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뭘 봤어요? 뭐 때문에 다들 과거를 지우려는 거예요?”
오치상은 희주의 뺨을 후려갈겼다.
“넌 구제 불능 개 쓰레기야.”
희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고개를 치켜들고 오치상을 노려보았다.
“밤낮으로 뛰는 팀원한테 할 말이 그거뿐이에요? 팀장님 같은 윗선들 때문에 죄 없는 우리들이 욕먹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얼굴이 붉어진 오치상은 다시 한 번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무원은 손을 들었다. 여차하면 팀장을 밀어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희주가 더 빨랐다. 희주가 오치상의 팔을 움켜쥐었다.
“인권위 여자 기억하시죠? 남자 상급자가 여자 하급자한테 손찌검했다고 전화 한 통 할까요? 그리고 제가 아는 입 가벼운 기자 몇 한테 전화 몇 번 돌릴까요? 그러면 팀장님은 정년퇴임 전에 옷 벗고 우리 팀은 폭파될 텐데, 그 꼴 보고 싶으세요?”
“이런 개 같은.”
오치상은 씹어 뱉듯이 말하며 희주의 손을 뿌리쳤다.
“너, 당장 밖으로 나와.”
오치상이 먼저 최준석의 병실에서 나갔다. 희주와 무원이 나오자 오치상이 희주의 팔을 붙잡고 거칠게 당겼다.
“너 뭐야? 뭐 하는 인간이야?”
“왜요, 뭐 켕기는 거 있으세요?”
“뭐?”
희주는 오치상의 팔을 뿌리쳤다.
“넌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판단이 안 되지?”
“이덕식, 주용훈 죽인 범인 잡으라면서요? 그래서 두 사람 과거를 파봤어요. 그랬더니 강희건, 조정배, 최준석 이름이 줄줄이 나왔고요. 전 원칙대로,”
다시 한번 오치상이 희주의 뺨을 후려갈겼다. 희주도 참지 않고 달려들었다. 희주는 과거 강도 잡다가 부러졌다며 오치상이 훈장처럼 여기는 코를 팔꿈치로 가격했다. 팀장은 코를 움켜쥐고 한발 물러섰다.
“이제 비겼네요.”
무원은 오치상과 희주 사이에 섰다. 도대체 누굴 붙잡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둘 다 손 떼. 너희 말고 정신 제대로 박힌 애들한테 맡길 거야. 별도 지시 있을 때까지 처박혀 있어. 이무원 이 정신 빠진 새끼, 정희주가 또 설치고 돌아다니게 두면 너도 옷 벗을 줄 알아.”
“팀장님도 기억 지웠어요?”
사실상 모험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재앙을 불러올 트리거가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희주는 오치상의 반응이 궁금했다.
“……뭐?”
희주는 한발 다가섰다.
“최준석 회장 소개로 기억을 지웠는지 묻는 거예요.”
오치상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희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만약 안 지웠으면 우리가 찾는 범인은 팀장님 머릿속에 있겠네요?”
오치상은 대답하지 않고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돌아서 희주를 응시했다. 붉게 핏발이 선 콧잔등과 분노 서린 눈. 희주는 오치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적어도 희주에게는 그의 시선을 피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최준석은 왼손 손목을 크게 다쳤다. 그는 유리 파편이 가득 박힌 오른손으로 직접 119에 신고했다. 다행히 오른손은 왼손만큼 상처가 심하지 않았다. 구급 요원들이 출동했을 때, 화장대 유리는 박살이 나 있었다. 그리고 최준석의 양 손목에는 의자에서 뜯어낸 접착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범인과 몸싸움 끝에 화장대 유리를 깬 것인지, 그전에 의자에서 어떻게 풀려난 것인지, 범인은 언제 도주했는지, 쇼크에 빠진 그는 무엇 하나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다. 접착테이프에서는 최준석의 지문만 발견되었다. 범인은 이번에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총.”
희주는 최준석이 누워 있는 침대에 다가갔다.
“총이 사라졌어.”
최준석이 핏기 사라진 입술을 달싹였다. 그는 붕대로 감은 오른손을 들어 이마에 댔다. 두툼한 붕대가 둘둘 감겼는데도 오른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침대 옆에 둔 총이 없어졌어.”
