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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Mar 13. 2024

지킬 것이 없어진 홈 프로텍터의 비애

진정한 백수의 탄생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지만, 반드시 눈물을 쏟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살짝 공식 같은 장면배열과 지나친 감동 코드가  다소 물리는 느낌이지만, 그런 사소한 결점을 모두 덮을 만큼 찡하게 울리는 장면을 기다리는 게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였다. 요즘에도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재방이 흘러나온다. 어느 부분을 멈추고 보아도 익숙한 장면, 익숙한 대사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유독 시선을 잡는 대목이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선 혼자 남은 집안에서 꺼이꺼이 편하게 울 수 있었다.


엄마(치타여사)가 외출한 집, 남자 셋은 각자가 하고 싶었던 대로, 엄마가 집에 있으면 누리기 힘들었던 자유를 실컷 만끽한다. 엄마가 외출하기 전에 신신당부했던 모든 규칙을 깨부수며 즐겁게 지내는 그들. 집안에 남을 남자들을 걱정하며 발걸음이 무거웠던 엄마는 자신의 부재가 그들에게 얼마나 해방감을 안길 것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설탕과 마요네즈를 섞은 괴이한 음식을 먹어보고 밥과 반찬을 큰 그릇에 모두 때려 넣고 썩썩 비벼먹는다. TV를 보면서 과자 부스러기를 아무렇지 않게 마구 떨어뜨리며 아무 데나 옷을 벗어던져놓는 등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마냥 신나하던 그들에게 갑작스럽게 엄마는 나타난다.


예정보다 일찍 들이닥친 상황에 당황하지만, 세 남자는 엄마 없는 동안의 방종을 말끔히 지우며 위기를 모면한다. 무엇하나 트집 잡을 여지를 남기지 않은 그들이 기세등등하게 하는 말,


“당신(엄마) 없어도 우리 한 개도 안 불편하더라.”


본업으로 복귀한 엄마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저조하다. 이유를 몰라 헤매던 아들은 친구에게 한마디 들은 후에야 크게 깨닫고 바로 행동에 나선다. 사사건건 엄마를 부르며 도움을 요청하기로 한 것이다. 형은 라면을 끓이다 손을 대었다고, 아빠는 연탄을 부서뜨렸다고, 자기의 반바지를 찾아달라고 엄마를 연거푸 부른다. 모든 문제해결사 엄마는 ‘엄마’라고 부르기가 무섭게 약통을 들고 나타나거나 옷장에서 반바지를 척척 꺼내 앞에 대령하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다들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


엄마는 드디어 웃음 짓는다. 표정이  밝아지고 편안하게 안도하는 모습이다.


엄마, 어버이날 축하해요. 항상 음식을 해주시고 공부를 가르쳐주셔서 고마워요. 더 열심히 잘할게요.”

초등학교 4~5학년 경에 받은 어버이날 축하 편지를 읽으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이에게 엄마는 공부시키는 무섭고 간섭 많은 사람이기만 한 것 같았다. 엄마 앞에서는 모든 실력이 탄로 나서 숨길 수 없고 자신의 부족함을 끝없이 걱정하며 지적하는 존재였다. 여행지에 가서도 학습적인 정보를 알리려고 애쓰는 엄마는 “그냥 볼게, 내가 알아서 볼게.”라는 아이의 반응에 서운해하며 상처받았다. 저것이 다 컸다고 저러나, 강압적인 자신의 태도를 뉘우치기보다는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중학생일 때까지 학습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거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아이는 매일 학교와 집을 오가다가 가끔 친구의 집에서 노는 것이 전부인 나날을 4년이나 외국에서 보냈다. 잘 알지 못하는 체제의 나라에서 부모는 어린아이의 손발이 되었고 그래서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여러모로 피곤했다. 집중하고 몰입해서 들여다보는 만큼 아이의 부족한 부분이 극명하게 드러나 보였고 그것을 채우지 못해, 남들보다 앞서나가지 못해 안달하였다. 부모가 대신 꿈꾸는 아이의 미래상은 파국을 낳았고 예상대로 스테레오 타입의 ‘헬리콥터맘’이 되어버렸다.


