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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이 필요한 이유

by 아이작 유

정말 우리는 나보다 똑똑한가? 집단적으로 정의롭지 않고 어리석은 행동을 선택한 역사적 사례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집단지성이 정말 인류의 이익과 행복을 증진시킬까? 여러 사람들이 말들을 모은다고 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지혜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렇게 집단지성에 회의주의적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지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다음 세 가지 근거를 토대로 집단지성이 긍정적으로 작동할 것이라 주장한다. 첫째, 집단지성에는 다수결의 원리가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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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끼리 중국집에 가면 늘 직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부먹이냐 찍먹이냐의 문제이다. 이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하는 원칙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다수결의 원칙이다. ‘셋 중에 둘 이상’, ‘다섯 중에 셋 이상’과 같이 다수에 의해 선택된 대로 결정하면 된다. 다수결의 원리가 강력한 이유는 거의 모든 집단에서 다수결의 결과를 공정하다고 믿고 이를 거부감 없이 잘 수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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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가 민주주의의 꽃 투표이다. 민주주의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투표를 통해 민주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며, 다수결의 원리대로 정당의 후보자를 뽑고,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를 뽑는다. 그런데 다수결의 원리가 단순히 구성원들이 잘 믿고 잘 수용한다는 것을 넘어, 집단이 더 올바르고 더 정의로운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도움이 될까? 이에 대한 수학적 기초를 마련한 사람은 바로 18세기 프랑스의 근대철학자 니콜라 콩도르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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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헌법 수립에 기여한 벤자민 프랭클린과 토마스 제퍼슨이 와서 자문을 구했을 정도로 뛰어난 철학자였지만 안타깝게도 급진 반대파당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음독자살했다고 한다. 그는 옥중에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다수결의 원리를 연구했다. 그리고 1785년 《다수결의 확률에 대한 해석학의 적용》이란 제목의 에세이를 썼다. 이 글은 무려 150년이 지난 뒤 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어 전 세계에 알려졌다고 한다.


콩도르세는 다수결의 원리로 결정한 민주주의의 선택이 정말옳을 것인가 궁금했다. 그리고 집단의 규모가 커지게 될 때, 다수결의 원리에 의한 선택이 옳은 확률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갑자기 수학 공식을 등장시켜 미안하다. 복잡하다면 다음 쪽의 그래프만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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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만약 A를 선택할 확률 p가 랜덤 확률인 50%보다 크다면,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과반수가 옳은 선택을 하는 확률은 100%에 수렴한다. 그리고 확률 p가 더 커질수록 더빨리 100%에 수렴한다. 즉, 더 적은 규모의 집단으로도 더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다. 반대로, 확률 p가 랜덤 확률인 50%보다 작다면,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과반수가 옳은 선택을 하는 확률은 0%에 수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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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과를 본 콩도르세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전통, 편견, 감정, 잘못된 정보로 인해 랜덤 이하의 선택 확률을 가지게 되면 민주주의는 집단광기와 같은 잘못된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을 높이고 계몽을 확산시켜 이성의 능력을 살릴 수 있다면, 민주주의는 무한히 발전할 것이고 인류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풍요로움을 경험할 것이다.” 이와 같이 다수결의 원리는 단순 선호취합성을 넘어 집단지성의 가치를 나타낸다.


둘째, 집단지성에는 평균의 원리가 작동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다양한 개인들로 구성된 집단이 각 개인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결정을 할 때 항상 몇몇의 선택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선택지가 주어지면 앞서 언급한 다수결의 원리에 기초한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이 추측 또는 추정을 해야 하는 문제를 ‘상태 추정의 문제’라고 부른다. 앞서 투표의 문제에 있어 다수결의 원리가 작용하듯이, 상태 추정의 문제에서는 ‘평균의 원리’가 작용한다.


1906년 영국 플리머스에서 열린 가축 박람회에서 황소 무게 맞추기 이벤트가 열렸다. 이벤트 주최 측에서는 황소 한 마리를 즉석에서 도축해 고기를 올려놓았다. 사람들은 6페니(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0원 정도)를 지불하고 얻은 답안지에 고기의 무게를 추정해서 제출했다. 가장 정확한 답을 맞힌 사람이 상품을 얻었다. 찰스 다윈의 사촌이자 생물통계학자였던 프랜시스 갤턴은 이벤트에 참가한 800명의 참가자들의 답안지를 건네받았고 사람들의 추정치의 평균값을 구했다. 놀랍게도 실제 도축된 황소 고기의 무게는 1,198파운드(=543kg)였고 추정치의 평균값은 1,197파운드였다. 미시간 대학교의 스콧 페이지 교수는 평균의 원리가 작용하는 이유를 “다양성이 능력을 이기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페이지 교수의 증명에 따르면, 집단 판단의 오차는 개인들의 평균 오차보다 작다. (또다시 수학 공식을 등장시켜 미안하다. 중요한 것은 다양성 덕분에 집단지성이 개인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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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페이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집단의 오차는 언제나 개인들의 오차보다 작습니다. 그 이유는 개인 판단들의 오류가 다양성의 효과에 의해 상쇄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양성은 능력을 이깁니다.” 집단 오차가 작다는 것은 즉, 집단지성의 능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집단의 다양성이 커질수록 즉, 집단을

