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댓글에 대한 조금 긴 답변
맞벌이를 한다고 하면 아이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느니, 아이가 불쌍하다느니 등의 오지랖을 생각보다 많이 듣게 된다.
2년 전 복직을 준비하며 썼던 글, <결혼해서 애 키우려고 공부한 거 아니에요, 어머니> 댓글창에도 여전히 그런 댓글이 달리는데... 아래는 가장 최근에 달린 댓글 내용의 일부다.
요즘 여성들의 지나친 자기애로 인해 자신 스스로가 괴로움을 겪는 것도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경력 단절하기보다 일하는 것이야 좋은 생각입니다. 애 키우려고 대학 나오고 공부하지 않았다니... 애 키우려고 결혼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그러나요. 아이가 태어난 게 미안할만한 마음은 가지지 마시길 당부드려요.
나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공부하지 않았고, 아이를 키우려고 결혼한 것도 아니다. 내 미래를 준비하고 삶을 꾸려가기 위해 공부했고,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파트너를 만났기에 결혼을 선택했다.
나에게 이런 ‘당부’의 댓글을 쓰신 분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글을 쓰셨을 거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 생각에 동의한다. 열 달 동안 품으면서 길바닥에서 쓰러지기를 여러 번, 산소 호흡기까지 껴가며 16시간 진통 끝에 아이를 만난 내가 어떻게 아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를 만나 엄마가 된 후, 완전히 달라진 세상을 맛보고 있다. 아이는 내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하지만 나의 페르소나는 '엄마'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콘텐츠 기획자, 엄마, 아내, 딸, 며느리, 친구, 회사 동료 등 다양하다.
엄마라는 새로운 페르소나가 생겼다고 해서 직업인으로서의 나, 누군가의 친구인 나를 하루 아침에 포기할 순 없다. 그저 역할의 무게를 조정해가며 각 역할을 적절히 수행해나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역할들을 가지고 있고, 그 역할의 수도, 역할 간의 비중도 천차만별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인 나는 단지 '엄마'로만 살지 않기로 결정했을 뿐이다.
아이가 태어난 게 미안할만한 마음이라는 게 뭘까. 일이 하고 싶어 육아휴직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엄마를 둔 내 아이를 불쌍히 여겨 이런 댓글을 다셨겠지만, 내가 아이를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아이가 나와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지켜본 가족들과 친구들도 하지 않는 당부를 낯선 사람에게 듣고 있자면 꽤 당황스럽다.
내 아이는 당신보다 내가 더 사랑한다. 아니 세상에서 나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아이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면서 굳이 초면인 나에게 아이가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댓글로 남기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아이가 불쌍한지,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이 불쌍한지, 그 진실은 오직 내 아이와 부모인 우리만이 아는 것이니까.
맞벌이를 하는 부모에게 육아뿐인 주말이 괴롭다 해도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기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자기 자식더러 다 천재라고 하는 건 아이의 생각이 어른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어린이의 세계는 예측불허, 놀라움의 연속이다.
어느 날, 아이가 원형 블록 하나에 색연필을 거꾸로 꽂아 빨대로 마시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주스를 마시고 있다고 하더니 곧 하나 더 만들어서 '엄마 커피'라 하고 나에게 건넸다. 나도 덩달아 쪽쪽 마시는 시늉을 했더니 아이의 얼굴이 눈부시게 환해졌다.
남편과 나는 매일 밤, 아이가 오늘 새로 보여준 모습들, 새로 한 말들을 침대에 누워 되새긴다. 새로운 발견들을 기억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 시간엔 부모로서 뭘 더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주말에는 아이와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도.
일하는 부모라고 아이를 쉽게 대하고 방치한다는 생각은 너무나 일차원적이고 편협하다. 전업 주부라고 아이를 살뜰히 돌보는 것도 아니고, 맞벌이하는 워킹맘이라고 아이를 대충 돌보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모두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세상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