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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Sep 19. 2020

워킹맘에겐 롤모델이 아닌 레퍼런스가 필요해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줬다면 어땠을까

임신하고 공황장애가 재발했다.



재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찼지만, 그보다 더 큰 불안요소는 주변에 그 일을 겪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홀몸일 때 공황장애가 다시 찾아왔다면 크게 불안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임신도 처음인 데다 뱃속의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겪게 될 공황장애는 내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병이었다.



감기처럼 누구나 겪을  있는 흔한 병이었다면  달랐을까.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임산부가 먹어도  영향은 없는 약을 받아왔지만 공황증세로 매일 울면서 출퇴근을 했어도  약을 함부로 먹지 못했다. 이렇게 지내도 괜찮은 건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 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치 공황증상처럼 앞이 깜깜하고 언제 어떻게 어디서 불쑥하고 고통이 찾아올지 몰라 불안했다. 심지어 공황장애 환자 커뮤니티에도 공황장애를 앓는 임산부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황장애를 앓는 임산부는 분명히 있을 텐데 말이다.



나와 뱃속의 아기는 괜찮을까? 나는 계속 출근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10개월을 버틸 수 있을까?



의사 선생님의 말 외에는 의지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공황장애를 앓고도 건강히 출산한 누군가가 '약 먹어도 괜찮아요'라고 얘기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약을 먹느냐 마느냐의 선택도, 약이 말을 듣지 않아 출퇴근이 죽도록 버거워도 회사를 계속 다닐지 말지의 선택도 오로지 당사자인 나만 할 수 있었기에 공황장애를 앓던 임산부는 모질게 외로웠다.



다행히 아이를 낳고 자연스럽게 공황장애는 사그라들었지만 나는 또 다른 불안 속에 있다.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여자 사람으로서 매 순간 '이게 정말 최선일까, 육아든 일이든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일하는 시간을 선택하고 기회비용으로 다름 아닌 아이와의 시간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지만, 고민하는 와중에 참고할만한 이야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지금의 나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롤모델

뉴스엔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슈퍼 워킹맘들이 종종 소개된다. 워킹맘의 롤모델, 더 나아가서는 일하는 여성들의 롤모델로 제시된다. 나는 그런 여성들이 분명 세상에 더 많아져야 하고, 그들의 존재는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 대부분은 여성들을 그 위치에 오르기까지 모든 희생을 감내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한 ‘슈퍼우먼’으로 포장한다. 워킹맘으로 계속 일을 한다는 게 일방적인 희생과 노력만으로 지속 가능한 건가? 그럼 나는 그 여자처럼 일을 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질문이 치고 올라오면, ‘나는 못한다’는 엉뚱한 결론으로 치닫는다.



존경스러운 분들이지만 적어도 나에게 그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 같다. 대단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야망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에게 일이란 내 존재를 증명하고 인정받는 수단이고, 나를 더 살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게다가 그 글을 읽는 나는 그 롤모델들처럼 의사결정권이 있는 C레벨도 아니고 아이가 학교를 다닐 만큼 나이를 먹지도 않았고, 체력이 좋거나 도와주실 양가 부모님도 계시지 않는다. 그런 글들을 접할수록, 나는 그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아들과의 소중한 산책 시간




더 많은 워킹맘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돌아보니 나는 결국 이렇게도 저렇게도 일하면서 육아해도 괜찮다는 다양한 레퍼런스가 필요했던 것 같다. 더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임산부로 공황장애를 겪으며 쓴 블로그 글에 달리는 수많은 공황장애를 앓는 또 다른 임산부들의 공감과 질문과 눈물의 댓글을 보면서 결심하게 됐다. 스스로 그 여자들의 이야기 중 하나가 되자고.



그런 마음을 먹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어느 날, 두 번째로 쓴 글이 우연히 다음앱 메인에 걸렸다. 3만명이 그 글을 읽은 하룻밤 사이에 나는 대단치도 않은 일을 하면서 일에 미쳐서 아이를 짐짝 취급하는 자격미달의 엄마가 되어있었다.



정도를 넘는 댓글들을 보며 온몸이 떨렸지만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겼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반응들은 세상에 더 많은 워킹맘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반증 같았다. 나의 동지들을 더 많이 만나기 위해 글을 계속 써야만한다고.



당장 눈에 띄는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누군가 그런 이야기가 필요할 때 그 사람 앞에 짠하고 나타날 수 있는 이야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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