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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Nov 06. 2024

누군가의 시공간 속으로

접영 발차기를 하며, 누군가의 시공간 속으로.


조금 이상한 이야기인데, 어딘가에 고여 응축되어 있던 누군가의 시간과 공간들이 한꺼번에 내게 몰아치듯 부딪혀 올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마음이 과하게 울렁거려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러한 너울거림 속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그저 가능한 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그런 순간의 싫고 좋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겐 그런 순간을 견뎌낼 에너지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어깨를 기울이는 만큼 그런 순간들이 자주 찾아온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런 순간을 이해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또 누군가는 감정 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는 나로선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얼마 전 영화씨와의 저녁식사 시간도 그랬다. 아니, 요즘 들어 영화씨를 만날 때면 부쩍 그렇다. 영화씨를 만나고 오면 한참 동안 마음이 울렁인다. 영화씨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감정 기복이 심하며 쉽게 균형이 깨지는 나로선 외부의 일로 맘속이 흐트러지는 것을 꽤나 버거워하는 편이라, 이런 순간들이 그다지 반갑진 않다.

그날 영화씨와 우리는 샤브샤브를 먹고 있었다. 식사량이 적은 영화씨가 금방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런 영화씨를 물끄러미 보던 내가 "어머니, 더 드세요. 이렇게 조금 드시면 어머니 아들, 나중에 집에 가서 울지도 몰라요."라고 말하며 좀 더 드시길 권했다. 그러자 영화씨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지면서 눈물이 살짝 고였는데 맞은편에 있던 남편의 얼굴을 보니 영화씨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조금 기뻐하면서도 조금 슬퍼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 순간 그 둘 사이에 응축되어 있던 시간과 공간들이 내게 밀려드는 것 같아 숨이 가빴다.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남편의 어린 시절과 영화씨의 젊은 날들이 나를 관통하며 스쳐가는 듯하여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영화씨는 다시 수저를 들어 식사를 계속 했고 몇 번이고 맛있다고 말했다. 그때의 남편이 어떤 기분일지 다 알 것만 같아서 저녁식사 내내 나 역시 조금은 기뻤고 또 조금은 슬펐다. 영화씨와 남편을 꼭 안아주고 싶다가도 그냥 집에 가서 나 혼자 엉엉 울고 싶기도 했다.


최근 들어 이런 순간들을 부쩍 자주 만난다.

며칠 전 아침엔 수영장 행님(수영장의 나이 드신 분들은 서로를 행님으로 부른다. 아 물론 남자 아니고 여자다) 중 한 분이 평영이 안 된다며 자세를 봐달라고 했다. 자꾸만 엉덩이가 올라온다는 것이다. 나야말로 요즘 평영을 할 때면 엉덩이가 가라앉는 중이라 누군가의 자세를 봐줄 처지가 아니었지만 행님에게 그럴 수 있나.

그래요? 평영 한번 해보세요.

행님이 평영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나는 잠수를 한 채 따라가며 옆과 뒤의 자세를 살폈는데 다리를 모을 때 너무 앞으로 바싹 끌어당기는 바람에 엉덩이가 올라가고 있었다.

아하! 알겠어요. 다리를 너무 앞으로 세게 당겨서 그 반동으로 엉덩이가 튀어 올라요.

행님은 다시 평영을 했고, 나는 행님이 발차기를 위해 다리를 모을 때 다리가 너무 앞으로 가지 않도록 손으로 막았다.

제 손이 있는 곳. 딱 여기까지만 다리가 오게 하세요.


그게 지난주의 일이었다. 이번 주에도 나는 아침에 행님을 만나자마자 수업 시작 전에 같이 평영발차기 연습을 하자고 했다. 행님은 연습을 하다 말고 뜻대로 되지 않는지 힘들어했다.

이제 몸이 맘대로 안돼. 숨도 너무 차고. 자기는 젊어서 좋겠다.

국민체육센터 초급반 아침 6시부에서 '젊은 거'를 담당 중인 46세의 나는, 수영을 하다 말고 잠시 멈춰 선 채 뒤에서 오던 행님의 지친 팔을 붙잡았는데 바로 그 순간 또 어떤 시간들이 나를 빠르게 스치는 것 같아 좀 어지러웠다.

