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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람 Feb 04. 2018

한 끼당 숟가락 2개 젓가락 4개

아카이빙




집안 곳곳 쌓여있는 

나중에 내가 할게 그냥 놔둬, 지금은 안고 있자. 의 흔적들

한 끼당 숟가락 2개 젓가락 4개 

평소 두배는 되는 싱크대 안 설거지

장난기 많은 손가락들처럼 

서로 부비적 대며 헝클어뜨린 침대의 머리칼

그리고 침대 옆 바닥에서 나뒹구는 각종 껍질들

하긴 침대만큼 껍질을 잘 까는 얘가 없지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카페 의자에 앉아있는 이야기보다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이야기가 더 껍질이 없는 것 같아.

알맹이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들이라서 그런가??

여하튼 멀리서 그 광경을 보니 트레이시 에민네 침대 같은 게

걔도 당시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그 모습을 어디 전시해보고 싶을 정도로.


내 편한 옷에 붙어있는 네 머리카락

하나를 집어 들어 뿌리부터 바라보면

짙은 검정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낙엽 빛 되는 게

아마도 여기부터가 가을, 이쯤은 여름 이때는 봄일까?

그리고 지금은 겨울, 어느새 우리는 염색된 시간들을 지나서

염색되지 않은 시간까지 함께 보내고 있구나.

나는 언젠가부터 뿌리부터 뿜어져 나오는 네 모습 그대로를 보고 있네.

맨날 너 다녀가면 집 개판이라고 장난치듯 구박하지만

집 좀 안 치우고 가도 괜찮아. 붙어있을 때면 이상하게 시간은 평소보다 더 한정적이잖아.

그러니까 치우는 건 나중에 내가 할게 그냥 놔둬, 지금은 안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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