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빙
네가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난 그걸 계산해봐.
하루에 내가 얼마나 벌어야 우리가 태어나 가장 오래 함께한 지구인이 될 수 있을까.
하루는 벌이의 소비재잖아. 나는 건물도 없고 물려받을 것도 딱히 없고.
근데 우린 나중에 집도 있고 차도 있어야 하니까.
그때까지 나는 하루를 최대 효율로 소비해야 해.
난 사실 그런 걸 가지지 못할까 봐 보다는
겨우 그런 게 우리가 함께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될까 봐 불안해.
현실이 마음을 갉아먹어 버리는 거, 그거 너무 슬프잖아.
요즘은 사랑도 불안이야, 그렇지?
나도 이십 대에는 이런 불안감을 몰랐는데
나이를 먹긴 먹나 보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꿈과 현실을 동시에 지켜주고 싶게 만드는 것 같아.
글을 쓰다 창밖에 달빛이 거울처럼 내리면
나는 조금 반짝이게 슬퍼,
가능성만으로 살아간다는 게 참 반짝거리지만 불안한 일이잖아.
얼마 전에 네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했는데,
"나처럼 이쁜 여자를 만나고 너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응 아마도 한 세나라 정도는 구했겠지. 한 두나라로 가능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항상 꽃을 써주고 싶은 마음에 글을 시작하는데
너무 아래서부터 뽑아 올리다 보니 이야기에 흙이 조금씩 묻어.
그런 부분들은 살짝 털어내고 읽어줘.
생각해보면 참 자주 꽃을 선물해 줬지만 늘 뭔가 꽃만으로는 모자란 기분이 들어.
꽃을 모자라 보이게 만드는 사람 옆에 어울리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단순히 그냥 열심히 사랑해주는 좋은 사람이면 되는 걸까?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태어나 가장 오래 함께한 지구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사실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준비를 조금 더 해볼게. 모든 면에서.
사랑해. 이 말은 계산하지 않아도 돼. 내가 먼저 계산해 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