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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o Nov 12. 2020

넌 특별하지 않아

전역을 앞둔 남성은 방대한 계획을 갖는다. 상큼한 캠퍼스 생활을 꿈꾸거나, 사회에서 높이 올라가기를 다짐한다. 일종의 조급함이다. 남들보다 2년이나 뒤쳐졌다는 불안감, 그들은 어떻게든 2년의 공백을 채우기를 원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초조함은 나를 채찍질했다. 일과가 끝나면 꼭 운동을 했고, 독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보이지 않던 전역 날이 가까워졌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사회에서 높이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가장 시급한 건 ‘군대물 빼기’다. ‘군대 가야 사람 된다’고 하지만, 군대에 가면 군인이 되어서 나온다. 모든 말은 ‘다’나 ‘까’로 끝나며, 말이 잘 안 들릴 때는 ‘잘 못 들었습니다’가 튀어 나온다. 가장 심각한 건 외모다. 군대에서 제 아무리 머리를 사수해도, 갓 전역한 군인일 뿐이다. 피부는 까무잡잡한 게 그렇게 촌스러울 수가 없다. 우선은 외모를 수정해야 한다. 외모가 살아야 자존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생겨야 핑크빛 캠퍼스 생활이 시작된다. 군적금도 들었겠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모든 계획이 완벽했다. 라섹 수술을 할지 치아교정을 할지만 정하면 됐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군대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너 연애하고 싶구나. 그런데 은호야, 남자는 스토리야.” ‘남자는 스토리.’ 이 얼마나 가슴을 뛰게 하는 말인가. 그가 제안한 스토리는 유럽 여행이었다. 사실 여행을 권유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돈도 조금 있고 시간은 충분하니, 여행가기에 분명 적기였다. 그러나 쉽사리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돈과 시간이 아까웠다.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남자는 스토리라니! 여행을 갈 충분한 명분이 되었고, 곧바로 독일 여행을 떠났다. 물론 아직 여자친구는 없다.     

                                                                                        *     

드라마나 영화 시청에는 취미가 없었다. 비효율적인 행위라고 생각했다. 2시간의 시간과 돈을 투자했는데 재미없는 영화면 어쩔 텐가. 시간과 돈을 누구에게 배상받아야 하는가. 세상에는 확실하게 재미를 보장하는 게 무궁무진하다. 재미있는 게임이 수없이 많다. 정말 할 일이 없다면 잠을 자면 된다. 잠은 언제나 확실한 이익을 보장해준다. 산책을 해도 된다. 이리저리 걷다 보면 머리도 맑아지고 몸도 건강해진다. 반면 영화나 드라마는 이익을 보장하지 않는다. 역대적인 히트작이어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명작이 누구에게나 사랑받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요즘 내 취미는 드라마와 영화 시청이다. 물론 여전히 작품 선정에 신중을 가하지만, 늘 새로운 작품을 찾아 헤맨다. 그것은 내가 막연히 독일행 티켓을 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남자는 스토리.’ 드라마와 영화 시청, 더불어 독서는 앉아서 떠나는 여행이다. 우리는 방 안에서 큰 노력 없이 의사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으며, 미국 사람들의 아침 식사에 동참한다. 점점 쌓이는 스토리는 나를 풍성하게 함과 동시에, 한없이 작게 만든다. 경유지가 늘어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인생의 심각함은 줄어든다.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더라.     

                                                                                        *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 보인다는 말마따나 사람은 누구나 영재로 자란다. 알파벳을 조금 빨리 외운다 싶으면 공부에 재능이 있나 싶고, 걸음마를 일찍 떼면 운동선수의 재목이라는 평을 받는다. 본인이 영재가 아님을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받아쓰기 80점으로는 영재 소리를 듣지 못하며, 달리기를 매번 꼴찌로 들어와서는 운동선수가 될 수 없다. 교육제도에 들어감과 동시에 자신의 평범함을 마주한다. 현실과 다르게 세상은 희망을 노래한다. 꿈과 노력이면 무엇이든 된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분명 불가능 투성이다. 어떤 노력을 한다 한들 남성은 여대에 진학하지 못한다.

인간은 수없이 본인의 평범함을 마주한다. 성적표를 통해, 취업시장을 통해, 승진여부를 통해 자신의 가치가 정해진다. 때때로 누군가는 자신이 평균 이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순간이 또 있을까. 어느 누가 ‘나는 표준 미달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당당히 ‘나는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잣대를 들이대기에, 그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불안하며, 서점에는 자존감에 관한 책이 넘쳐난다.     

                                                                                        *         

우리는 왜 자존감 위기 시대에 살고 있을까. 세상은 우리에게 꿈과 노력이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그렇다고 허황된 꿈을 불어 넣는다며 세상 탓만 해서는 안 된다. 평생 탓만 한다고 해서 꿈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도 있다. 사람들은 왜 세상의 달콤한 말을 무시하지 못할까. 현실의 부조리함을 마주하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 자신의 삶은 특별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실패자들이 있지만, 자신은 절대 그렇게 될 리 없다는 오만함 때문이다.

자존감이 떨어질수록 삶은 침몰해간다. 세상이라는 육지와는 점점 멀어진 채 망망대해를 헤맬 뿐이다. 다시 육지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영원히 고립되고 만다. 고립된 배의 결말은 뻔하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에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호주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요즘 남미 젊은이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세상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잘나게만 보이던 판검사들의 인간적인 고민이 보이고, 피 냄새 비릿한 전쟁터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느껴진다.

내게 쌓이는 스토리는 ‘나’의 스토리가 아니다. 나를 깊어지게 만드는 스토리는 다른 이들의 것이다. 여유를 가지고 나 외에 것을 보게 될 때, 내 삶은 더욱더 깊어져 간다. 동시에 진로를 헤매던 배는 점점 육지로 돌아온다. 특별하지 않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표준 이하이기에 취업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사람 모두가 힘드니 유별 떨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나를 괴롭히던 문제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건 분명 힘이 된다. 이 문제를 이미 해결한 사람이 있고, 함께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줄어든다. 어차피 삶은 거기서 거기다. 그러니 한숨 푹 내쉬고,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 당신도 분명 어떻게든 살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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