희주와 무원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팀장이 두 사람의 수사 권한을 빼앗는 데까지 아마도 이틀, 희망적으로 생각해도 사흘 정도. 주어진 시간은 그 정도였다.
“총을 왜 집에 두셨죠?”
“두려웠어….”
“뭐가 두려웠어요?”
“나도…… 죽을까 봐.”
“그러니까 말해 보세요. 강 대표가 뭘 숨기고 있는 거죠? 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이덕식 판사도 죽고 주용훈 변호사도 죽었어요. 사람 둘이 살해당했다고요.”
희주는 세하에게 들은 죽은 여자 이야기를 일부러 숨겼다. 만약 최준석도 그걸 봤다면 그가 직접 털어놓길 바랐다.
“난 상관없는 일이야. 난 그 일과는 관계가 없어.”
하지만 최준석은 흐릿한 정신으로 과거의 ‘그 일’을 더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회피하시는 거예요? 상관없으면 죄도 사라져요?”
“그만 해요.”
무원이 끼어들었다.
“넌 닥치고 있어.”
희주는 계속 최준석을 몰아붙였다.
“왜 강희건을 보호하는 거죠? 그 인간이 대체 뭔데요? 후배들을 시켜서 강희건을 위해 뒷조사를 시키신 거예요? 그 대가로 뭘, 얼마나 받으셨어요? 따님 유학비를 내주던가요?”
갑자기 최준석의 눈동자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체가 발작적으로 흔들렸다. 그에게 연결되어 있던 여러 개의 줄이 빠지면서 비상벨이 울렸다. 곧 간호사가 들이닥칠 것이다.
“빌어먹을 범인은 또 찾아올 거예요. 그걸 바라세요? 모두 잠든 밤에 이 병실에 혼자 누워 있을 때 살인범이 찾아오길 바라냐고요!”
“제발 그만 해요.”
무원이 그의 몸을 붙들면서 희주에게 말했다.
“뭘 그만해? 이 인간들 도대체 뭘 본 거야? 오래전에 여자가 죽었어.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는 인간들이 차례대로 죽고 있잖아. 이 인간이 입을 안 열면 누군가 또 죽을 거야. 진실 털어놓을 인간이 다 죽길 바라?”
희주는 최준석의 얼굴을 붙잡았다. 차가워진 노년의 얼굴이 손바닥에 닿자 순간적으로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뭘 봤어요? 뭐 때문에 다들 과거를 지우려는 거예요?”
검은 운동자가 흰자 뒤로 완전히 넘어가기 시작했다. 최준석이 붕대로 감긴 양손을 들었다. 마치 희주의 목을 조르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팔이 힘없이 침대로 떨어졌다.
주웅과 희주는 무원의 차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듯 섰다. 아까는 팀장과 희주, 이번엔 희주 애인과 희주. 그들 사이에 낀 무원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지금 정상 아냐.”
주웅이 지금껏 들어 본 적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완벽하게 정상이야.”
“아니야.”
“아니. 정상이 아닌 건 병실에 누워 있는 인간이랑 팀장 새끼고.”
희주는 아까 오치상에게 맞아 부은 얼굴을 거칠게 문질렀다. 주웅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약이나 빨리 줘. 약속했잖아.”
“지시대로 이 사건에서 손 떼. 그러면 약이든 뭐든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줄 테니까. 일단 내 진료실로 올라가서 얘기해.”
주웅은 지금 희주가 가장 필요로 하는 고용량 공황장애 약을 빌미로 그녀를 길들일 심산이었다. 주웅의 의도를 읽자 심사가 뒤틀렸다. 이러면 전남편과 다를 바가 없다. 정현은 완벽한 동료고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희주가 강력팀이 아닌 내근직으로 업무를 바꾸고 아기를 가지고 엄마가 되길 바랐다. 주웅 또한 결국은 희주의 일을 들먹일 것이다.
“그럴 시간 없어. 처음으로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어. 범인을 잡을 마지막 기회야. 분명 다시 움직일 거야. 난 그놈을 잡아야 돼. 그리고 남은 인간들한테 20년 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볼 거야.”
“그 상태로는 안 돼. 넌 지금 정신이 아파. 그래서 더 몰입하고 증오심이 불타는 거야.”
“미쳤다는 말을 참 고급스럽게 하네. 그럴 필요 없어. 약이나 내놔.”
