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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훈 May 13. 2019

직장 경험 없이 창업하기

아이템과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

∙ 이 매거진은 IT 스타트업 굿너즈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 이 매거진은 연재물입니다. #1화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창업할 것인가 vs 나중에 실력을 쌓고 할 것인가



창업 준비생 시절 최대의 딜레마였다. 어떤 강연을 가도, 어떤 책을 읽어도 '초심자'에게 창업을 권유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대박 낼 수 있다'는 창업의 정의는 너무도 순진한 이야기였다. 알면 알수록 스타트업은 자본, 실력, 사람이라는 삼박자를 두루 갖춘 베테랑들의 전쟁터였다. 당시 나는 경력은커녕 대학 졸업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어떤 사람들'처럼 대학을 다니며 창업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앱 하나 만들어보고 싶을 뿐인데...'

'정녕 나는 시도조차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인가?'


한창 기획의 매력에 빠져 창업을 결심할 때 즈음 이런 이야기를 접하니 (게다가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입 모아 이야기하니) 좌절은 배가 됐다. 그러던 중 자바 스터디를 함께 하던 개발자 형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그건 네가 너무 크게 받아들인 거고, 전문가만 창업하라는 법은 없지." (feat. 인자한 눈웃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시작해서 아이템과 함께 성장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이 두 마디가 나에겐 큰 용기가 됐다. '아이템과 함께 성장하는 게' 가능한 이야기라면 꼭 해내고 싶었다.



아이템과 함께 성장하는 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요즘은 안전 기지(월급을 주는 직장)가 있는 상태에서 부업을 하듯 창업하는 테크트리를 많이 권한다. 배수진을 친다고 성공 확률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 많은 사례로 입증되고 있으며, 세 가지 측면(자본, 실력, 사람) 모두 '직장에서 경력을 쌓은 이'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맥락에서 나의 창업 방식은 약간은 구식이었다.


'선창업 후경험'이 맞닥뜨리는 문제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1) 사수 없이 실력을 키워야 한다.

2) 돈 없이 살아남아야 한다.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품을 완성하고 출시하는 건 실로 굉장히 많은 역량을 필요로 한다. 나의 경우 제대로 된 기획서 한 장 써보지 않은 상태에서 앱 기획을 시작했고 의도치 않게 UI 디자인과 마케팅까지 맡아서 하게 됐다. 업무에 대한 이해 없이 바로 실무에 투입되었으니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자동화와 표준화에서 문제가 많이 터졌다. 자동화 툴이 버젓이 있는데도 한 땀 한 땀 수작업을 하느라 시간 낭비하는 건 기본이고 잘못된 기준 때문에 기존 작업을 갈아엎는 일도 허다했다.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하는 건 분명하지만 경험이 실력이 될 때까지 시간과 돈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돈. 돈은 현실이다. 요즘은 '정부 지원도 많고 AWS를 이용하면 무료로 서버를 이용할 수 있지만' 기한은 딱 1년이다. 1년이 지나면 '내 돈, 투자받은 돈, 빌린 돈'으로 매월 나가는 '월세, 월급, 서버비 등'을 감당해야 한다. (쫄쫄 굶고 아무 것도 안 해도 월 2~300씩은 나간다.) 내가 만든 제품으로 내 밥값 이상을 버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고 수입-지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월급 줄이기'다. 대표자는 최저임금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질문은 다음으로 넘어간다.


'최저 임금 혹은 그 이하의 삶을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여기까지 오면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진다. '앱 출시'가 꿈이던 시절엔 앱만 내놓으면 모든 게 술술 풀릴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구체적인 문제들(가령 야근은 하는데 저녁 값을 아끼기 위해 아홉 시까지 굶다가 집에서 밥을 먹는다는 둥)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선창업이라고 죽으라는 법만은 없다. 돈이든 사수든 없으면 없는 대로 몸으로 때우며 헤쳐나가는 묘미 또한 있으니. 다만 지도해줄 사람이 없는 만큼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하며 비루한 현실을 비관하지 않는 태도 또한 필요하다.


나의 경우 한 달에 두 권 이상은 마케팅 서적을 읽고 정리를 하며 디지털 마케팅, 그로스 해킹, 브랜딩의 경우 강의를 들으며 배워나가고 있다. 자동화 표준화 문제는 '수동 작업 경험', '막장 표준 경험'을 반복하는 동안 서서히 레벨-업 하고있는 중이다. (혼돈을 경험해보지 않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어불성설이긴 하다.) 스타트업답게,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름의 정리를 마친 뒤 브런치 글로 풀어볼 생각이다.


자본의 경우 k-startup에 자주 방문하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 제품을 개발하며 수 개월(혹은 수 년) 간 다양한 지원사업(내용은 다들 비슷한)에 지원을 하다가 붙으면 그때 창업을 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지원사업과 정책자금 중 전자에 우선순위를 두고 진행하다가, 제품을 출시하고 레버리징이 가능해질 때 즈음 정책자금에 지원해야 한다. (중진공 출신 창업가 천영석님의 글을 참고하면 좋다.) 마치 취업 관문과도 같은 사업 계획서-발표 면접이 부담되긴 하지만 제품을 만들어 1인분 이상의 매출을 내는 것보단 쉽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지갑을 열어야 하는 고객보다는 정부 곳간을 열어야 하는 심사위원이 더 너그럽다.)


이 과정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길 줄 아는, 나름의 워라밸을 찾아 몸 건강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선창업 후경험'(= 아이템과 함께 성장하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글쓴이는 창업을 하기 전 6개월 간 창업 인턴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인턴을 하는 동안 사수가 없었고 역할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직장에서의 경험과는 달랐다.'는 전제 하에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






글쓴이는 현재 스타트업 GOODNERDS에서 앱 서비스 기획과 디지털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GOODNERDS는 질문에 답을 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익명 SNS 우주챗을 개발 및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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