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의 딸
10여 년 전,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대한민국에는 김밥천국 붐이 일어났다. 길거리에는 엽서체의 주황색 김밥천국 간판들이 우후죽순 생겼고 배고픈 학생과 서민들에게는 간편한 한 끼 해결의 좋은 대안이 되어주었다.
김밥천국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1995년에 유인철이라는 사람이 인천에서 한 줄에 천 원인 김밥을 파는 김밥천국을 탄생시켰다. 박리다매 전략이 성공을 거두었고 프랜차이즈화하기 위해 상표권을 신청했으나 특허청은 식별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법원 또한 김밥천국이라는 상호가 일반명사인 김밥과 천국의 합성어로 되어 있다는 이유로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담으로 파리바게트도 처음에는 같은 이유로 프랜차이즈 상표등록을 거절당했다고 한다. 때문에 우리가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김밥천국, 김밥나라들은 모두 개개인이 운영하는 일반 음식점이다. 그래서 메뉴도, 가격도, 맛도, 식자재도 모두 다르다.
상표권이 없는 김밥천국 붐은 집에 있던 주부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매달 누군가에게 지불해야 하는 권리금이 없으며, 초기 투자 비용과 창업 장벽이 낮았다. 이미 집에서 하루 세끼를 성실히 차려 내시던 엄마들에게 김밥천국 메뉴들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 대열에 집에서 주부로 20년을 사시던 우리 엄마도 합류하셨다. 교회 집사님의 권유로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새로 오픈한 김밥천국을 인수해 버리셨다. 그렇게 나는 김밥집 딸이 되었다.
우리 엄마는 요리를 정말 잘하신다. 나는 세상의 모든 엄마는 요리를 잘하는 줄 알았다. 요리를 못하는 엄마가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안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한 번에 쉽게 따실 만큼 엄마는 요리를 정말 잘하신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내가 집에서 먹어 온 간식과 식사는 엄청난 것들이었다.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하면 닭을 사와 반죽하고, 튀김기에 튀겨 직접 만든 양념으로 그 어느 브랜드 치킨보다 맛있는 양념치킨을 만들어 주셨다. 집에서 수학과외를 하다가 간식으로 탕수육을 만들어 주셔서 먹느라고 수업을 못한 적도 있다. 아침 식사 때에는 가족들 인원수에 맞게 개인 생선과 개인 수란이 밥그릇, 국그릇 옆에 놓여 있었다. 엄마는 가족의 식사를 차려 내시던 그 정성과 열정으로 김밥천국을 운영하셨고 역시나 창업은 대 성공이었다.
카레를 시키면 카레만 주기 미안하다며 돈가스 반을 옆에 올려주시고, 반찬에는 꼭 전이 있어야 한다며 김밥천국 반찬으로 매일 다른 전들을 부치셨다. 심지어 식자재로 할아버지가 농사지으신 쌀과 콩을 쓰시고 대부분의 양념은 직접 만드셨다. 매일 다른 반찬이 나오고, 양과 맛이 훌륭한 우리 김밥천국은 금세 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정말 많아졌다. 직원들도 많아졌고, 엄마의 김밥천국은 4호점까지 늘어났다. 김천의 딸로 불릴 만하다.
나의 20대는 반강제적 김밥천국 알바생이었다. 하필이면 우리 아파트 상가에 있는 김밥천국이라서 집에서 걸어서 2분이다. 바쁜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 어김없이 "해나야~ 내려와서 김밥 싸~" 라고 전화가 왔다. 너무너무 가기 싫었지만 고생하는 엄마 때문에 안 갈 수가 없어 입을 있는 힘껏 내밀고 내려가서 김밥을 쌌다. 소풍 시즌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엄마와 김밥 300줄, 500줄 주문도 프로페셔널하게 처리했다. 김밥 싸는 것에 도가 트였다고나 할까. 어떻게 싸야 맛있는 김밥이 되는지 매일 연구하는 엄마 덕분에 나 또한 김밥 세미 장인(프로는 아님)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아마도 지금까지 약 일만 줄의 김밥을 싸봤다.
하. 김밥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