 속도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집중을 해도, 심지어 컨디션이 좋을 때여도 짧은 글과 긴 글을 통틀어 500타 이상의 기록을 달성할 수 없었다. 나는 구글에서 ‘타자 빠르게 치기’ 관련 검색되는 모든 글들을 찾아 읽었고, 이를 통해 타자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비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두 가지 비법을 찾았다. 첫번째 비법은 타자를 칠 때, 음절을 단위로 순식간에 타자를 입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그대’ 를 친다고 했을 때, ‘사 라 ㅇ 하 느 ㄴ 그대’로 각 자음과 모음을 하나의 단위로 연결해서 치는 것이 아니라 ‘사- 랑-하-는-그-대’로 음절 단위로 연결해서 빠르게 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 음절마다 정확한 타자의 위치가 머릿 속에 숙지되어 있어야 했고, 이것이 내 손에서 빠르게 튀어나오도록 꾸준히 손가락 연습을 해야 했다. 두번째 비법은 단어 사이를 연결하는 스페이스가 나올 때 이를 빠르게 치는 것이다. 유튜버 ‘FishFast’뿐만 아니라 많은 블로거들의 말에 따르면 스페이스 바 입력 속도가 타자 속도 향상 과정에서 가장 큰 병목 현상이었다고 한다. 나는 기존에 단어와 단어 사이의 스페이스를 별도의 문자로 인식했었다. 하지만 이제 앞 단어와 스페이스를 하나의 단어로 인식하여 타자를 치는 연습을 했다. 즉, ‘사랑하는 그대’를 칠 때, ‘사랑하는’ 치고 ‘스페이스’ 치고 ‘그대’를 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_’을 치고 바로 ‘그대’ 를 치는 것이다. 이틀 동안 나는 이 두가지 비법을 중점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5월 22일, 처음으로 한글 500타를 돌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두 가지 비법을 꾸준하게 적용하고 연습해서 매일 안정적으로 한글 500타 이상의 속도로 타이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한글 500타를 기록한 뒤 일주일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600 타라는 벽을 깨기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타이핑 속도를 저하시키는 ‘요인’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이를 제거 하는 방향으로 훈련을 했다. 나는 장문의 글을 타이핑하면서 반복적으로 실수하거나 빨리 쳐지지 않는 것들을 점검 했다. 내가 발견한 가장 큰 딜레이 요인은 오른손 새끼손가락이었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가지고 0, 게, 계, [, ], “, ” 와 같은 문자를 쓸 때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이 문자들 중에서 특히 ‘게’는 정말로 많이 쓰게 되는 문자이다. 기본 자리에서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게’를 치려고 하면 내 새끼손가락이 짧아 오른손을 약간 위쪽으로 비틀어야 했다. ‘게’를 친 다음에 바로 기본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잦은 실수와 딜레이가 있었다. 나는 이 문제의 원인을 ‘짧은 새끼손가락’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약지로 새끼손가락을 대신해보았다. 내 약지는 충분히 길기 때문에 새끼손가락으로 치게 되는 모든 문자를 기본 자리 이탈 없이 칠 수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오른손으로는 엄지, 검지, 중지, 약지만을 가지고 문자를 입력하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는 오른쪽 shift 키와 ?, / 문자만을 입력하는 결정을 했다. 첫 하루 동안은 좀 어색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기본자리 이탈 없이 문자를 입력하게 되어 전보다 더 편한느낌을받았다. 이틀 동안 열심히 이렇게 연습한 덕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서 처음으로 600타 기록을 넘겼다. 또한 매일 같이 550타 이상의 속도로 편하게 타이핑을 하는 것이 가능해질 정도로 타이핑 실력이 향상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연습했고 오랫동안 타이핑을 해도 피로감 없이 타이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연습을 하면 할수록 오타 발생률이 점차 낮아졌고 나는 매일 600타 이상의 속도로 타이핑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조금씩 조금씩 타자 속도가 향상되었고 결국 챌린지시작 52일 만에(5/11일~7/2일) 처음으로 700타를 넘겼다. 이후 며칠 더 안 정적으로 700타 달성 여부를 확인한 뒤, 7/6일 “분당 700타 속도로 타이핑하기” 챌린지를 완수했다.
