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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젠틀우먼 10화

10 지우고 싶은 기억

“상처는 그때만 입는 게 아니라 매번 입기 때문 아닐까요?”

by 김은주

희주의 가슴팍이 눈에 띄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선배, 진정해요."

희주는 자신의 팔을 잡으려는 무원의 손을 피했다. 무원의 말을 듣기 전까지 자신이 발작 직전까지 왔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저 깊고 푸른 바다처럼 차가운 눈의 저 여자를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무력감, 범인에게 농락당했다는 자괴감, 그리고 분노. 3개월 전 희주의 심장을 주먹으로 무참히 가격한 남자. 그리고 진짜로 그 주먹에 맞은 또 다른 존재, 작고 연약한 아기.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심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세하가 동요하지 않고 입을 뗐다.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 있죠. 그 어떤 증거도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전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그분들이 포기했으면 영원히 묻혔을 테니까요.”

희주는 숨을 고르며 세하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아주 작은 단서가 사건을 해결하는 트리거가 되죠. 처음부터 거기 존재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아주 사소한 단서. 그런 것들이 형사의 눈에 발견되어 사건 전체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러니까 우릴 도와줘요.”

희주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피해자에 대한 정보는 뭐든 좋아요. 그게 뭐든 난 절대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경위님의 능력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겠죠. 게다가 지금 그런 상태로는 경위님이 먼저 나가떨어질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러면 여느 다른 사건들처럼 캐비닛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겠죠.”

“내가 못 하면 이 친구가, 이 친구가 못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하게 만들 거예요. 난 절대 포기 안 해요.”

희주는 창밖을 내다보는 세하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외눈박이 고양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왠지 슬퍼 보였다. 사람들의 나쁜 기억을 너무 많이 알아서일까. 한 사람의 가장 나쁜 최후를 매일 보고 사는 형사인 자신과 그녀의 내면이 닮았을지도 모른다. 분노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들.

“밖에 고양이는 여기서 키우시는 건가요?”

희주는 그제야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인체의 곡선에 맞게 설계된 의자에서 극도의 안락함이 느껴졌다.

“이런저런 사연을 지닌 고양이들이죠.”

“연구 시설의 고양이는 대부분 실험용 아닌가요?”

무원이 물었다.

“물론 그렇죠. 고양이들은 넘버링이 되어 순서에 따라 실험에 사용되고 절차에 따라 안락사가 됩니다. 그것이 실험용 고양이의 운명이죠.”

무원의 거북함을 눈치챈 세하가 덧붙였다.

“저희 연구소에서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타 연구 기관에서 실험용으로 사용되었던 폐기 직전의 고양이들을 데려와서 행복한 집고양이의 기억을 브레인 임플란트 칩에 심어 뇌에 삽입했습니다. 여기 들어오시기 전에 눈이 하나뿐인 아이를 보셨나요?”

“네.”

“그 아이는 제가 직접 구조한 아이예요. 도로에서 다리가 부러지고 눈을 다친 채 누워 있던 아이인데, 그 아이에게도 좋은 기억을 심어 주었죠.”

희주는 세하가 자신들을 당장 쫓아내지 않은 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여겼다.

“최근 빅에서 트라우마 삭제술을 받은 두 남성이 살해당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둘 다 법조계 출신이라는 것과 이곳에서 기억을 지웠다는 것입니다.”

“아까 제가 했던 질문에 대한 답, 들을 수 있을까요?”

희주는 세하가 집요하게 답을 요구하는 목적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지우고 싶은 기억 말인가요?”

“네.”

“제 대답이 중요한가요?”

“경위님은 지금 여기 피해자들이 지운 트라우마 속에서 범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이곳에 오셨죠. 그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건….”

“경위님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을 수도 있고, 운 좋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있다면, 그걸 누가 알면 어떨까요?”

세하는 차분하게 계속 말을 이어 갔다.

“피해자들의 기억과 지금 일어난 사건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확신하시나요? 만약 관계가 없다는 게 드러난다면, 제 환자는 죽고 나서도 고통을 받게 됩니다. 스스로 변명도 보호도 할 수 없으니까요. 감추고 싶은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서 남은 가족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면, 돌아가신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무원은 긴장한 표정으로 희주를 바라보았다. 폭발 직전의 불같은 정희주와 그 어떤 방법으로도 녹일 수 없는 얼음 같은 박세하. 극과 극이다. 하지만 묘하게 비슷하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네요.”

희주는 깔끔하게 패배 선언을 했다.

“인정해요. 밤낮없이 피해자 주변을 캐고 있지만 나온 게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돌아가지 않으실 거죠?”

