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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닥터 양혁재 Mar 26. 2024

자신만의 빛깔을 지닌 어머님을 만나게 되면서

단 한순간도 볕들 날 없었던 인생을 살아온 어머님이 계셨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어머님만큼은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난다. 눈물 없인 차마 들을 수도 없을 만큼 기구한 시간을 보내오셨던 어머님.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고, 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강원도 인제에서 만났던 황옥수 어머님께서는 가장 소중했던 큰 딸을 허망하게 보내야 했다. 큰딸이 17살이 되던 해, 손쓸 도리도 없이 어머님이 곁을 떠나고 말았다. 남편 역시 잣나무에서 추락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님 본인도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는 바람에 겨우 목숨만 부지하게 되셨다고 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집안의 가장이자, 기둥이었던 큰아들마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 연이어 반복되는 악재에 옥수 어머님은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그러나 어머님은 남은 가족들을 위해 다시 마음을 다잡으셨다. 큰아들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생계가 막막해지자 백담사 주차장에 마련된 가게에서 나물을 팔며 돈을 버셨다. 성치 않은 다리로 산을 오르며, 약초와 나물을 캐서 가게에 내다 파시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머님은 한결같이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기까지 하셨다. 설령 뒤돌아 혼자 울지라도, 남들 앞에서만큼은 계속 웃으시며 활기차게 생활하셨다. 


하루 동안 어머님의 삶을 지켜보면서,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만약 나였더라면, 내가 어머님의 상황에 처했다면 난 결코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님은 끝까지 자신의 빛깔을 잃지 않으면서, 남은 가족들을 지켜내셨다. 어머님의 강인함과 생활력, 그리고 삶에 대한 의지에 존경심이 샘솟았다. 


그래서 더더욱 어머님께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교통사고 때 발생한 피부 결손으로 인해 쉽진 않았지만, 기존 혈관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인공관절수술을 진행해드렸다. 수술은 잘 끝났고, 1년이 흐른 지금은 수시로 외출하실 정도로 호전되셨다. 


경과 확인차, 내원하셨던 어머님께서는 의사 아들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미래는 꿈꿀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거듭 고마움을 전하셨다. 병원을 나서며, 활짝 웃으시는 어머님을 바라보며 나는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앞으로는 더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만을 보내시길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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