행복한 칼퇴 문화 만들기
2021년 1분기, 나는 회사에서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다. 메모리 신제품의 수율 목표를 달성한다는 일념으로 온 부서 사람들은 평균일 일근무시간에 두 시간 정도는 기본으로 더 일을 했다. 나와 내 부서원들은 매일 저녁 8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갈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가면 나는 마치 기름이 바닥난 자동차처럼 기진맥진한 채 침대에 쓰러지기 일쑤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쓸 힘이 전혀 없었다. 나는 매일 같이 일어나 늦지않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여 씻고 나서 바로 잠자고, 또 일찍 일어나고 다시 출근하는 반복적인 삶을 살았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중에는 아이 둘, 또는 셋을 키우면서도 일이 많기 때문에 나보다도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그리고 리더인 내가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은근히 눈치를 보며 늦게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나는 팀원들에게 “직장 생활에서 행복한 일이 뭐가 있을까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한 분이 이렇게 답을 했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칼퇴하는거죠!” 나는 이 대답을 기억해냈고 2분기 우선순위 목표로 행복한 칼퇴 문화 만들기를 정했다. 적어도 내 부서 안에서 말이다.
나는 나와 팀원들이 일찍 퇴근하지 못하는 이유들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 이유를 제거한다면 행복한 칼퇴가 가능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첫 번째 이유는 많은 업무량이었다. 물론 상부에서 수명받은 업무는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부서의 R&R(Role and Responsibility,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아 사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우리 부서가 떠맡고 있거나 다른 팀에 빨리 위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우리팀은 당시 추진되고 있는 모든 과제를 리스트업하였고 그 과제를 추진함에 있어 우리 부서의 R&R을명확하게 정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더 나아가 과제를 협업하는 유관부서의 R&R 또한 명확하게 정의한 뒤 우리가 해야할 업무와 그들이 해야할 업무, 그리고 다같이 협업해야 할 업무를 구분하였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아침회의를 진행하는데 과제별 R&R이 정리될 때마다 공유하는 식으로 내부 교육을 했다. 시간이 지나자 팀원들이 신속하게 유관 부서에 업무를 위임하기 시작했고 꼭 해야할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결과 최소한 우리부서의 업무량이 최소한 현재보다 더 많아지는 것은 방지할 수 있었다.
칼퇴를 막는 두번째 이유는 문서작업이었다. 나는 내 팀원들이 집에 가지 않고 무엇을 하는지를 관찰해 보았다. 거의 대부분 그들은 회의 자료를 작성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회의 자료 작성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있을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회의자료 마스터 템플릿을 만들어 놓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와 팀원들은 주요 과제별 회의 때마다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표 양식을 만들었다. 이제 팀원들은 업무를 추진하면서 새롭게 자료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 양식에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만 하면 되었다. 우리는 과제별 자료 업데이트 담당자를 선정 했고 각 담당자가 매주 회의 하루 전, 주간 보고 하루 전까지 업데이트 하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대표 양식을 활용해서 업무를 추진하니 팀원들은 문서 작성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PPT를 만들고 다듬고 고치는 긴 시간을 아껴 본인의 주요 실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늦게까지 남아서 자료를 작성해야 할 필요와 명분이 사라지니 (내 경우는 각 자료 취합 및 보고 준비로 주 2회 정도 늦게까지 일을 하긴 해야했다), 서서히 야근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칼퇴를 막는 세 번째 이유는 오래 일하면 일을 더 잘한다는 착각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사람들이 일을 오래하면 더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회사 생활을 오래하면서 성과를 잘낸다는 많은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나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일을 오래 하는사람이 성과를 잘 내는 것이 아니라 일을 잘하는 사람이 성과를 잘 낸다.” 나는 내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록 수명 업무들이 갑자기 생겨서 도전을 포기해야 할지라도 가능한 저녁 6시 안으로 모든 업무를 마무리하고 칼퇴에 도전해보겠습니다. 만약 제가 6시를 넘긴다면 이것은 제가 일을 못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보겠습니다.”
