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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장수 Apr 06. 2020

운동의 이유

내 몸의 감가상각

아는 동생 찰스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고 싶다고 했다. 장사할 거냐고 물었더니 , 본인이 커피가 당길 때마다 마음껏 마시기 위해서란다. 순진한 찰스에게 경제관념을 심어주기 위해 삐죽 대며 말했다.


"에스프레소 머신 한 대 사려면 한 오백만 원은 들걸?"


찰스의 당황한 눈빛을 기대했지만, 별로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어차피 찰스는 희망사항을 이야기했을 뿐, 기계를 실제로 사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찰스는 무덤덤하게 내 말을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비록 에스프레소 머신 한대 가격이 오백만 원이라면 비싸긴 하지만, 별다방에서 하루에 두 잔씩 커피를 마신다면 만원씩 매일 지불하는 셈이니,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해 2년 이상 직접 내려마신다면 더 싸게 먹힌다고 했다.


나도 질세라 커피 한잔을 만들기 위해서 소모하는 노동력, 전기세, 원두 비용, 기계의 감가상각비, 커피 기계를 주기적으로 씻고 닦아줘야 하는 관리비용 등의 직간접비에 대해서 설명했다. 게다가 커피 원두를 구입하게 되면 일주일 안에 소진을 해야 하는데 , 혼자서 쓰기엔 원두 양이 많아서 분명 원두가 남게 되고, 이렇게 남은 오래된 원두는 품질이 낮은 커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했다. 또 나중에는 고철 덩어리로 변한 에스프레소 머신을 보면서 결국 땅을 치고 눈물 흘리며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찰스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커피 원두를 사면 주변에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재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그라인더에서 커피를 분쇄하고 포터 필터에 커피가루가 소박히 담길 때 고소한 커피 향으로 온 방을 향기롭게 채울  수 있고,  친구들이 왔을 때 언제든지 대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고 했다. 에스프레소 기계를 관리하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다고 했다. 더욱이 관리를 훌륭히 잘해서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사용을 하고, 대대손손 영구히 물려줄 것이라고 했다.


찰스는 살짝 웃는 표정을 하고 순진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형은 왜 담배 펴요? 감가상각이 더 급격하게 될 텐데."


예전 누가 담배를 끊으라고 하면, 담배는 커피와 같은 기호 식품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금기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면 정신이 멍해지면서 스트레스가 순간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 여태껏 끊지 못했다. 몸이 경제학적 개념인 자산이라는 생각은 그다지 해보지 않았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수명이 다한 뒤 고철 비용이라는 잔존가치라도 남지만, 사람은 생명이 다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담배를 피우면서 명을 재촉한다면 매년 감가상각 되는 비용은 훨씬 커질 것이다. 결국 매년 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었다. 찰스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감가상각을 걱정하기보다 본인 건강을 걱정을 먼저 하라는 듯 배시시 웃어 보였다.


실제로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은 유형자산으로 분류가 되고, 경제적 내용연수를 고려하여 매년 감가상각 되고 있다.


지난번 찰스는 작년에 헬스장을 일 년 치 끊어놓고, 한 달만 다녔다고 했다. 나는 돈지랄을 했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었다.  물론 찰스는 헬스장을 규칙적으로 꾸준히 다니진 않았지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작은 노력했다는 것 만으로 칭찬받아 마땅했다. 욕을 먹어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여태껏 건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운동 안 했던 과거를 반성했다.




담배는 일주일 전에 이미 끊었다. 그리고 나는 아침에 주문을 외운다.


"만약 오늘 운동을 한다면 천만 원을 번다."


일천만 원이라는 숫자는 운동을 통해 신체적 내용연수를 늘리고, 감가상각을 더디게 하여 보전되는 금액이다. 근거는 물론 없다. 운동을 마땅히 해야 하는 눈에 보이는 듯한 강력한 동기가 필요해서 내 마음대로 정한 액수이다. 그렇지만 나름 효과는 있다.


"그럼 천만 원 벌러 나가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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