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no Jan 02. 2021

소소하지만 불확실한 행복

사람들은 행복을 좇는다. 누군가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밤낮으로 일한다. 봉사활동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투성이다. 한 때 ‘소확행’이 유행했다.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행복을 원했다. 소고기로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면 이제 돼지고기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꼭 고기가 아니어도 된다. 만두 몇 개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한 삶이다.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나는 행복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되려 묻고 싶다. ‘왜 꼭 행복해야 하는가?’

나는 ‘소확행’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소소한 일을 통해서 행복할 수 있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확실한 행복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에 확실한 건 없다. 어제는 만두 몇 개로 배가 불렀어도, 오늘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애초에 인간은 기계가 아니며 행복은 법칙이 아니다. 또한 ‘확실한 행복’은 제법 폭력적으로 들린다. 사람의 욕심은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돼지고기로 만족할 수 있지만, 소고기 쯤은 먹어줘야 행복한 사람도 있다.

애초에 행복은 주관적이다. ‘소소한 행복’이라는 말만 봐도 그렇다. 예전에는 반드시 대기업에 취직해야 행복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꼭 그렇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행복은 반드시 거대한 목표와 동행하지 않는다. 하루가 끝나고 마시는 맥주에도 분명 행복은 담겨 있다. 그것이 우리가 ‘소소한 행복’에서 얻는 의의다. 그러나 ‘확실’이 붙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소소’라는 단어는 행복의 주관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확실’은 주관과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절대’, ‘무조건’과 어울리는 단어다. 무엇을 행복이라고 말하는지만 달라졌을 뿐, 세상은 여전히 행복을 강요하고 있다. 이전에는 행복을 쟁취하라고 독려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제법 똑똑해졌다. 좋은 성과를 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아 버렸다. 어쩌면 영영 행복해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의 개념을 미래에서 현재로 바꾸었다.

행복은 이제 더 이상 성취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행복은 이미 내게 존재한다. 그저 깨닫지 못할 뿐이다. 목숨이 붙어 있고, 아침 저녁으로 먹을 밥이 있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대는 진정 행복한가? 아침 반찬으로 계란이 나오면 그것에 감사하고 행복해야 할까? 어떤 날에는 소고기 장조림이 먹고 싶을 때도 있다. 생일에는 스테이크라도 썰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 이들에게 ‘행복한 줄 모른다’는 비판이 옳아 보이진 않는다.

절대적 가난을 겪는 사람에게는 어떨까. 집에 당장 만 원이 없어서 참고서를 사지 못 하는 학생이 있다고 해 보자. 그 아이에게는 어떤 말로 행복을 강요할 수 있을까. 만 원은 없어도 오천 원은 있지 않냐고 위로하면 될까? 소년 가장의 짐을 맡고 있는 아이에게, 그래도 동생이 있으니 행복하지 않냐고 물을 수 있을까? ‘소확행’은 불행한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행복은 여전히 잘난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고 만다. 자신의 불행을 내놓으면 감사할 줄 모른다는 핀잔을 들을 뿐이다.

행복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 있다 보니, 행복하지 않은 자신이 이상해 보인다. 남들과 달리 본인이 너무 못나 보인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요소는 눈꼽 만큼도 없다. 그러다 보니 소소한 것에서라도 행복을 찾으려 한다. 나는 감히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억지로 행복한 척 하지 않아도 된다. 본인이 행복한 이유를 짜내지 않아도 된다. 불행한 건 그냥 불행한 것이다. 행복을 짜낸다고 해서 행복해진다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원망하기를 권한다. 나는 왜 행복하지 못한 거냐며 마음껏 원망하라. 불행한 삶 가운데 행복을 찾는 것만큼 초라한 일이 또 있을까. 지금 본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굳이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행복할 수도, 행복할 필요도 없다. 그저 오늘을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오늘 하루가 불만족스러웠다면 마음껏 불평하자. 내일은 어떻게 하면 오늘과 같지 않을지 고민하자. 그저 불평쟁이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감사할 건 감사하고 불평할 건 불평하자는 얘기다. 지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다 보면, 오늘의 불평이 내일의 행복이 될지도 모른다.

이전 07화 넌 특별하지 않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