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다닐 때, 낮밤이 바뀌었다.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핸드폰을 하다 보면, 새벽 두세시는 넘어야 잠에 들곤 했다. 원래 잠이 많아서 방학 때는 12시간 넘게 자기도 했는데, 오후 한 시에 깨는 건 기본이었다. 수면 패턴이 깨지면서 몸이 심하게 망가졌다. 종종 밤을 새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오전에 약속이 있는데 새벽 다섯 시까지 잠이 오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 때문에 더욱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때 처음으로 유튜브에 잠 오는 법에 대해 검색해봤으며, 수면명상을 알게 되었다.
수면명상은 잠을 자기 위한 명상이었다. 사람은 편안한 상황에 놓이면 쉽게 잠에 든다. 명상은 심신을 이완시켜주기 때문에, 수면용으로 제격이었다. 아예 수면 전용 명상 채널을 운영하는 분도 계셨다. 명상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숨을 의식하게 한다. 우리 모두 숨을 쉬지만, 숨을 의식하고 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모두 무의식적으로 숨을 쉰다. 달리 말해, 우리는 우리의 숨에 관심이 없다. 숨을 쉬어야만 살 수 있는데, 우리는 숨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나 역시 명상을 통해 처음으로 숨을 의식했다. 들숨과 날숨을 통해 코를 지나다니는 바람을 느끼고, 복부에 바람이 차오르는 것을 인식했다. 그 사실에만 집중했을 뿐인데 몸이 편안해졌다. 명상을 통해 손과 가슴의 느낌을 집중하고 피의 흐름을 상상하면 속에 있는 화도 없앨 수 있었다. 명상 덕분에 불면증 해소는 물론, 평소 가지고 있던 스트레스도 해소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명상과 함께 하며, 쉴 때도 명상을 한다. 들숨 날숨에만 집중했을 뿐인데, 머리가 맑아지고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린다.
명상은 나에게 관심을 주는 행동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 오히려 외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성적, 외모, 연봉 등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에 관심이 더 많다. 당장 자기계발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더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본인의 존재 자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본인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데, 어느 누가 관심을 가질까? 나조차도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고, 내 본질은 신경 쓰지 않는데, 다른 이에게 날 사랑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외딴 섬에 고립시킨다.
명상을 하면서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숨을 쉴 때 몸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가? 앉아 있을 때는 어깨가 들썩인다. 가슴이 살짝 들리며, 배에 공기가 차오른다. 코로 공기가 들어갈 때는 살짝 차갑고, 뱉을 때는 조금 따뜻하다. 내 몸인데도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심이 없었다. 걸을 때 발에는 어떤 감각이 드는지, 팔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몰랐다. 주위에 무엇이 보이고 들리는지에도 당연히 관심이 없었다. 당장 바쁘게 어딘가를 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명상은 스스로에게 관심을 주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럼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왜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 이완이 되는 걸까? 숨쉬기에만 집중했을 뿐인데 왜 머리가 맑아질까? 관심이란 그런 것이다. 어머니의 관심을 받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자. 어머니는 내 작은 행동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에게 쉽게 어리광부린다. 어머니 앞에서는 속마음도 쉽게 터놓으며, 쉽게 울기도 하며 금방 잠에 들기도 한다. 이 사람이 내게 무한한 관심을 주기 때문이다.
그 관심을 본인이 자신에게 줄 뿐이다. 누가 날 사랑스러운 눈으로 본다고 생각해보자. 그 상황은 얼마나 편안할까? 사랑하는 사람의 품 안에서는 누구든지 편안하게 잠들지 않는가? 결국 명상에서 중요한 건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세다. 꼭 명상이라는 형태를 띄우지 않아도 된다. 타자를 칠 때 손의 움직임, 숨을 쉴 때 몸의 떨림, 자신의 작은 변화에 관심을 가지자. 더 나아가 스스로를 사랑하자. 예쁘다고 칭찬도 해주고 하루의 위로도 해 보자. 참으로 각박한 세상이지 않은가. 스스로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데, 어느 누구에게 그대를 사랑해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