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랑, 어떤 일을 해도 행복하려면

괜찮은 직업을 가져도 불행하다면

"요즘 어때? 일은 재밌어?"


"응 재밌어. 너는?"


"좋겠다. 나는 맨날 똑같아. 우리 부장이...(심한말)"


"그랬구나"


"지금 회사나 일이 마음에 안 들면, 뭐 하고 싶어?"


"너랑 나는 다르지. 그냥 돈 쉽게 많이 벌고 싶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종종 말한다. 부럽다고. 좋겠다고.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내가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공항의 설렘을 자주 겪기 때문에. 쉬는 날이 많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중요한 건 이 대화가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그 전에도, 그 전에도 늘 있었다는 것. 직장에서 행복 보다 늘 불행에 익숙한 친구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애써 웃으면서 '너는 요즘 괜찮아?' 라고 물었고, 속으로는 매번 다르게 답했다. 솔직하게


'잘 모르지만, 지금 좋아'

'요즘 너무 힘들어'

'힘든데, 행복해'

'이제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비행하기 때문에 짜릿하고 행복했던 시간


오래 전 가을, 나는 대학원 지도교수님께 진로를 바꾼다고 이야기했다. 건물 로비를 나가시는 교수님을 붙잡고 지원한 곳에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다고 말씀드렸던 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결국 최종 합격을 통보 받았을 때 놀라우면서도 설레고 두근거리고 짜릿했던 순간은 지금도 기억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짜릿함이 어마어마 했다. 대략 대형 세단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경비행기로 비행을 배우고 잊지 못할 야경을 누비며 지내는 시간들, 베테랑 파일럿 하면 생각나는 외모의 할아버지 파일럿들과의 대화의 온도는 2년 동안 연구실 의자 혹은 라꾸라꾸 침대만 전전하던 나에게 굉장한 행복으로 남아 있었다. 


대학원 시절의 책상과 비행으로 만난 LA


행복배틀:괴롭지만, 비행하니까 행복하다고 말해야 하는 시간


#1 미국이니까, 헬조선 아니고

비행 유학 시절, 행복하기만 했을 것 같지만 'This is 어뭬리카'를 외치며 마냥 라이프를 누릴 수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살면서 미국에서 그렇게 오래 지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 하지만, 쉬는 날 아울렛에서 쇼핑하고 매일 저렴하고 맛있는 소고기를 먹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환율은 치솟고 있었고 비행기가 고장나거나 날씨가 안 좋을 때 교육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경제적 사정은 좋지 않았다. 나 뿐만 아니라 함께 지내는 룸메이트들의 사정도 마찬가지. 모두가 여유롭게 지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늘 더 저렴한 차, 저렴한 음식을 찾아 다녔고,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고민했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의 상황도 그리 좋진 않았다. 흔한 고비가 오는 직장 3년차, 6년차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럼프를 들었다. '나도 너 처럼 용기를 냈어야 하는데' '거기는 어때, 미국 너무 좋겠다.' 라는 말을 들을 때 속으로 '아 지금 너무 힘들어'라는 말을 했었다. 지인들이 기억하는 미국은 '여행으로 왔던 곳'이었다. 여행으로 경험하는 미국과 살기 위에 오는 미국은 정말 다른데, 열린 마음과 여유로운 시간으로 온 미국은 내가 생각해도 황홀하고 즐거운 곳이기에 '그래 맞아. 여기 좋아' 라는 말로 멋쩍은 대답을 했었다. 


행복은 상대적이다. 

당시 나와 룸메이트 형들은 늘 이야기했다.
'한국이었으면 우리 진짜 재밌게 놀았을 텐데' 라고.

행복은 상대적이다.


가끔, 친구가 해준 선물같은 밥상이 있었지만 주식은 마트 고기와 제로콜라 그리고 씨리얼이었다


#2 그래도 비행기를 타니까, 외국을 가니까

코로나 시절 모두가 힘들었지만, 조종사를 포함한 항공 종사자들의 삶은 곤두박질 쳤다. 회사에 합격했지만 근로계약서도 못 쓴 채 입사일을 무기한 기다린 사람도 있었고, 입사 준비를 해왔지만 채용문이 닫혀 무기한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으며, 현직이더라도 무급휴직 생활 혹은 기존 월급의 일부를 받으며 오랜 휴직 생활을 이어가는 분들도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게다가 결혼하여 가정을 책임지는 분들의 시간은 괴로웠을 것이다. 


당시 주변 지인들은 여행이 너무 가고 싶은, 그런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도 각자의 라이프가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야 너무 좋겠다. 나도 공항 가고싶어. 비행기 너무 타고 싶다.' '일을 쉬는데 돈을 준다고? 너무 좋겠다.' '1시간이지만 일본 공기를 맡는 게 어디야, 일본 면세점 못가?' 라는 말을 들으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응 맞아. 그래서 요즘 어떤데?' 라는 말로 멋쩍게 대답할 뿐이었다.