고등학생이 되자 마침내 아이가 모르는 부분을 해결해 줄 깜냥은 안되었고 대학생이 되자 모든 정력을 쏟던 아이와의 시간은 차차 적어졌다. 아이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한 기분이었던지. 코로나가 모녀의 분리를 조금은 지연시켰지만, 결국은 너무나 다른 두 인격체가 친밀함에서 무덤덤함으로 자연스럽게 변모하면서 그저 지켜보는 사이가 되었고 극렬한 갈등은 피하게 되었다. 이로써 긴 육아와 교육의 시간을 마감했다.


사실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해서 한 몸같이 움직이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불안한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기다리는 일, 내일 당장 입을 바지의 밑단을 수선하는 일, 야식을 준비하는 일 등, 가사노동이란 주야 대기하며 정해진 근무시간도 없이 대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업주부가 하는 일은 언제나 벌충할 수 있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해도 무방하다고 흔히 생각된다. 그래서 갑자기 손이 필요하면 주로 집에 머문다는 이유로 언제든지 호출에 응해야 할 것 같은 압박도 느낀다. 비록 임금노동자처럼 출퇴근의 고단함이나 정해진 시간, 장소를 지켜야 하는 스트레스는 없지만, 아주 지루하고 느리게 견뎌내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등줄기에 땀을 흘리며 버둥대는 순간을 견뎌내는 것이 집안일이다.


가사노동의 가장 큰 본령이었던 육아(교육)가 사라지고 사실상 은퇴를 맞이했다. 모든 시간과 정력을 다하던 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른 곳에서 탐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롯이 자기만을 위한 과제를 앞에 두고 적잖이 당황스럽고 불안해졌다. 소속감이 희박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사람이 하는 일의 가치는 스스로 의미 부여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정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집안에서 ‘일하는’ 누군가는 인정욕구에 항상 목마르다. 드라마에서 아들은 일부러 옷을 찾아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하고 가족 모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불러대면서 엄마가 집안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상실감을 조금은 천천히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닐까.




한창 인기몰이 중인 연애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자신의 직업을 ‘있어 보이게’ 소개한 것을 풍자한 영상을 보았다.  **매니저, **스페셜리스트, **마스터 등의 단어를 어느 직업군에든 붙여서 자신이 하는 일이 위대하다고 포장하는 것이다. 영어 사대주의에 빠진 나라답게 모든 직업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래서 탄생한 ‘하우스케어 매니저, 홈프로텍터는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시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노는 손(사람)을 멸시해서 부르던 ‘백수’가 하우스케어 매니저, 홈프로텍터로 변모했다. 집에서 독서, 영화감상 등의 문화생활(일명 농땡이)을 누리며 가족의 재생산에 이바지하는 진정한 집지킴이라는 의미를 담기 위해 애매한 콩글리시를 등장시킨 것이다. 그러고는 자조적으로 웃어넘기는 것이 이 영상의 포인트다. 처음에는 기발한 생각에 웃음이 나왔지만 조금 지나자 웃기지만은 않았다. 웃자고 만든 영상을 가볍게 넘기지 못하는 건 항상 그렇듯이 자기의 모습이 투사되기 때문이다.


가족이 이루는 크고 작은 성과는 기쁨이 되었고 어느덧 그들의 사회적 성취를 자기 것인 양 으스대기도 했다. 그들의 성과를 두고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눈길도 싫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적 성취가 없는 사람이 가족을 통해 느끼는 대리성취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어느 날 가까운 사람과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떨다가 별 것도 아닌 말에 자극받아 발끈했다. 가족의 성취를 두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는 그의 말에 그건 내가 이룬 성취가 아니라고 응수한 것이다. 그러다가 불안한 속마음이 튀어나온 건지 그렇게 좋을 것도 나쁜 것도 없다며 퉁명스럽게 배부른 소리까지 해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의 제한 없이 가족의 수족이 될 필요가 없다. 홈은 있는데 프로텍트 할 대상이 없으니 홈프로텍터가 더 이상 설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진정한 백수가 된 것이다.


사진: https://instagram.com/js_vfinde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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