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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도 Oct 23. 2024

House 01.  의정부역

나 취업했어! 독립할 거야.

[최종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 근데 나 어디서 살지?


갑작스레 첫 직장의 합격 소식을 받았다. 

대학교 졸업과 함께 입사지원서를 냈고 운이 좋게 취업에 성공했다. 

(첫 회사의 첫 면접을 망쳤다고 술을 진탕 마셨던 지난날이여!!!)


괜히 탈락하면 민망하니까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취업 준비를 했다.

그런데 서울에 머물 곳을 마련하지 않은 채 덜컥 합격 통보를 하자 가족들은 황당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서울로 직장을 알아본 가장 큰 이유는 보수적인 아빠 때문이라도 독립을 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무모하게 저질렀던 입사지원으로 예정보다 빠른 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취업의 기쁨도 잠시.

서울 하늘 아래 내 공간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현실적인 문제였다.

급한 대로 엄마 지인분의 집에서 한 달간 만 지내보기로 했다.

준비도 없이 맨몸으로 첫 독립(?)을 하게 됐다.


급한 대로 가방 하나만 챙겨 서울로 향했다. 

이틀 뒤 부모님이 보내준 옷 두 박스가 내 짐의 전부였다.

나란 사람이 독립을 하는 데 고작 이 짐뿐이라니.......


그러나 부모님 품에 벗어나 자유를 만끽(?)한 기쁨도 잠시였다.


출근과 퇴근의 경계가 없는 삶! 

해가 뜨려고 할 때 출근하고, 해가 떠 있는데 퇴근하는 직장인.

대중교통보다 택시 귀가가 더 많았던 그때... 

고요한 적막을 깨우기 죄송스러워 살금살금 씻고 눕기가 무섭게 나를 깨우는 알람 소리.

한 달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야근과 철야. 회사 적응까지 정신이 없었다.

그때 내가 머물런던 곳은 편의상 의정부역이라 말하지만 의정부에서도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첫 회사는 선정릉역. 만원 마을버스를 타고 도봉산역으로 가야 했다. 

영혼 없는 무표정의 사람들 속에서 힘들게 7호선 지옥철에 몸을 맡겨야 했다. 현실이었다. 

지금은 선정릉역이 생겼지만 그땐 선정릉역이 공사 중이었다. 

때문에 강남구청에서 내려 걷고 또 걸어 출퇴근을 반복하다 보니 수면부족, 철야까지 살이 저절로 빠졌다. 

회식이라도 하는 날엔 택시가 승차 거부를 하는 의정부에서도 제일 안쪽이 내 첫 독립 공간이었다.


'힘들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다시 돌아갈까?' 생각할 틈도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어떻게 한 달이 지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오지 않을 것 같던 한 달은 느리지만 흘러갔다.


한 달이 지나고서야 부모님을 뵈러 대전으로 향했다.

품에 있던 자식을 객지에 보내고 나서 오매불망 기다린 부모님.


"회사는 다닐만해?"

"회사에서 점심은 줘?"

"아침은 어떻게 먹고 다니니?"


질문을 한가득 담고 딸의 동선을 따라 눈치를 살폈지만 딸은 침대와 하나가 되어 그동안 밀린 잠을 채우기 바빴다. 당시 아빠는 엄마에게 "어디 아픈 거 아니야?"라고 말했단다.

엄마는 내가 숨을 쉬고 있나 코에 손을 대 보았다고 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현관문을 열고 "나 왔어"라고 말한 뒤 

내 방문을 열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왈칵 눈물이 났다. 

침대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엉엉 울었다.


'그래...! 내 침대'

엄마 취향의 꽃무늬 이불까지 낯설지 않은 내 공간의 냄새.

물론 엄마 지인분 덕분에 의정부에서 나는 잘 지내고 있었다.

TV와 침대까지 있는 손님방을 내주셨고, 

새벽에 나가는 날 위해 아침도 차려주셔서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감사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까지 편할 수 없었던 상황은 아니었다.

작은 일에도 울컥했고, 내 집 없는 설움이 부모님을 보자마자 터져버렸다.


하지만 미처 몰랐다.

쫄보의 서울살이가 지금부터 시작인 것을! 


월세살이 TIP. 독립은 신중하게!

아무런 준비 없이 독립을 '저지른' 것도 있었다. 

부모님의 지원 없이 호언장담하고 독립했다가는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서울의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 상상을 초월한다. 돈을 벌고 있지만 사회초년생의 월급은 뻔했다.

인턴기간 이후 정직원 전환이 된다는 보장이 없던 상황에 과감하게 집을 구할 수 없었다.

독립은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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