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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Dec 16. 2020

의사선생님이 집안일을 줄이라고 했다

워킹맘에게 집안일이란

집안일을 보면 화가 미친 듯이 나요

월요일부터 일이 너무 많아서 점심을 먹지 못했다. 식욕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도 한몫을 했다. 그렇게 에너지를 탈탈 털어쓰고 퇴근해서 옷 갈아입고는 아이방에 들어가 남편과 바톤터치를 하고 아이를 재웠다.



겨우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왔는데 눈 앞에 펼쳐진 세계가 너무도 아름다워(?) 갑자기 미친 듯이 화가 났다.



거실엔 아이가 꺼내놓은 장난감과 옷가지들이 널려있었고, 싱크대엔 설거지 거리가 잔뜩 쌓여있었다. 우리 집에서 제일 크고 높은 아이 전용 빨래바구니는 넘치기 일보 직전이었고, 건조기엔 어제 돌려놓은 빨랫거리가 숨죽이고 있었다. 아직 아이의 등원 가방은 열어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집안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밤 9시가 넘은 이 시간까지 나는 저녁은커녕 점심도 먹지 못했다는 걸 화가 나는 순간 깨달았다. 이가 갈렸다. 아이가 자고 있지 않았다면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퇴근해서 아이 재우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밤 10시가 되어 도착한 배달음식을 꾸역꾸역 집어넣고는 다시 야근을 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해도 해도 쌓여있는 집안일을 보면 화가 났다. 자려고 누우면 새벽 2시였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의 출근길, 플랫폼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며 불안장애를 앓는 엄마가 쓴 글을 우연히 읽다가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한 방법으로 집안일을 최소화하는 원칙을 세웠다는 부분에서 눈물이 터졌다



점심시간에 다시 눈물이 터져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었다. 점심으로 사둔 샌드위치는 퇴근할 무렵에나 먹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난장판




집안일을 줄이세요

몇 년간 병원을 다녔지만, 상담하다가 운 적은 처음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집안일을 줄이면 좋겠다고 했다. 억지로 하지 말라고. 



본인은 이미 한계인데 해야 할 일이 또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기 때문에 화가 난다고 하셨다. 나한테는 한계를 뛰어넘어 영끌해서 해야 했던 일이 '집안일'이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 되지 않더라도 의식적으로 줄여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남편이나 주변의 도움을 최대한 받고, 하지 않을 수 있으면 하지 말라고 하셨다.



며칠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있었다. 나도 내가 왜 울고 있는지 몰랐다. 퇴근 후,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서 아이를 안았는데 다시 엉엉 울고 말았다. 아이는 내가 그렇게 우는 걸 처음 봤을 것이다. 이런 내가 어떤 엄마로 보였을까. 



적어도 아이 앞에서 좋은 엄마는 아닐지언정 괜찮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곧 죽어도 애벌빨래를 고집했던 이유

싱크대 닦아주는 기계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 등원 가방 싸주는 기계, 애벌빨래 거리 골라서 해주는 기계 어디 없나? 가능하다면 집안일을 몽땅 외주 주고 싶다.



차분히 앉아 남편에게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 내용을 얘기했다. 남편은 아이를 보는 게 더 힘들단다. 본인에게 집안일이 상대적으로 덜 힘들다고, 내가 집에 오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최대한 집안일을 해놓겠다고 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남편이 질문을 던졌다. 애벌빨래를 꼭 해야 하냐고.



바빠도 애벌빨래를 고집했던 건, 혹시라도 맞벌이 가정에서 자라서 대충 키운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이 옷이나 손수건에 당연히 얼룩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맞벌이를 하니까, 혹시라도 그런 얼룩에서 부모가 육아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인상을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받게 될까봐, 그래서 그게 다시 아이에게 돌아갈까봐 싫었다.



본인도 버거울 텐데 남편은 그런 나를 이해해줬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온갖 종류의 집안일을 다 해놓았다. 덕분에 나는 집안일을 보고 화가 나는 날도, 그래서 우는 날도 줄었다. 집안일에 아예 손을 놓은 건 아니었지만(그럴 수도 없고), 이전만큼 많이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좋은 엄마는 아니어도 괜찮은 엄마가 되고 싶어




맞벌이 육아 부부, 집안일은 외주로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에너지를 최대한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나는  ‘ 내가 해야하는 일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됐다.



집안일보다는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었다



그래서 맞벌이를 시작하고 나서 우리는 실제로 많은 집안일을 기계에 맡겼다. 올해 최고의 쇼핑은 '로봇청소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니까. 아들의 돌 기념으로 친정 엄마는 건조기를 사주셨다.



집안일은 어느 정도 포기하면 좋지만, 나처럼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은 최대한 남편과 부탁할 수 있는 가족, 기계에 맡기고, 그게 안된다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도우미를 불렀으면 좋겠다.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자꾸 하려고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다친다, 나처럼. 몸과 마음이 다치면 결국 힘든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들이다.



집안일을 보고 화가 난다면, 일단 당장 로봇청소기와 건조기부터 구입하는 걸로. 비싼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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