주웅은 희주의 날 선 말에 한숨을 내쉬고 결국 약통을 내밀었다.
“……하루에 3알 이상은 안 돼.”
희주는 주웅의 말을 무시하고 차에 올랐다.
무원은 병원 주차장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운전석과 보조석, 뒷자리까지 창문을 전부 내렸다. 희주가 열린 창문으로 큰 숨을 토해 냈다.
“복직하고 호텔에서 만났을 때 내가 한 말 기억해?”
“저더러 재수 없게 걸렸다고 한 거요?”
“내가 한 말을 실시간으로 확인한 소감이 어때?”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전 가끔 머리가 복잡하면 지방 같은 데로 훌쩍 가요. 적당한 데다 차 세워 놓고 골목길 같은 데를 걸어 다녀요. 낯선 동네에서 끼니를 때우고 옆 테이블에서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얘기도 엿듣고요.”
무원의 차분한 목소리가 자갈이 굴러다니는 것 같은 뱃속을 진정시켰다. 낯선 동네에서 혼자 걷고 있는 무원의 뒷모습과 식당에 혼자 앉아서 묵묵히 젓가락을 옮기는 모습이 상상됐다.
“꽤 여러 번 그런 시간을 혼자 보내고 나면 그 기억들은 서로 분간이 안 될 만큼 비슷한 모양새로 남아요. 어디든 지방 소도시는 비슷하게 쇠락한 모습이고 동네 식당도 비슷하니까요. 사건 현장은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가 응축된 곳이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전부 나를 쥐고 흔들고, 나 역시 균형을 잃고, 그러다가 보면 그저 그런 형사가 되어 있고. 그런 기분이 들 때 나라는 인간을 점검해 보는 거죠, 낯선 곳에서.”
희주의 기분이 딱 그랬다. 내면 어딘가가 못쓰게 망가지고 비틀린 게 확실했다. 주웅이 그걸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와 연애를 시작했다.
“너 정체가 뭐야? 사이보그야? 아님 수도사 같은 거야? 그냥 동네 걷는 걸로 그런 게 된다고?”
“사이보그라니 좀 웃기네요. 오늘 밤에 확인해 보실래요? 사이보그인지 인간인지. 선배 애인이 싫어할 말인가.”
희주는 전방만을 주시하며 운전에 집중하는 무원을 바라보았다. 무원의 말을 점점 무시하기 힘들었다. 그의 말에 자꾸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팀장은 사건을 묻을 거야. 확실해. 해결할 생각이 없는 거야. 해결이라는 건 곧 옛날 일을 까발리는 게 될 테니까.”
“그리고 우린 책상 앞에 앉아서 전화나 받고 지루한 서류 작업이나 종일 하게 되겠죠. 대기 발령 처분이나 받고.”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내가 범인 잡아다가 그 인간 코앞에 갖다 놓을 거니까.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두고 봐.”
무원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두 사람은 스타리온 본사 앞 카페에 앉았다. 아이돌을 보려고 죽치고 있는 여고생들 틈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스타리온 입구에는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근데 지금 강 대표가 회사에 있다는 보장이 있어요?”
“인터넷 뉴스도 안 봐? 그 인간이 매일 오후 3시에 이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한다고 기사 났잖아.”
“그걸 믿어요?”
“궁하니까 쓰레기 기자 말이라도 믿어야지.”
무원은 카페 통 창으로 건물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희주가 갑자기 무원의 팔을 잡고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옆 테이블에서 소곤거리던 한 무리의 여고생들도 벌떡 일어나 카페를 나가기 시작했다. 희주와 무원은 여고생들 꼬리에 붙어 카페에서 나갔다. 스타리온 앞에 밴 한 대가 멈춰 섰다. 대기하던 경호원들이 빠르게 밴을 감싸며 몰려드는 여고생들을 제지했다. 1층 안내 데스크를 지키던 남자 직원 두 명도 합세했다. 그 사이 두 사람은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은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가 텅 빈 안내 데스크를 지나 비상구로 향했다.
강희건은 트레이드 밀 위에서 달리고 있었다. 희주와 무원은 비서의 강력한 제지를 뚫고 옆에 섰다. 하지만 강희건은 달리는 것을 멈추지도 두 사람을 보지도 않았다. 비서는 안절부절못하며 대표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나갔다.
