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갑자기 지칠 때가 있다. 일하기도 싫고 만사가 귀찮아서, 잠시 일상으로부터 작별을 고하고 일탈을 꿈꾸는 그런 때가 있다. 아마 일주일에 최소 한 번, 한 달에 네 번 정도 말이다. 나는 그 시간을 ‘일탈逸脫의 2시간’이라고 부르며 기분 전환을 하는 편이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정말로 좋았던 것은 한국에서 형성된 수많은 관계와 연결점이 자동으로 멀어지면서 나만의 구별된 시간을 갖게 된 점이다. 또한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일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받았다. 마찬가지로, ‘일탈의 2시간’을 통해서 잠시 일상 속에서 탈출하여 구별된 나만의 시간과 자유를 얻을 때, 나는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했다.
어떻게 ‘일탈의 2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작은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내가 찾은 것은 세 가지이다. 바로 ‘영화관 가기’, ‘독서하기’, ‘가지 않은 식당과 카페 가기’이다.
영화관에 자주 가는 것이 아니기에 모처럼 영화관에 가면, 맛좋은 구이류, 달달한 팝콘, 매콤한 떡볶이, 톡 쏘는 청량음료 등 먹고 싶은 것들을 잔뜩 안고서 영화 상영관에 들어간다. 자리에 앉아 영화가 시작되면 즐거운 두 시간의 여행이 시작된다. 내가 감수성이 좀 풍부한 타입이라, 영화 주인공 또는 등장인물에 최대한 공감하며 영화를 보려는 편이다. 주인공이 즐거우면 나도 활짝 웃고, 슬프면 나도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면 나도 따라 분노한다. 그리고 ‘기승전결’로 구성된 주인공의 이야기 흐름에 완전히 몰입한다. 주인공의 배경과 이야기가 시작되는 ‘기起’의 부분에서는 주인공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세세하게 관찰하고 기억하려 애쓴다. 빠르면 20분 늦어도 30분이 지난 뒤, 전개된 이야기를 ‘영화급 이야기’로 만드는 사건이 터지게 되는데 그 사건과 함께 ‘승承’의 부분이 시작된다. 사건을 일으키거나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감정을 이입해서 영화를 본다. 40분 내지 50분 동안 긴장과 갈등이 증폭되면서 어느 순간 클라이맥스에 이르는데 ‘전轉’의 시작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사건을 해결하거나 이야기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대담한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되는데 정말로 긴장감 넘친다. 그리고 마지막 ‘결結’과 함께 영화 여행이 끝나며, 영화의 여운을 안고 다시 나의 일상에 복귀한다.
작가로서 나는 집필을 위해 책을 읽는 편이다. 그런데 ‘일탈의 2시간’을 보낼 때 나는 ‘소설’이나 ‘에세이’만 읽는다. 따뜻한 보금자리에 역시 과자, 음료수, 따뜻한 빵과 커피를 준비해놓고 읽기 시작한다. 나는 영화 보는 것보다 소설 읽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더 풍성하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각적 이미지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상상하지 않아도 되지만 소설의 경우 텍스트를 자유롭게 상상하며 읽게 된다. 그래서 영화와 소설이 모두있는 작품이라면 영화를 보지 않는다.
모든 것을 누렸던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 덧없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낙을 누리는 것보다 나은 게 없을 정도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맛좋은 음식을 먹는 일이다. ‘일탈의 2시간’ 또한 마찬가지다. 가지 않았던 식당과 카페에 가서 맛있다는 음식 천천히 음미하고 커피 한 잔 마시며 그 시간을 보낸다. 회사 점심시간에는 같이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기 때문에 여유롭게 음미하면서 밥 먹기가 어렵다. 하지만 ‘일탈의 2시간’, 맛있는 음식과 향 깊은 커피를 충분히 여유롭게 즐길 때, 나는 그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작 유
<걱정마 시간이 해결해줄거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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