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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침의 피아노>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일기

by winter flush
1.
아침의 피아노.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피아노에 응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틀렸다.
피아노는 사랑이다.
피아노에게 응답해야 하는 것, 그것도 사랑뿐이다.

아침의 피아노 中 011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아침의 피아노> 첫 페이지의 글이다.

책을 다시 꺼내 읽으며 강한 인상을 남겼던 첫 편을 다시 찬찬히 읽는다.

왼쪽 페이지엔 7월 이라고 적혀있다.

詩처럼, 짧은 단상들이 사유의 흐름대로 적힌 234편의 글이 남은 이들에게 위로로 다가올때가 있다.

철학자 김진영은 7월 어느날 암 선고를 받고 13개월의 짧은 투병 생활을 견디다 곁을 떠나셨다.

몸이 무너지는 순간 순간의 기록이 글이 되어 생의 순간들을 보증한다.

1편의 사유에 오래 머물게 되는 이유는 암 선고를 받은 직후 그 혼란과 충격의 압축된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의사의 말은 귀를 의심케 하는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마침표 같은 말.

그 밤.. 잠에 들 수 있었을까.

잠을 설친 새벽 희붐하게 밝아오는 아침은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싶은 生의 신비로 다가왔을지도, 혹은 야속함이 깃든 고통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생의 열기가 피어오르는 아침, 홀로 베란다에 나와 먼 곳을 바라보았을 그.

바라보는 그 너머 꽃이 피듯 피어나는 生의 기운 사이를 뚫고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속삭이듯 말을 거는 선율이 귀에 닿고 마음에 스며들자 작가는 문득 사랑을 떠올린다.

힘든 마음을 토닥이듯 바람결에 실려오는 건반위의 춤처럼.

순간 마음에 퍼지는 고마움을 어찌 답해야 할까하는 머뭇거림.

그러나 그 질문은 틀렸다고 말한다.

그저 사랑은 사랑으로 답할 뿐이라고.

베란다를 등지고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많지 않을 남은 시간들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

답을 찾고 데워진 가슴으로 하루를 시작했을 그의 첫 날이 또 누군가의 첫 날일지도..


주어진 하루의 기적을 잊고 살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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