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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Aug 19. 2020

결혼해서 애 키우려고
공부한 거 아니에요, 어머니

보육 방법은 우리가 선택할게요.

"네 시어머니가 아이 봐주신다는데, 어린이집보다 시어머니한테 맡기는 게 어떻겠니?"



복직을 한 달 남짓 앞둔 어느 날, 차로 10분 거리에 사는 시어머니의 의중을 편도 4시간 거리에 사는 친정엄마의 전화를 통해 알게 됐다. 시어머니가 엄마를 통해 나를 설득하게 된 상황이 반갑지 않았다. 



가끔 내년에 복직할 거냐고 물어보시던 시부모님께 '빨리 일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 질문은 언제나 같았다. "아이는 어떻게 하고?"

 



워킹맘이 된 미스 인디펜던트

아주 어릴 때 학원을 가는 일부터 어떤 고등학교를 갈지 어떤 학과를 갈지, 결혼을 준비하고, 퇴사를 하는 일까지 늘 스스로 고민해서 결정을 내려왔다. 생활습관이나 예절에 어긋나는 게 아니면 내 결정을 늘 믿고 지지해준 엄마의 교육 방침 덕에 나는 무사히 'Miss Independent'로 자랐다.



네이버 메인에 기혼 여성 3명 중 1명이 육아로 인해 ‘경단녀’가 됐다는 기사가 떴다. 남의 얘기 같지 않아 기사를 클릭했더니 육아를 핑계로 경단녀가 된 여자들은 일하기 싫어서 노는 여자들이며, 능력 있는 직장인이었으면 그만두지도 않았을 거라는 둥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댓글들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 댓글창 상단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인간들이 단 글이겠지'하고 넘기려다가도 '대부분의 여성들이 결혼해서 애 낳으려고 그 비싼 돈을 들여 대학까지 나왔단 생각을 하는 건가' 답답함에 한숨만 나왔다.




일이 하고 싶어서 울었다

갓 100일이 지난 아이를 재우고 자유의 몸이 되는 시간은 밤 12시였다. 거울 앞에 선 나는 비참했다. 무릎과 손목은 삐걱거리고, 머리는 감지 못한 지 며칠이 지났다. 무엇보다 오늘 하루 나를 위한 시간을 단 1분도 가지지 못했고, 제대로 된 밥상에 앉아서 편하게 밥을 먹지도 못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를 나날들이 계속 흘렀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재우고 나면 화가 나서 울었다. 울면서 남편에게 얘기했다.



"빨리 일하고 싶어."



먼 친정, 가깝지만 바쁜 시댁.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우리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하고 50일이 지났을 때 입소 대기를 걸어두었다. 아이는 한 달 뒤에 어린이집에 입소하기로 되어있었다. 



모두가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에 그랬겠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복직하겠다는 내 의지는 아이보다 돈을 사랑하는 비정한 엄마로 비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그만두라 말하지 않으셨지만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지 라는 말에 며칠 밤 잠을 못 이뤘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시부모님께 전하고 싶은 나의 진심을 휴대폰 메모장에 차곡차곡 모았고, 얼마 후 시부모님께 최대한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시부모님께,

1.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행복한 개인으로 구성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해야, 아이에게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지원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생각해서 살았다면 애초에 아이를 갖지 않았을 거예요. 돈 때문에 일할 정도로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애 낳고 일 그만둘 생각으로 대학 가고 어렵게 취업한 게 아니니,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 저희가 결정해야 할 문제 관련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면, 직접 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말씀이라서 안 듣고 엄마 말이라서 듣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얘기를 전해 듣는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다른 사람을 통해 얘기를 듣다 보니 필연적으로 오해가 생기게 됩니다. 


3. 도움을 주시고 싶은 마음은 너무 잘 알겠지만 저희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으로선 도움이 아니라 강요로 느껴지고 부담스럽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드릴게요. 마음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왜 워킹이라는 단어는 '맘'에만 붙어요?

시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보냈다. 시부모님은 우리의 결정대로 하라고 존중의 의사를 밝혀주셨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있었다고 생각은 됐지만,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다는 생각에 속이 후련했다. 물론 우리에게도 어린이집은 최선이라 선택했을 뿐이다. 직접 아이를 보는 게 아닌 이상 불안한 건 당연하다.



불행히도 아이는 면역력이 약하고, 성인만큼 항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자주 아프다. 코로나19 시대에는 더 민감한 문제가 되었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면 누군가 휴가를 쓰고 아이를 봐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열이 나고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갑자기, 의도치 않게, 잦은 휴가를 쓰면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직장인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다.



직장과 육아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결국 계속 일한 아빠보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당연히’ 내서 아이 곁에 오래 있었던 엄마가 그만두게 된다. 여성의 평균 급여가 낮은 것도 한몫을 했을 테다. 경력 단절의 이유가 '육아'인 게 여자 탓인가? 



워킹이라는 단어가 ‘맘’에만 붙는 현실이 안타깝다. 온갖 민폐를 끼치더라도, 일하는 게 즐거운 나를 지켜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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