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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해야만 했는가? 이제 무엇을 하고 싶은가?

by 아이작 유

‘나는 누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실존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실존하는 존재만이 실존주의의 두 번째 질문을 제대로 던지고 답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쉬운 질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질문은 생각보다 답을 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자주 묻지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본질주의의 강한 영향권에서 우리는 보통 본질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만을 묻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로, 직장 조직의 공통의 목적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까지 과제 현황 임원 보고해야 해!”
“내일 중요한 발표 준비가 있어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좀 야근해야 할 것 같아요!”
“앗! 어제까지 유관 부서에게 우리 쪽 결과 인폼했었야 했는데! 아휴~ 미쳐버려!”


이와 같이 본질주의 속에서 우리는 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반면 자신의 실존을 정의한 사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사람만이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묻는다. 이런 점에서 두 번째 질문은 실존주의자의 특권이자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이 현재 본질을 위해 사는지, 실존을 위해 사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시간을 정한 뒤 스스로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각각 답을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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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압도적으로 많다면 당신은 본질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압도적으로 많다면 당신은 실존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당신이 써내려 가는 그 무엇들은 모두 모두 중요하다. ‘무엇’ 하나는 당신의 실존에 중요한 ‘의미’ 하나가 되며, ‘무엇’과 ‘무엇’이 만나 의미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이는 당신의 실존에 중요한 ‘개념(콘셉트)’으로 발전한다. 더 나아가 ‘개념’과 ‘개념’이 만나 당신이란 실존이 살아가는 세상이 만들어진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당신의 그 ‘무엇’은 결국 당신의 ‘세계’를 의미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과 그 대답을 내가 살아낸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실존하는 나를 위한 주체적인 삶의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삶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 된다.



아이작 유

<질문의 기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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