“한때나마 돈독한 사이셨던 판사님과 변호사님이 뜻하지 않게 세상을 떠나셨는데, 심경이 어떠신가요?”
“알리바이를 묻는 거라면 출입국 기록이 내 알리바이야.”
강희건은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리바이를 물은 게 아니라 심경이 궁금했는데. 알리바이는 물론 확인했습니다. 일본에 계셨더군요.”
“해외 출장이 잦은 업계라 한 달에 절반은 한국을 떠나 있지. 그리고 두 분 죽음에는 내 나름대로 충분히 조의를 표했다고 생각하고.”
“영장도 없이 왔고 녹음도 하지 않는데 좀 솔직해지면 어떨까요?”
강희건은 트레이드 밀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하지만 멈추진 않았다.
“판검사님들의 적절한 도움과 경찰의 긴밀한 협조가 없었다면, 이런 멋진 생활이 가능했을까요? 궁금하네요.”
“몇몇 스캔들이 있었다고 해서 내가 무너졌을 것 같나?”
“곤란하긴 하셨겠죠. 개인 별장에서 가사도우미와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킨 연예기획사 사장이 내놓는 아이돌과 여배우를 대중들이 보면 별로 좋지 않은 상상을 할 테니까요. 그런데 그걸 스캔들이라고 표현하시네요? 그것도 그 업계 용어인가요?”
강희건은 고개를 돌려 희주를 응시했다. 강연 때는 철저히 감추고 있던 어딘가 짐승을 연상케 하는 눈빛이 자신의 영역 안에서는 거침없이 드러났다. 그는 트레이드 밀을 멈췄다. 뭔가가 그를 건드린 게 분명했다.
“경위의 정신병은 좀 어떤지 궁금하군. 듣자 하니 반쯤 미쳤다던데.”
“어떤 분들처럼 기억을 지우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는 아닙니다. 걱정 감사해요.”
“조만간 기억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 같은 것도 전부 삭제할 수 있을 테니 그때까지 잘 버텨 보던지.”
“대표님한테는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이 불필요한 감정인가요?”
“스스로를 위험하게 만든다면.”
“이덕식과 주용훈에게도 해당되는 말인가요?”
“범인을 잡는다면 경위가 원하는 곳에 기부금을 내지. 액수도 경위가 정하고.”
강희건은 다시 트레이드 밀의 속도를 올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꺼지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희주는 강희건의 뒤통수에 대고 한 마디를 더했다.
“별장에서 멋진 파티를 연다고 들었는데, 저희도 초대해 주세요.”
“뭐 주워 먹을 것 없는지 주둥이를 들이미는 들개가 파티에 오는 걸 누가 반길까.”
“역시 그렇겠죠? 그래도 오치상과 조정배는 갔잖아요. 그 사람들은 들개가 아니라 충직한 반려견인가요?”
오치상은 그냥 던진 거였다. 틀려도 상관없었다. 그저 강희건을 흔들어 볼 요량이었다. 희주는 강희건의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섰다.
비서는 남자친구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형사가 멋대로 헬스장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어쩌면 30분 뒤 샤워까지 마친 대표가 나와 내일부터 회사에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상상에 울상이었다.
희주와 무원은 눈빛을 주고받은 다음, 희주가 먼저 계단으로 내려갔다. 무원은 데스크에 팔을 올리고 비서 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울기 일보 직전인 비서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아깐 곤란하셨죠. 죄송합니다. 그런데 대표님 내일 스케줄이 어떻게 되시죠?”
비서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본인의 업무 영역에 속하는 질문이 나오자 자동으로 달력을 집어 들었다.
“1시간 뒤에 공항으로 가실 거예요. 밤 비행기로 대만에 가셨다가 3일 뒤에 돌아오세요. 근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또 찾아오시려고요?”
완벽한 달걀형 얼굴에 볼록한 이마를 움찔거리며 비서가 물었다. 무원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이 출장에서 돌아오시면 제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실 수 있을까요? 연락처를 알려 주시면 가끔 다른 일로 연락을 드릴 수도 있고요. 물론 업무적으로요.”
무원은 휴대폰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비서는 무원이 정말로 그게 궁금해서 이러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에게 호감이 있어서 일 핑계를 대는 것인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잘생기고 친절한 이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흔쾌히 자신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