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들어온 아이와의 공존을 향해
갑자기 어린이집 입소 시기가 한 달이나 미뤄졌다. 내가 복직하고도 3주 뒤에나 어린이집에 갈 수 있게 된 것인데, 어렵게 어린이집 보육을 결정한 뒤 복직 전에 아이 등하원도 시키고 분위기도 보려고 했던 우리로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복직 직전까지 이리저리 방법을 알아보고, 워킹맘으로 지내는 친구들에게 상담도 해가며 고민한 끝에 아이를 편도 4시간 거리에 있는 친정에 3주간 맡기기로 했다. 몇 주 정도 우리 집에서 지내면서 아이를 함께 봐주셨던 엄마도 흔쾌히 수락하셨고, 남편과 나도 그렇게 하는 게 가장 마음이 놓였다.
단, 아이를 매일 보지 못한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반년만의 출근이 여러모로 쉽진 않을 테니 일과 사람에 파묻혀 지내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무뎌질 줄 알았다. 빈 아기침대를 보는 게 두려워서 친정에서 올라오자마자 아기 물건을 모두 놀이방으로 옮겨놓았고, 그 문을 일주일째 열지 않았다.
각오했다고 생각했지만 자식을 못 보는 고통이 어떤 건지 나는 전혀 짐작도 못했던 것 같다. 내 아이를 만나고 내 세상은 180도 달라졌고, 지금의 나는 불과 몇 개월 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휴대폰 화면 속에서 아이가 웃고 있어도, 초지일관 질질 짜고 있는 내 모습이 나도 당황스러웠다. 친정에 맡기고 다시 집으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쏟았지만 그만큼 일이 너무나 하고 싶었던 나였기에 나를 잘 다독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제는 인정해야만 할 것 같았다. 사랑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다.
아이를 얻고 나를 잃어버린 것만 같아서 아등바등 복직도 하고, 좋아하는 책도 더 열심히 읽었지만 정작 휴대폰 사진첩엔 온통 아이 사진뿐이다. 틈날 때마다 아기가 먹을 것, 입을 것, 갖고 놀 것만 찾아보니 집에 이틀 걸러 한번씩 오는 택배는 아이 것 뿐이다.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변한 게 없지만, 내 삶에 들어온 이 아이의 존재감이 실로 너무나도 압도적이어서 좋은 이유에서든 나쁜 이유에서든 이제 아이를 만나기 전의 나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인생은 늘 행과 불행이 함께다.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여자로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존재가 나를 살릴 때도 죽일 때도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내가 새롭게 받아들인 생존 방식은 과장하거나 축소할 것 없이 이 압도적인 존재를 받아들이고, 자연인인 내가 주눅 들지 않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그뿐이다. 최고는 되지 못할지라도, 최선의 균형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