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맛있어지는 요술 냄비
포장지가 뜯긴 채로 짜부라져 있는 딸기 맛 마이쮸. 주말 내내 식탁 위에 있던 마이쮸를 오가며 째려보다가 결국 입에 넣는다. 먹으려고 뜯었다가 맘이 바뀌었는지, 하필 강의가 시작되어 먹을 수 없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마이쮸는 바지와 함께 세제와 유연제를 차례로 맞이하며 빙글빙글 돌기 직전에 가까스로 발견되었다.
복부에 힘을 잔뜩 채워 아이에게 핀잔을 늘어놓으려 부릉부릉 시동을 걸다가 아이의 부재를 깨닫고 그냥 맥없이 올려놓았던 마이쮸. 탐탁지 않은 기분으로 입에 넣었지만, 딸기향이 입안에 퍼지자 하나 더 먹고 싶어졌다. 이래서 의사가 단순당을 피하라고 하는 건가. 마이쮸는 한번 시작하면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크기도 작아서 하나가 둘을, 둘이 셋을 부르는 요물이다.
물론 마이쮸와 비교할 수 없는 상대지만, 중국에서 만난 중독을 부르는 요물 같은 음식이라면 우리 가족에겐 당연 '훠궈(火锅)가 있었다. 최근 '마라탕후루'가 인기를 끌었는데 그중 마라탕과는 조금 다르지만, 많이 닮은 음식이랄까. 마라탕과 훠궈를 떡볶이와 즉석떡볶이만큼의 차이라고 말하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재료 선택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는 점과 불을 동반하면서 식사하는지에 따른 차이라면 꽤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훠궈를 처음 만났을 때 우선 냄새에 압도당했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은 사람의 행렬이 길게 늘어진 훠궈집을 지날 때 풍기는 냄새는 지독히도 강렬해서 사람을 강하게 끌어들이는 동시에 고개를 돌리게 했다. 게다가 선전은 덥고 뜨거운 도시다. 12월에서 2월 정도에만 긴팔을 입고 살살 걸어 다닐 것을 허락하는 도시. 그런 도시에서 뜨거운 냄비 앞에 앉아서 느긋하게 이 음식을 음미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 도시의 습기와 온도, 독특한 음식 냄새가 익숙해지면서 사시사철 뜨거운 냄비에 열광하는 그들의 모습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고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훠궈는 뭐든지 들어갔다가 나오면 맛있어지는 요술 냄비였다. 그래서 온갖 재료를 과감하게 냄비에 투하하는 현지인들과는 달리 소심하게 아는 재료만 먹기 시작하던 훠궈가 사계절 내내 외식으로 즐기는 메뉴로 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매번 바라만 보던 아주 대중적이고 가성비 좋은 훠궈집을 처음으로 방문해 보았다. 이 가게는 상점가 내부에 입점해 있었고 과도한 냉방으로 각 테이블에서 뿜어나오는 열기를 말끔히 제거해 주었다.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한 버섯탕에 감자, 고구마면, 각종 야채, 떡, 마, 건두부, 해물 완자 등등을 주문해 보았다. 냄비에 넣을 수 있는 재료는 무궁무진하지만, 현지인처럼 내장류와 닭발, 선지 같은 것은 끝내 넘을 수 없는 경지의 것들이었고 홍탕(마라 맛 국물)도 처음에는 무리였다. 그저 마늘과 청양고추를 잔뜩 넣은 매운 양념장을 만들어 익힌 재료를 찍어 먹는 것만으로 충분히 얼큰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에 그 시절 우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거의 다 사라졌다. 그나마 몇 장 남아있는데 그중에 훠궈집에서 찍은 사진도 서너 장 남아있다. 주변이 온통 하얀 연기로 가득하고 버섯탕의 엷은 갈색 국물 안에 갖가지 재료를 담가두고 익기를 기다리던 순간에 찍은 사진인 것 같다. 굵은 빨대가 꽂힌 망고주스로 얼얼해진 혀를 달래는 모습, 배를 충분히 채웠는지 저절로 웃음이 삐져나오는 만족스러운 얼굴이다.
중국, 홍콩, 마카오 등지에서 맛보는 프랜차이즈 음식들에는 그 지역 특유의 양념이 가미되어 있다. 맥도널드나 피자헛의 고기는 한국과 다른 양념으로 버무려져 있고 그래서 가게에 들어가면 현지만의 향기가 느껴진다. 처음에는 그것이 낯설어서 싫었고 익숙해져도 끝끝내 그 맛을 좋아하게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훠궈는 남달랐다. 마라 국물의 매캐한 냄새에 숨을 멈추고 재빨리 지나치거나 내장류와 선지, 각종 동물의 발, 머리 등에 눈살을 찌푸리던 가족과 친구들은 어느새 그들 사이에 턱 하니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나름의 냄비를 앞에 두고 맛있어지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도 훠궈는 가족 모두가 일치단결해서 좋아하는 외식 메뉴였다. 그런데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자주 찾아가던 훠궈집은 몇 년 전에 사라졌다. 세트 메뉴를 시키면 꿔바로우가 함께 나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던 곳이었는데 이제 차로 30여 분은 달려야 훠궈집을 겨우 만날 수 있다. 마라탕과는 달리 훠궈를 파는 식당은 서울의 몇 군데를 제외하면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작은 인덕션을 하나 사서 집에서 훠궈를 먹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야채를 모두 넣고 중국에서 수입된 소스를 풀어 넣으면 얼추 맛은 비슷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지에서는 즐기지 않던 홍탕(마라 국물)도 이제는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이마를 맞대고 나눌 수 있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음식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냄비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은 음식만이 아닐 것이다. 서로의 눈빛과 얼굴빛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 굳어지고 뒤틀린 마음이 조금은 말랑해질 수 있는 사이에 뜨거운 냄비가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사람, 땅, 습관, 그리고 음식 등 모든 것이 낯설던 그곳에서 우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때때로 먹고 싶어지는 음식을 만났다. 어떤 것과도 익숙해지거나 친해질 수 없을 것만 같던, 이유 없이 적의와 경멸도 내심 품고 있었던 나라에서 훠궈라는 음식은 강렬하게 다가와 은근하고 묵직하게 자리 잡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