비행학교에 걸려 있던 초등학교 5학년의 귀여운 생각. 파일럿이 다 그런건 아닌데 ^^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해 보다

자신의 상황이 힘들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말하는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누가 더 행복한지, 누가 더 그나마 덜 불행한지를 견주는 듯한 대화 속에서

누군가에게 나는 그래도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사는 부러운 대상이었고

말 못할 괴로움이 쌓이면서 나의 시간을 갖는 편이 편해졌다.



모든 비행이 설렐 수 없지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유


모든 비행이 설렐 수 없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를 가지 않더라도 공항은 설램의 장소다. 비행기가 힘차게 이륙하는 순간 붕 뜨는 것은 손님들의 몸 뿐만 아니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비행은 항상 그렇게 설렐 수 없다. 비바람이 몰아 치거나, 4계절이 뚜렷한 만큼, 백두대간 만큼 산과 지형이 불규직한 만큼 비행에서 고려할 것들이 많을 수록 조종사들과 승무원들은 비행에 더 집중하게 된다. 결항과 지연이 일상다반사였던 5월의 제주공항에서는 비행기를 타지 못해 ㅇㅇ항공사는 가는데 왜 우리는 못 취소인지 아쉬움을 표현하는 손님들이 유독 많았다. 손님들의 아쉬움과 답답한 만큼 조종사들도 더 집중하기 위해 부담감을 안고 간다.  


이런 하늘도 어찌어찌 지나가는데, 취소된 비행이라면 날씨가 정말 안 좋다는 뜻이다. | 출처: radarbox.com


그래도 대체로 좋으면, 행복하다.

비행하는 모든 날,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적이다. 다른 날 보다 부담을 안고 비행하는 날도 있고, 기장님과 함께 '우리 오늘 정말 수고했다, 그치?' '네 맞습니다. 기장님.' 이라며 안도와 위로를 주고받는 날도 종종 있다. 조종사들도 회사에 속한 회사원이니까. 출근 보다는 퇴근이 행복하고, 칼퇴근과 휴가는 사랑이다. 그치만 비행하는 날과 비행하는 시간에 감사하고 행복하면서 지내고 있다. 힘든 날을 빼면 대체로 행복하고, 정말 행복한 날도 있으니까.


일하는 사람에게도 예쁜 하늘은 선물이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면, 사랑하게 된다.


사랑은 의지의 문제-운명의 직업이 있을까.

<사랑의 기술>을 지은 에리히 프롬은 말했다. 사랑은 의지의 문제라고. 알랭 드 보통이 말하듯 몇 가지 부분만 좋으면 상대방은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어느 직업이든 장단점이 있고 같은 직군이어도 회사 마다 장단점이 있다. 첫 눈에 반한 사람과도 지지고 볶듯, 운명이라 생각했던 직업도 꼴보기 싫을 때가 있다. 어차피 내가 만들지 않는 이상 원하는 만큼만 일하고 원하는 만큼 보상해주는 없다. 


노력하고, 극복하면, 내 직업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진다.

연애에서 상대의 장점 보다 단점이 두드러지는 시기가 있듯 지금 하는 일에서도 단점이 두드러지는 시기가 있다. 야근이 유독 많아지는 시기가 있거나, 부서 이동으로 업무량이 폭발하기도 하고, 같이 일하는 누군가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 때로는 나의 회사나 직종에서 겪는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할 수도 있고, 그냥 이게 아닌데 싶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 우리 회사 너무 좋아. 내 직업 너무 좋아' 라는 마음을 매 순간 가지는 것은 어렵겠지만, 인지부조화의 힘을 믿고 노력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힘든 사랑에 마음이 깊어지듯, 의지를 갖고 어려움을 잘 보내면 직장과 직업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 수 있다. 설렘을 준 인연이 행복하게 오래 지속되려면 기다리고 노력하는 기간이 필요하듯 나의 일 혹은 직장과의 인연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어느정도 필요하다.


사랑에 빠지듯 진로를 선택했지만 실망할 수 있지만,

사랑을 이어가듯 진로를 이어갈 수 있다.

(일단 지금은)




안녕하세요, 요즘 브런치 매거진을 분류하고 있어요.

드라마 미생처럼 신입 부기장의 이야기를 다룬 <부기장도 신입사원입니다>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연차도 쌓였다고... 풋풋하고 철 없고 어리버리한 냄새가 덜 나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조금은 다르게 접근 해보려고요. 


비행을 업으로 하지만,

요가와 명상, 사진 그리고 공부도하는 김에.


Mindfulight: 비행과 직업을 마주하는 마음

Staylog: 제 마음대로 되는 대로 기록하는 여행 기록

Flight101: 항공/비행에 대한 지식


여러 분야의 글을 다채롭게 올려 볼게요.

손가락이 닿는 대로요.


작가의 이전글 파일럿에 어울리는 성격이 따로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