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인 딸을 위로하는 엄마의 화법
야근을 하게 된 남편을 대신해 반반차를 내고 부랴부랴 어린이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엄마가 기도제목을 보내달라며 메시지를 보내왔기에, ‘밤에 적어서 보내줄게요.’라고 짧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한테 다시 카톡이 왔다.
‘딸,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아차. 전날 혼자 아이를 재우다 그대로 잠이 들어버리는 바람에 잊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가 답장으로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내가 며칠 전에 사준 이모티콘이었다.
별생각 없이 이모티콘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져버렸다.
남편은 국정감사에 회사 이전 문제로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하기가 벅차 주말에도 회사에 출근을 했고, 나는 내가 책임으로 진행한 캠페인 런칭으로 정신이 없었다.
누가 더 힘든지 대결이라도 하듯 한정된 시간을 쪼개썼더니 어느새 잔뜩 예민해져서 이틀을 연달아 싸웠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 휩쓸릴 새 없이 일하기 바빴던 오전 시간, 엄마의 이모티콘에 무너져버렸다. 엄마는 이모티콘 하나로는 모자랐던지, 세 문장을 더해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고 안쓰럽다. 그래도 둘이 잘할 거라고 믿고 있어. 엄마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며칠 뒤, 엄마는 동생 이사를 도와주러 올라온 김에 손주를 보러 우리 집에 잠깐 들렀다. 엄마는 손주 간식뿐만 아니라 딸이 좋아하는 그 비싼 샤인 머스캣과 사위가 좋아하는 멜론까지 두손 가득 든 채로.
손주가 좋아하는 사과는 씻어 재포장해두었고, 사위가 좋아하는 멜론은 모두 조각을 내어 밀폐용기에 담아두었다. 딸이 샤인 머스캣을 씻을 동안 엄마는 된장찌개를 끓였다.
집에 아무것도 없어서 양파와 파만 넣은 된장찌개인데 왜 이렇게 맛있을까? 혼자 '캬~ 캬~'거리며 된장찌개를 먹는데 엄마가 그런 나를 보며 말을 꺼냈다.
"딸 고생하는데 엄마가 손주 봐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다들 그러더라. 나도 봐주고 싶은데 가까이 살아야 말이지... 그래도 엄마는 맞벌이하면서 아이도 보고 집안일도 열심히 하는 너희가 더 대단해."
아이를 재우고 나오니 거실에 깔린 놀이매트를 열심히 닦고 있던 엄마.
아빠를 내조하며 전업으로 딸 셋을 키운 엄마 눈엔 부족한 점이 많을 게 분명한데도, 엄마는 내가 복직을 하는 것부터 복직 후 엄마에게 SOS를 쳤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 남편이 잘하고 있다고, 아이는 정말 잘 크고 있다고,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하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잔소리 대신 밀린 집안일을 말없이 해주셨고, 나와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셨고, 단둘이 시간을 보내라며 기꺼이 아이를 봐주셨다. 엄마가 보내준 반찬이 몇 달째 냉장고에서 썩고 있을 때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고, 남편과 내가 둘 다 힘에 부쳐 부득이 엄마에게 편도 5시간 되는 거리를 와주십사 요청했을 때도 엄마는 흔쾌히 달려와주셨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얘기 또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을 테고, 잔소리를 쏟아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구원을 맛보았다.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와 딸로, 회사의 구성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나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