이 말을 한 그날부터 나는 진짜 6시 전에 칼퇴근을 했다. 이를 위해서 일과 시간에 정말로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해서 일을 했다. 이후 아침 회의 시간에 팀원들과 차 한잔 하면서 “저 오늘 5시30분까지 집중해 보겠습니다!”와 같은 우스갯소리들이 오갔고 각자 내뱉은 말들을 지키고자 진짜 집중해서 일을 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칼퇴를 시전했다. 팀원들이 칼퇴를 해도 내 부서는 개선 활동을 차질 없이 잘 운영했고 성과 또한 잘 나왔다. 그렇게 내 부서 안에 행복한 칼퇴 문화가 실행 되었다. 그러나 한 달 뒤에 연달아 임원 수명 핵심 과제들이 쏟아지는 바람에 ‘행복한 칼퇴 문화’를 한 달 밖에 유지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한달 동안 팀원들과 나는 참 여유롭고 균형 있게 회사생활을 했다.
자녀들의 말에 “우와” 하고 반응하기
2021년 5월 19일 방송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가수 씨엘의 아버지이자 물리학 교수인 이기진 교수가 출연했다. 방송에서 이기진 교수는 딸 씨엘이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자퇴를 선언했던 일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학업과 연습생 생활을 병행하며 새벽 3~4시에 자는 생활을 했던 씨엘은 강변북로를 운전하고 있던 아빠에 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나 학교 그만두고 싶어!” 그러자 이기진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네가 그 결정을 하려고 얼마나 오래 고민했겠냐? 좋아, 하고 싶은 대로 해!” 방송에서 인터뷰 영상으로 등장한 씨엘은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절대로 ‘노’ 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번도 아빠는 ‘안 돼!’라고 이야기하시지 않았어요.”
이 방송을 시청하면서 나는 두 자녀의 아빠로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알게 모르게 자녀들의 말을 무시하거나 부정적으로 답하곤 했다.
“아빠, 이거 하고 있거든!”
“조금 있다가 이야기해줄래?” (그러고는 자주 까먹었다)
“안돼! 그거 위험한 것 같아!”
“아빠가 볼 때 좋지 않은 것 같아!”
“그것 이미 해봤잖아. 그때는 하기 싫어했잖아?”
나는 그동안 내 기준의 근거를 대며 자녀들의 많은 생각과 말을 자르고 거절했다. 나는 자녀들에게 미안함을 느꼈고, 이기진 교수의 양육법과 같이 자녀들의 말에 최대한 “우와!” 하며 긍정적으로 반응해보기로 했다. 내 기준에서 불합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일단 자녀들의 말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었다.
“우와!”
“그렇구나!”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멋진 생각을 했니?”
“좋아! 너 말대로 해보자!”
2021년 5월부터 6월까지 60일 동안 “우와!” 하고 반응해보았다. 그 과정은 정말로 쉽지 않았다. 크게 세 가지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 고비는 아이들이 그만 해야하는데 더 하겠다고 떼를 쓸 때였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충분히 놀았고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안 가겠다고 떼를 쓰고 울기 시작할 때, 예전 같았으면 아이들을 혼내고 강제로 집에 데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희들 정말 많이 놀고 싶었구나! 그래, 10분만 더 놀다가 집에 가자!” 이렇게 반응해보았다. 나는 TV 육아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규칙을 정하면 지킬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들었고 아이들에게 “너희들 몇 번 더 놀고 싶니? 두 번, 세 번, 네 번?” 이렇게 묻는 노하우까지 생겼다.
또 다른 예로, 첫째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문제는 벽지나 가구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여러번 주의를 주고 혼을 냈지만 그래도 딸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도 어김 없이 내 책상에 물감칠을 했고 나는 이렇게 반응해보았다. “와우! 아빠 책상이 예술 작품이 되었구나! 예서야, 그림 정말 잘 그리네. 그런데 예서야, 아빠는 예서가 아빠 공책에 그림 그려주면 더 좋을 것 같아! 여기 아빠 공책들 있으니까 마음껏 그려줘!” 실제로 딸은 아빠 공책에 낙서를 했고 아빠 책상이나 아빠 책에 낙서하는 것을 멈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은 또 다시 벽지에 그녀의 작품을 남겼다. 화가 났지만 화를 참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와, 멋진데. 예서 작품이 도화지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멋지다. 예서야, 아빠가 아예 벽에 커다란 보드를 붙여줄까? 마음껏 벽에 그림 그리게 말이야” 딸은 답했다. “응,좋아!” 일주일 뒤 딸의 키보다 훨씬 더 큰 화이트 보드가 도착했고 딸은 마음껏 보드에 낙서를 했다. 그 이후 딸은 더 이상 벽지에 낙서하지 않았다.