나는 이 순간들이 무언지 도무지 잘 모르겠다. 이럴 때면 왜 이렇게 압도당하는 느낌이 드는지, 어쩌자고 내 기분과는 관계없이 울고 싶어지는 것인지, 나는 왜 고작 이런 순간도 감당하지 못 하는지, 내가 가진 에너지는 어째서 이렇게나 형편없는 것인지, 조금 한심스럽기도 했다.


지난주부터 선생님은 매일같이 접영을 연습시키신다. 나를 포함하여 초급반 대부분은 접영이 엉망진창 와장창이다. 우리는 접영을 의도하며 헤엄치고 있는데 남들이 볼 때는 흡사 물고문 수준의 허우적거림이라 선생님은 보통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만 접영을 연습시켰다. 그런데 최근 들어 거의 매일같이 접영을 시키고 계셔 나는 매일같이 물속으로 처박히는 중이다.

접영에는 입수킥과 출수킥이 따로 있는데, 나는 그 킥이 모두 동일한 모양이며- 초보가 의례 그러하듯 모든 킥을 입수킥(우리가 흔히들 아는 돌핀킥)으로 하고 있나 보다- 힘이 부족해 입수 시엔 물 안으로 쑤욱 들어가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 앞을 지나갈 때면 "나올 때 몸을 펴세요"라고 말씀하시며, 내가 물 안으로 들어갈 때 사정없이 꾸욱 눌러버리신다.


수영장 물은 내가 다 먹고 있는 것 같지만 역시나 접영은 좋다. 킥을 하여 물 안으로 들어갈 때의 느낌이 여전히 신비롭다. 이대로 킥을 하여 안으로 더 들어가면 뭔가 다른 세상과 이어져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최근 들어 부쩍 누군가의 시간과 공간들이 내게 부딪혀 오는 느낌이라 조금 버겁던 중이었다. 내가 혼자 있길 좋아하는 이유도 결국은 이러한 에너지들을 감당하지 못해서다. 불쑥 밀려드는 갑작스런 감정을 앞에 두고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킥을 하고 물 안으로 들어가면 일순간 모든 것들이 잦아든다. 주변이 고요해지면서 언젠가는 그 순간들에 대해 알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물살이 너울거리는 동안 무심코 내게 부딪혀 오는 누군가의 시공간들. 그 입구가 물속 어딘가에 열려 있어 내가 킥을 조금 더 정교하게 하게 된다면, 물 안으로 더 잘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나를 스쳤던 시간 속에 담긴 감정들과 그 공간이 지닌 색채가 전하고 싶은 말들이 무언지.

영화씨의 눈시울이 붉어질 때면 왜 자꾸 나까지 울고 싶어 지는지.

수영장 행님들이 먼저 가라고 할 때면 왜 자꾸만 머뭇거리게 되는지.

휴직한 후배가 찾아와 주차장에서 남몰래 눈물을 터트릴 때면 왜 그렇게 무기력해지는지.

어떤 표정으로 그 앞에 있어야 하는지를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지금은 그저 호흡에 공을 들이며 킥을 연습한다. 무언가가 나를 스치고 있어 호흡이 가빠 오면 그저 가만히 그 순간을 느끼며 물 안으로 들어가는 일에 집중한다. 이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 생각하면서 오늘도 입수킥과 출수킥을 연습해 본다. 


+ 얼마 전 브런치에서 어떤 시를 읽었는데 그 시를 읽은 후로 내내 그 시를 생각하고 있다.  

허공에 거미줄을 쳤다는 표현을 하기까지 어떤 허기와 아픔이 있었을까. 처음엔 그 문장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했는데 이후로는 내내 그 허기에 빠져들고 있다.

++ 어제는 우연히 사별한 분의 글을 보았는데 아... 그러니까 이런 글들은 아무리 입수킥을 하고 출수킥을 해도 마음이 가라앉지가 않는다. 힘들다고요,라고 말하면 역시 좀 이상한가?

+++ 브런치를 돌아다니는 건 역시 위험하다. 이곳엔 정말이지 너무나 많은 시공간들이 응축되어 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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