“절대요. 또다시 살인 사건이 일어날 거라는 예감이 절 미치게 만들거든요.”

희주는 얼굴을 찌푸리며 안락한 의자에서 일어났다.

“범인은 또다시 살인을 저지를 거예요. 절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예요.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느낌이 그래요. 형사한테 느낌, 촉은 또 다른 파트너죠. 물론 절 망칠 수도 있는 위험한 파트너이기도 하고요.”

“흥미로운 표현이네요.”

“수사 중이라 더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살해 흉기에서 두 피해자의 지문이 나왔어요. 마치 서로 죽인 것처럼. 하지만 절대 아니죠. 먼저 살해당한 피해자의 지문이 두 번째 피해자를 살해한 칼에서 나왔으니까.”

“이런 경우가 흔한가요?”

“아뇨. 처음이에요. 아주 제대로 조롱당했죠. 범인은 피해자들을 농락하고 자신을 쫓을 형사도 농락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범인이 살인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시는 거군요.”

“정확해요.”

세하는 끔찍한 사건 때문에 불행하게 인생을 마감하는 피해자가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브레인 임플란트 칩을 개발했다. 브레인 임플란트 칩은 이미 생긴 피해자를 도울 수는 있지만, 그 전에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순 없다. 그건 의사의 몫이 아니다. 형사의 일이다.

“좋아요.”

희주는 세하를 바라보았다.

“두 피해자에 대한 상담 기록 일부를 오픈하겠습니다. 물론 비공식적으로요.”

“여기서 들은 이야기들은 절대 발설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삭제한 기억은 여전히 기밀입니다.”

“네. 그분들의 평소 심리나 행적 정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분명 어딘가 단서가 있겠죠. 그분들의 내면 전체를 알 필요는 없습니다. 알 수도 없고요. 형사가 알아야 할 건 오히려 범인의 내면이죠.”

세 사람은 진료실로 이동했다. 진료실은 더 안쪽 깊은 곳에 있었다. 그곳에는 외과적인 수술을 위한 최첨단 수술실과 회복을 위한 1인실이 있었다.

세하는 이덕식과 주용훈의 상담 파일을 불러왔다.

“변호사님은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절 만나러 온 계기도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해서였습니다.”

“일주일 동안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어떻게 되나요?”

“변호사님의 경우는 나흘째 되는 날 자택에서 환각을 목격했습니다.”

“어떤 환각이요?”

“처음에는 거미를 보셨다고 했습니다. 침대, 이불, 얼굴 위에 거미가 가득하고, 집 안은 거미줄에 덮여 있어 나갈 수가 없다고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저희가 확인한 바에 의하며 정신 병력이 없는 상태였어요.”

“뇌가 강제로 그렇게 만든 겁니다. 뇌가 수면이 필요한 상황이 오자 깨어 있는 상태에서 렘수면 상태를 일으킨 거죠. 변호사님은 일주일째 되는 날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토끼가 집 안에서 뛰어다닌다며 살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게 전화를 하는 데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고 나중에 말씀하시더군요. 휴대폰이 손에서 미끄러지고 숫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요.”

“피해자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었어요. 좋은 집, 좋은 차, 변호사라는 존경받는 직업.”

“그런 걸로 한 사람을 다 알긴 힘들죠.”

“피해자의 전화를 받고 어떻게 하셨나요?”

“저희 간호사가 댁으로 찾아가서 모셔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러블은 없었나요?”

“심하게 발작하셨습니다. 그땐 이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죠. 간호사 얼굴이 벌레껍질처럼 보였다고 했으니까요.”

“첫 번째 피해자는 어땠나요?”

희주의 질문에 세하는 모니터에 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상담 중인 이덕식을 녹화한 영상이었다. 이덕식은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분석을 위해 모든 상담 과정은 환자 동의하에 녹화를 진행합니다.”

영상 하단에 녹화일이 있었다. 2022-08-12. 이덕식은 울고 있었다. 처음에는 흐느끼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이더니 얼굴이 흠뻑 젖었는데도 닦지도 않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웅얼거렸다. 세하는 사운드 볼륨을 올렸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전 완전히 무너졌어요. 완전히요. 아내한테는 말할 수 없어요. 죽고 싶어요. 이렇게는 살 수 없어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세상 모든 것에 진절머리가 나요. 제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럽고 짐스럽습니다. 세상 누구도 날 도울 수 없을 겁니다….”

울음 섞인 고백이 영상에서 흘러 나왔다.

“저 이야기가 전부 트라우마 삭제를 받기 전이라는 말인가요?”

세하는 영상을 중지하고 모니터를 껐다. 검은 화면에 세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그렇습니다. 일곱 번의 상담 중 가장 고통을 호소했던 날의 영상입니다.”