두 번째 고비는 해야 하는데 안 하겠다고 떼를 쓸 때였다. 처음에는 “응,그렇구나! 안하고 싶구나! 근데 안하면안되는데...”와 같은 식으로 반응했다. 화만 내지 않았지, 긍정적이 아닌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자기 전 칫솔을 계속 거부하는 아이에게 “응, 그래! 지금 안하고 싶지만 치카치카 안 하면 이빨 다 썩어서 치과 가야 할 걸? 그럼 엄청 아플 텐데... 아우 아프겠다!” 이렇게 나는 반응했다. 그런데 이것은 “우와!”로 반응하기의 취지(긍정적인 반응)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쉽지 않지만 기다려주는 전략을 택했다. “예서와 예준이가 치카치카 정말 잘하는데 지금은 하고 싶지 않나보네. 자기 전에 준비되면 이야기해줘!” 나는 이렇게 말했고, 시간이 좀 지나자 아이들은 양치하고 싶다고 했다(매일 양치하기 때문에 양치하지 않으면 불편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밥 먹을 시간이 다 되어도 안 먹고 버티고 있을 때 나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오케이, 알았어. 우리는 지금 밥 먹을거고, 예서 밥은 여기 준비해 두었어. 예서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을 때 먹어.” 결국 아이들은 배고파지니 밥을 먹었고, 아내와 나는 스트레스 받 지 않아서 좋았다(물론 유치원 버스를 타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 준비하 는 것과 같이 딜레이를 용납하기 어려운 일들은 예외였다).
세 번째 고비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방해 받았을 때였다. 평일 저녁 퇴근 후에는 직장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고자 잠시 내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좀 보내는 편이다. 그런데 내 두 아이들은 어떻게든 내 방에 들어와 놀아달라고 떼를 쓴다. “아빠 지금 좀 힘들어! 아빠 혼자 있고 싶어! 아빠 좀 예민하거든!” 이렇게 말해도 아이들은 듣지를 않고 계속 방해를 한다. 그러다 결국 내가 못 참고 화를 내며 아이들은 펑펑 우는 경우가 많았다. “우와!” 하고 반응하기를 하면서 나는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화를 내지 않고 잘 말할지 많이 고민했다. 내가 찾은 답은 “예서와 예준이가 아빠 많이 보고 싶었구나! 아빠가 지금 좀 혼자서 쉬어야 하는데 20분 동안 혼자 방에 있을게! 알람 소리가 들리면 방에 들어와줘! 같이 놀자!”였다. 나는 약속대로 알람을 맞추었고, 아이들은 그 시간 동안 방해하지 않고 내 시간을 존중해 주었다. 나는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최대한 기분 전환을 하며 휴식할 수 있었다.
2개월 동안 자녀들에 “우와” 반응하면서, 나는 여러가지 배운 점들이 많았다. 첫째는 아이들이 표현력은 좀 부족하지만 나와 동일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 나와 같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싶고, 생각한 것을 존중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는 긍정적으로 반응할 때 비로소 아이들 내면에 있는 긍정적인 동기를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아이들 내면에 있는 부정적인 동기만을 보게 된다. 세 번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아이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내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정말 행복했다.
세 가지 우선순위는 마음의 평안을 준다
‘신뢰’라는 의미의 단어 Trust는 ‘평안’을 뜻하는 독일어 Trost에 비롯되었다고 한다. 무언가를 신뢰할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다. 신뢰가 깨지면 마음의 평안도 깨진다. 이에 대해서는 국제 정치 뉴스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는데, 양국가간 신뢰가 깨지는 경우 필연 잘 유지되어 온 평화도 깨져버린다.
세 가지 우선순위를 정할 때 중요한 것은 “내게 장기적으로 중요한 이 세 가지가 내 삶을 변화시켜준다”고 믿는 믿음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도전해나갈 때, 우리는 아무리 많은 일들 속에 둘러싸여 있어도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인생에는 늘 등장하는 세 가지가 있다. 변화, 선택 그리고 원칙이다.
-스티븐코비-
아이작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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