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자유를 꿈꾸며..
시각,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지성 - 나는 내 연장들을 거둔다.
밤이 되었고, 하루의 일은 끝났다.
나는 두더지처럼 내 집으로, 땅으로 돌아간다.
지쳤거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날이 저물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프롤로그 첫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자서전은 조상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 그렇게 자신의 삶의 궤적을 따라 하나씩 정리하며 시작된다. 그는 이 자서전을 세상에 내놓고 얼마 안돼 죽음을 맞이했다. 곧 저물게 될 자신의 삶을 알아차리고 하나씩 살아온 인생을 더듬어가며 그는 내면의 시간과 주변의 시간을 정리해 나갔다. 그 마지막 길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미국의 경제학자인 스콧 니어링의 죽음이 떠오른다. 조화로운 삶을 위해 평생을 노력했고, 자신의 죽음 또한 자신이 거두는 자연스런 죽음으로의 길을 걸어간 사람. 살아있으면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결연한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메멘토 모리의 울림이 새겨진다.
평생을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과 고뇌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그 문제를 풀지 못했던 순수한 영혼. 크레타의 흙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유를 누렸으며, 그 흙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원했던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대상은 아버지였다. 평생을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빛 속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삶의 흔적을 그는 글을 통해 환생시켰으며, 글 만이 그의 삶을 비추는 환한 등대가 되어 주었다.
오랜 세월 방랑했던 그는 여행과 꿈이 그의 길동무가 되어 심연을 헤매는 그의 어두운 여정에 꺼지지 않는 희미한 불꽃으로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방랑의 혼은 그를 세계 이곳저곳으로 떠돌게 만들기도 했지만 자기 마음 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었던 한 사람을 끔찍이 동경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영원한 자유인 조르바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만난 이후 평생 그를 마음속에서 놓지 못했다. 인생의 길잡이로 한 사람을 꼽으라면 그는 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조르바를 택하겠단다. 거친 인생길에서 우연히 만난 투박한 사람 조르바.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말로 쏟아 내기 부족할 땐 온몸으로 표현할 줄 아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는 카잔차키스에게 삶의 새로운 길을 저어나갈 용기를 주었다. 생각한 대로 느끼는 대로 거침없이 말하고 표현하고 싶지만 스스로 이성의 틀을 깨고 비집고 새어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그저 글에 갇혀 지내는 그에게 조르바는 자유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 둘의 사랑 깊은 우정은 내 마음마저 따스하게 물들인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인간의 모습으로 만나 서로에게 큰 사랑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지만 이별의 시간 앞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검은 슬픔이 깊게 서린다.
스스로를 세계를 만지는 촉수가 다섯 개 달린 덧없는 동물이라고 표현한 카잔차키스는 일생동안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보고 느끼고 채우는 시간으로 여린 영혼을 단단하게 키워 나갔다. 자유에 대한 갈망은 익숙함이 주는 두려움에 머물지 못하도록 그를 낯선 곳으로 이리저리 옮겨 놓았는데,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나의 발길이 머문 곳은 일본이다. 그가 느끼는 일본에서 차의 향기가 진하게 퍼지니 내 발길은 자연스레 그곳에 머물게 되고 느리게 걷기 시작한다.
다도와 게이샤와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곳.
카잔차키스는 그곳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의 고대 그리스를 떠올렸다. 벚꽃 향기 가득한 교토의 좁은 밤거리를 그의 눈과 가슴이 닿는 시선을 따라 산책하듯 천천히 따라가다 보니 그의 감성에 저절로 물든다. 따각거리는 게다 소리의 울림과 길에서 마주치는 수줍은 미소의 마이코와 농익은 미소의 게이샤를 스치며 낯선 설레임을 느꼈을 그가 보이고, 신기루 같은 풍경의 황홀함에 서성거렸을 그의 두근거림마저 느껴졌다면 나의 짓궂은 상상이려나?
정원을 거닐며 그는 다도의 대가 리큐 선생을 떠올린다. 일본의 정원 중에서도 최고봉은 차 정원이다. 고립과 명상을 떠올리게 되는 차 정원을 지나 다실 안으로 들어서면 고요한 정적 속에서 규칙적으로 끓는 찻물의 속삭임이 들리고, 그 속삭임은 절대 고독을 향했으리라.
나는 정원으로 나갔다. 그 모든 침묵과 다도의 느린 리듬은 피 속에 고요함을 불러 넣었다. 불현듯 언젠가 정오에 미코노스 섬에 도착해 주변 언덕에서 풍차가 햇빛을 받으며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빛이 나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 기억났다. 그 순간 풍차의 느린 움직임이 내우 강렬하게 다가와 마의 피도 그것과 동일한 리듬으로 도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내 마음은 완전히 다도에 사로잡혀 버렸다.
-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 중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쉽게 이해되지 않아 오히려 슬픔이 느껴진다고 했던 차와 정원을 통해 본 다도 정신. 다도를 경험하며 그의 마음에 일었던 느린 고요함이 어떤 것인지, 신비로움 속에 퍼지는 평안함이 어떤 것인지 그의 글은 오롯이 전해준다. 그는 살아가면서 이 순간을 떠올리며 리큐 선생의 와비 다도의 정신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이해되지 않는 슬픔에서 천천히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의 눈에 비친 신비로운 관능의 나라 일본을 그의 시선과 감성으로 함께 따라 걸으니 다도는 내게 또 다른 색으로 번져 방황 속에서 헤매는 그의 사유의 길에 나란히 함께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