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낭만제주] 나만을 위한, 오만가지 행복한 사색을 위한 버스여행
여행 둘째 날, 아침 일찍이 눈을 뜨니 창문을 통해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일찌감치 채비를 하고 협재의 바다를 감상하러 떠났다. 파도 위로 햇빛이 쏟아지는 눈 시리게 아름다운 바다임에는 틀림없지만 빼곡히 둘러싸인 인파들로 인해 혼자 즐길 수 있는 겨울바다의 느낌만 그리워하며 돌아왔다.
그리고는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꼭 가보고자 했던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려 짭조름한 링귀네와 맥주 한 잔에 흥을 돋운 채, 버스 정류장에 앉아 서귀포로 가는 일주 노선을 기다렸다.
'일주노선'은 나 같은 뚜벅이 여행자들에겐 없어선 안 될 아주 중요한 교통수단(버스)이다.
일주노선은 제주 동쪽(제주시외버스터미널~세화~성산~표선~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으로 운행되는 '동일주 노선'과 제주 서쪽(제주시외버스터미널~애월~대정~중문~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으로 운행되는 '서일주 노선' 두 가지로 나뉘는데, 평균 배차간격은 약 20분 정도로 그리 긴 편은 아니다.
해안가를 따라 도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인 1132 지방도('해안일주도'라고도 불림)를 타기 때문에 제주 곳곳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관광명소가 해안가에 근접해있으므로 찾아가기도 편하다.
걷는 것과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대부분 버스정류장에 내려 목적지까지 걸어가거나, 조금 먼 곳은 택시를 이용한다. 일주노선 이외의 시내버스는 배차간격이 길기도 할뿐더러, 해안가를 벗어난 관광명소는 버스가 가지 않는 곳이 더 많기 때문이다.
조금 지나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인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약 2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버스를 타고 창가 너머 멀리 보이는 바다와 풍력발전기, 아기자기한 슬래드 지붕들에 괜스레 마음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간지러운 마음을 타고 평소에는 바빠서 할 수 없었던, 묵혀놓았던 온갖 생각들이 머리 위로 두서없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여러 각도로 생각해본다.
그러다 놓치기 싫은 광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하얘지며 그것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눈을 뗄 수가 없어진다. 그러다 또 다른 광경에 다른 생각이나 이벤트가 떠오르면 머릿속을 꼬게 된다. 그렇게 차창 너머의 광경들에 정신을 놓을 때쯤, 듣고 있던 노래와 생각이 뒤섞이며 감정이 최고조에 다다른다. 복잡해지고, 하얘지고 그러다 감성적이 고를 반복하다 보면 두 시간의 여정은 어느덧 종착역에 다다른다. 버스 안에서 한 숨도 안 잤지만 나에게 이 시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이 시간만큼은 혼자인 게 좋아 버스에서는 가능한 한 누구와 같이 앉는 것보다는 혼자 창가에 앉아 딱 붙어 가기를 원한다.
그렇게 버스에서의 여정이 끝나고 서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그곳, 서귀포에 도착했다. 나에게 제주에서 가장 가장 포근하고 따뜻한 이 곳, '남원읍'. 올해 겨울에 왔던 이 곳으로 다시 발걸음 하게 만든 이유이다.
그 날 따라 적당히 부는 가을바람도, 뜨거운 햇살도 그 모든 게 감사하기만 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