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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Oct 12. 2020

나는 그렇게 실패한 엄마가 된다

워킹맘이 힘든 진짜 이유

"어린아이를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맡기는 건 엄마 잘못인 것 같아요."



단골 네일숍에서 그날 내 손톱을 맡아준 건 얼마 전 새로 입사한 직원이었다. 



아이가 있다고 하니 조카바보라고 말하던 그분은 아이가 몇 개월이냐, 일할 동안 아이를 누가 보냐고 물었고,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요즘 너무 안 좋은 일이 많잖아요'라며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건 엄마의 잘못이라 했다. 



면전에서 그런 얘기를 들은 나는 말문이 막혔지만, 악의로 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만 생각하려 했다.




악의는 없지만 예의도 생각도 없는 참견들

열 달 동안 품은 아이를 열다섯 시간의 진통 끝에 낳아 육아 중인 우리가 기관에 아이를 맡기고 일하기로 결정했다면, 전통적인 사상 혹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주장을 들이밀기 전에  결정에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먼저 아닐까?

 


초보 워킹맘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치는 악의는 없는 하지만 예의도 생각도 없는 참견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당사자인 나마저도 한때 아이는 엄마가 집에서 키워야지라고 생각했었고, 여자로서 구시대적인 '엄마'의 역할을 일생동안 경험하고 배웠기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하면서도 냉탕과 온탕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갔다. 학습된 죄책감이었다.



하지만 산다는 건 말을 내뱉는 것처럼 단순하고 쉬운 게 아니다. '엄마'에 대한 구시대적인 사회적 편견은 둘째 치고라도,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키우고 다니던 직장은 퇴사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일까?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방법' 아니라 '정답' 존재하는 걸까.




여전히 우리는 부모 세대의 여성상을 강요받는다

부모 세대처럼 남자가 돈을 벌어오고, 여자가 육아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들로부터,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고정된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을 교육받았다. 하지만 그런 가르침과는 반대로 사회는 여자들에게 여전히 육아를 전담하던 부모 세대의 여성상을 요구한다.



우리는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출산 전처럼 맞벌이를 한다. 남편과의 오랜 논의와 시행착오 끝에 자리 잡은 우리 가족의 생활양식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얘기를 엄마인 나만 들어야 하는 상황은 어떻게 보아도 불공평하다.



나에게 육아는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막상 뒤돌아보면 아쉽고 미안한 것뿐인 인생 최대 고난도 장기 프로젝트다. 그 미안함은 복직을 해서, 아이를 기관에 보내서, 어떤 엄마들처럼 하루 종일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느끼는 게 아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 부모가 된다는 것은 못해준 것만 생각나는 일이라서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아이에겐 늘 미안함 뿐인데 생면부지인 사람들이 엄마인 나한테 얘기하고, 남편에게도 얘기한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서 어린이집에 하루 종일 있는 아이가 불쌍하다고, ‘엄마’랑 시간을 못 보내서 엄마만 찾는다고.







그렇게 실패한 엄마가 된다

워킹맘이 진짜 힘든 이유는 이런 무신경한 참견 때문이다. 그런 참견은 희한하게도 아이를 키우든 안키우든 아무나 한다. 엄마를 뒀을 뿐, 엄마가 되어보지도 않은 사람들도 가세한다. 그들은 나한테   돌을 던졌을 뿐이지만, 나는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를 수십 개의 돌을 혼자 맞는다. 도대체 엄마가 뭐길래.



세 식구가 잘 지내다가도 그런 소리를 들으면 미처 알지 못하는 잘못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의 모든 행동을 하나씩 돌아보게 된다. 



네일숍에서 얘길 듣고 정말 어이가 없는 개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다음날 출근길에 나도 모르게 포털 검색창에 ‘자폐 스펙트럼 증상’을 검색하고 있었다. 몇 개의 게시글을 읽고 내 아이에게 관련 증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한 내가 이상한 걸까.



악의는 없지만 예의도 생각도 없는 말 때문에 아이는 잘 크고 있는데도 아이에게 실패한 엄마의 흔적을 찾는다.




사회의 요구가 아닌 각자의 능력에 맞춘 역할 분담

우리는 한 가족이지만 세 사람이 모여 이뤄진 공동체다. 짧게 만났다 흩어질 공동체가 아닌 이상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으로는 이 공동체를 오래 지속할 수 없다.



물론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기에 남편과 나는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우선순위에 두고 개인 시간을 모두 내려놓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세 사람이 살아가면서 각자의 행복과 성취가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가족만의 생존 방법을 찾고 싶다.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순응하며 사는  아니라 우리  사람이 좋은 대로, 잘하는대로,   있는 대로 역할을 나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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