“저게 다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거죠?”

세하는 희주의 거듭된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이해가 안 되네요.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어요. 주변인들 증언도 그렇고, 오히려 인간미나 공감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였죠.”

“신경과학자 폴 매클린은 이성적인 뇌와 정서적인 뇌의 관계가 다루기 힘든 말을 타는 것과 거의 흡사하다고 비유했습니다. 날씨가 평온하고 가는 길이 고르면 말을 타는 사람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죠. 그런데 어디선가 낯선 존재가 튀어나오거나 예기치 못한 장애물을 발견해서 말이 놀라면 어떻게 될까요?”

희주는 난폭한 말 위에 올라탄 자신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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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소스라치게 놀라 날뜁니다. 그러면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목숨을 걸고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말에 매달리죠. 즉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성적인 뇌의 목소리에 귀를 닫습니다. 피해자는 이성적으로는 난 엘리트이고 모든 걸 다 가졌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분노를 느끼게 된 이상 이성적인 판단은 아무런 힘이 없게 됩니다.”

희주와 무원은 잠시 침묵했다. 한 인간의 겉과 속을 모두 본 기분은 착잡했다.

“그 기억 삭제라는 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복잡한가요?”

“MRI를 이용해 뇌를 스캐닝해서 삭제하고 싶은 기억이나 트라우마가 저장된 뇌 부위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두개골을 잘라 칩을 삽입하고 해당 기억을 활성화 시킨 다음 전기 자극을 주어 삭제합니다.”

“간단하네요. 제 예상보다 더 간단해서 당황스럽네요.”

“실은 간단하지 않죠. 뇌수술이 동반되니까요.”

“피해자들은 여기서 그 수술을 받고 만족했나요?”

“물론이에요. 수술 후에는 1년 동안 환자를 추적합니다. 부작용이나 이상 반응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살해당했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나려 했는데, 누군가 그들을 죽였습니다.”

희주는 흰 벽에 걸린 액자 하나에 시선을 고정했다. 액자 안 흰 바탕에는 검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읽을 수 없었다. 아주 오래전 인류의 조언이나 전언 같아 보였다.

“이건 뭐라고 적힌 건가요?”

“영어로 하면 Arise, shine,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정도의 의미랄까요. 구약성경 중 이사야 복음서의 한 구절입니다. 종교적인 해석은 따로 있지만 저는 저 구절을 볼 때마다 영혼의 빛을 잃지 않고 아름답게 살아온 한 인간이 고귀하고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상상합니다. 그렇게 죽기란 어려우니까요.”

세하는 직접 희주와 무원을 배웅했다.

“실은 조금 조사를 했습니다. 그저 기사 정도를 검색한 수준입니다만, 아까 경위님이 발작 직전까지 가는 걸 보면서 경위님이 3개월 전에 경험한 그 일을 의사로서 연관을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기억을 삭제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눈이 하나뿐인 고양이가 희주에게 다가와 주위를 맴돌았다. 가까이 보니 뒷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분명 사람에 의해 눈과 다리를 잃은 그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사람에게 다가왔다. 고양이는 희주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밤이 되면 좀 힘들어요. 제가 사는 집 전체가 흔들리면서 마음의 서랍 속에서 칼들이 덜컹대는 기분이에요. 칼의 뾰족한 날이 날 찌르고 또 찌르고… 그 칼에 상처를 입는 것 같아요. 지난 일이고 약도 계속 먹고 있는데 왜 계속 그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상처는 그때만 입는 게 아니라 매번 입기 때문 아닐까요?”

“맞아요. 저렇게 다친 고양이를 보면 아기가 떠오르고 아기를 다치게 한 그놈이 떠오르고. 그놈은 지금 교도소 안에서 나가서 새 삶을 살겠다고 기술을 배우고 있어요. 정작 놈이 용서를 빌어야 할 아기는 죽었는데. 그래도 머리통에 이상한 걸 박는 건 싫어요.”

“뇌에 브레인 칩을 삽입하는 겁니다.”

세하는 희주의 말을 부드럽게 정정했다.

“앞으로는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실 겁니다. 무릎 연골이 닳은 노인이 인공 연골을 넣고 망가진 치아 대신 임플란트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요. 누가 한 말인지는 잊었지만, 변화는 일어나고야 말죠. 하지만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어요. 두 명의 피해자 모두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뇌에서 그 기억을 지우겠다고.”

“전 아닙니다.”

“그럼 일단 그 분노를 간직하세요.”

희주는 세하를 응시했다.

“상처받은 사람한테 복수심만큼 잘 드는 처방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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