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오후 6시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픽업한 남편은 집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지쳐있었다. 2시간만 있으면 내가 퇴근하고 돌아와 바톤터치를 하는데도, 남편에게 그 2시간은 대부분 죽을 만큼 버거웠다.
시간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현실은 평생을 원하는 대로 살아온 그를 옥죄었을 것이다.
19개월 아이의 인생에서 남편은 다정하고 좋은 아빠였지만, 최근에는 아이에게 종종 화를 냈고, 때론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를 쳐다보았다. 세상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던 남편은 어느새 죽지 못해 산다고 했다.
그러던 남편이 최근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됐다. 공부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모니터와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남편의 대화는 곧 그 취미가 얼마나 다이내믹하고 유익한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시간이 모자라.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해.”
시간이 부족하다고 얘기하던 남편은 밤 12시가 넘을 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10년을 넘게 봐온 그이지만, 뭔가가 좋아서 이렇게나 집중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 그 취미에 완전히 몰입했다. 마치 나는 집에 아이와 둘만 남아있고, 남편은 다른 세상으로 떠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사람을 구하자. 아이 하원 후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아이와 우리 저녁거리 챙겨주실 분을 구해보자.”
남편은 거절했다.
“나는 지금 이대로 못 버티겠어. 너도 마찬가지잖아. 장기전으로 봐야지. 아이가 크면 덜 힘들 수도 있지만 더 힘들어질 수도 있어. 지금 이렇게 에너지를 다 소진하는 게 우리한테 무슨 득이 돼? 이모님 구하면 아이 보는 스트레스도 줄고, 네가 그렇게 원하던 추가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질 수 있잖아.”
견디면 계속 맞벌이를 하는 거고, 이걸 견디지 못하면 둘 중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두는구나. 그리고 그게 보통은 엄마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남편은 사람을 구해서까지 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결국 내 마음 속에 있는 불안을 입밖으로 꺼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누군가가 일을 그만두게 될 거야. 나는 일을 하기 싫은 게 아닌 이상 타의에 의해 그만둘 생각 없어. 그건 우리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보고 그래도 안될 경우 그때 고려해볼 수 있는 마지막 옵션이야. 아니, 누군가 그만두는 건 옵션에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맞아. 나는 그만둘 생각 없어.”
맞벌이 육아를 하며 누군가 그만둬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었지만, 이제는 그게 언제든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둘 중 하나가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아이만을 돌보는 옵션은 애초에 리스트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자신의 일을 한다는 걸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육아라는 공동 과업을 더하는 거라고.
내 삶이 있어야 나는 아이와 남편과 행복할 수 있었기에. 그렇지 않으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는 나여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아이를 돌보느라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이 부족하다면, 일을 그만둬서 시간을 버는 마이너스 방식을 고민할 게 아니라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을 구매해서 시간을 버는 플러스 방식을 고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