구성하는 참여자들의 배경, 능력, 전문성 등이 다양할수록 집단지성의 힘은 더욱더 커진다. 하버드 경제학과 리처드 프리먼 교수는 2011년 과학자들의 연구성과와 연구참여자 간의 상관성을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패턴을 도출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끼리 어울리고 연구하길 선호했다. 하지만 연구 성과 측면에서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과학자가 참여한 연구 논문일수록 더 창의적이고 더 혁신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셋째, 집단지성에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가 작동한다.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공간은 앞서 언급한 시장이다. 시장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판매자, 소비자, 경쟁자, 협업자 간의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이들은 모두 개인의 이익을 최대화 하고 개인의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행동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들의 행동은 수요와 공급 사이의 균형을 만들어 내고 이 균형으로 형성되는 시장 가격에 의해 사회의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도 했다. 마치 미래를 결정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기도 하다. 1988년 미국 아이오와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운영하기 시작한 ‘아이오와 전자시장(IEM, Iowa Electronic Markets)’은 집단지성을 통해 주요 시장 이벤트를 예측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측시장이다. 그동안 아이오와 전자시장은 대통령/상하원의원 선거 투표 결과 예측, 주가 예측, 정책 예측, 질병의 확산 속도 예측 등 다양한 이벤트를 예측해왔다. 만약 참여자가 돈을 건 예측이 실제 결과가 되면, 참여자는 투자한 돈에 해당하는 배당금을 얻게 된다. 따라서 예측 시장의 모든 참여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잃지 않기 위해) 저마다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베팅을 한다. 가장 널리 회자되는 사례는 2008년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의 민주당 경선 결과를 여론 조사 대비 두 달 선행하여 정확히 예측했던 것이다. 아이오와 전자시장은 선거 결과 내내 여론 조사보다 더 낫게 예측했고, 선거 일주일 전 예측 오차가 1.5% 수준에 불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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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워렌 버핏은 일찍이 집단지성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의 힘을 깨달았다. 워렌 버핏은 사람들에게 “시장을 이기려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자주 던졌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시가 총액 상위 500개 기업들의 주가 평균 지수인 ‘S&P 500 지수’는 장기적으로 볼 때 연평균 7% 정도 상승해 왔지만 날고 긴다는 수많은 펀드 전문가들은 그에 못 미치는 수익률을 거두었다. 유명한 일화로, 2008년 1월 워렌 버핏은 뉴욕의 헤지펀드 회사인 프로테제파트너스와 100만 달러를 건 내기를 했다(그들은 누가 이기던 판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워렌 버핏은 그 어떠한 투자 전문가도 장기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시장 수익률을 이길 수 없다고 믿었다. 그는 향후 10년 동안 S&P 500의 수익률이 프로테제파트너스의 수익률을 이긴다는 것에 걸었다.2018년 1월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워렌 버핏 연평균 7.1% 수익률,

프로테제파트너스 연평균 2.2% 수익률. 워렌 버핏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 《특이점이 온다: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레이 커즈와일》에서 세계적인 공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란 인간이 설명/정의할 수 없는 현상이나 사건이라 정의했다. 특이점을 인간이 현재 알 수 없는 블랙홀 내부의 상황에 비유하며, 특이점이란 무언가 특정 경계를 넘어서 인간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지식과 법칙으로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을 볼 때 2029년에는 인공지능이 인류의 지능을 앞서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인류 사회는 엄청난 기술적 도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는 ‘특이점’이라는 말을 레이 커즈와일이 최초로 언급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최초가 아니라 바로 니콜라 콩도르세가 최초였다. 콩도르세는 《인간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관(Sketch of a Historical Picture of the Progress of the Human Mind), 1795년》에서 무려 200년 전에 인간의 지적, 기술적, 윤리적 지식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그 결과, 인류 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생물학적 구조가 질적으로 변하는 특이점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콩도르세의 시대를 앞선 지성에 나는 크게 놀랐다.


아이작 유

<질문의 기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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