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빙
집안 곳곳 쌓여있는
나중에 내가 할게 그냥 놔둬, 지금은 안고 있자. 의 흔적들
한 끼당 숟가락 2개 젓가락 4개
평소 두배는 되는 싱크대 안 설거지
장난기 많은 손가락들처럼
서로 부비적 대며 헝클어뜨린 침대의 머리칼
그리고 침대 옆 바닥에서 나뒹구는 각종 껍질들
하긴 침대만큼 껍질을 잘 까는 얘가 없지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카페 의자에 앉아있는 이야기보다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이야기가 더 껍질이 없는 것 같아.
알맹이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들이라서 그런가??
여하튼 멀리서 그 광경을 보니 트레이시 에민네 침대 같은 게
걔도 당시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그 모습을 어디 전시해보고 싶을 정도로.
내 편한 옷에 붙어있는 네 머리카락
하나를 집어 들어 뿌리부터 바라보면
짙은 검정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낙엽 빛 되는 게
아마도 여기부터가 가을, 이쯤은 여름 이때는 봄일까?
그리고 지금은 겨울, 어느새 우리는 염색된 시간들을 지나서
염색되지 않은 시간까지 함께 보내고 있구나.
나는 언젠가부터 뿌리부터 뿜어져 나오는 네 모습 그대로를 보고 있네.
맨날 너 다녀가면 집 개판이라고 장난치듯 구박하지만
집 좀 안 치우고 가도 괜찮아. 붙어있을 때면 이상하게 시간은 평소보다 더 한정적이잖아.
그러니까 치우는 건 나중에 내가 할게 그냥 놔둬, 지금은 안고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