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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22. 2023

낭만에 대하여

_에필로그


“가난 속에는 어떤 고독이 있다.” 

카뮈가 썼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고독이다. … 그것은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인 것이다.”

아, 이 말이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은 하나가 채워지는 기쁨을, 고마움을 안다. 그걸 아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크나큰 부이다. 그는 부자가 된다. 그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풍요다. 그러니 얼마나 낭만적인 순간인가. 

찌들어 짓눌리는 가난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부유해지더라도 가난한 시절을 잊지 않기를 청한다. 비어 있던, 결핍의 나날을 기억할 수 있기를 청한다. 


님에서 만난 아우구스투스의 생에 낭만이 있었을까? 모든 것이 가능했을 그의 삶에 낭만은 있었을까? 그를 생각하면 꽃잎 지는 봄날이 스친다. 꽃향기 감미로운 어느 날이 스친다.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낭만이 없다면! 


모든 것이 부족한 생에는 갈망이, 목마름이, 그리움이, 동경이,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다. 그 한없는 갈망의 사막, 에레모스에 한 송이 꽃이 피면 세계가 순식간에 환해진다. 모든 없음 속에서는 아주 작은 변화로도 역동적인 힘이 태어난다. 순례는 어떤 결핍 속에서, 텅 빈 바닥에 빛이 스며드는 걸 목격하는 순간이다. 그 빛 덕분에 오래된, 잊었던 상처가 되살아나고, 그 빛으로 한 땀 한 땀 상처가 아물기도 한다.    

  

빛이 강한 만큼 그림자도 큰 프랑스에서 상처와 영광을 본다. 찬란했던 과거와 심상한 현재 사이의 기억들을 걸었다. 그리운 무엇에 대한 충족도 있었고 새삼 얹혀지는 슬픔도 보았다.    

  

프랑스는, 사진을 찍는 이는 브레송을 찾아오고, 건축하는 이는 르코르뷔지에를 찾아오고 화가는 고흐를, 세잔을 찾아온다. 목적이 있는 이들이다. 내 경우야말로 무목적이다. 그래서 참 산만한 욕구들이 끝이 없다. 굳이 뭔가 목적이라거나 ‘주제’ 같은 걸 찾자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순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보니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가고 싶은 곳이 한없다. 큰일이다. 그렇게 발길 가는 대로, 우연한 상황에서 떠났던 프랑스의 가을 풍경.      


우연히, 정말 아주 우연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출발하는 프랑스의 네 도시를 가게 되었다. 파리와 베즐레, 르퓌와 아를. 수백 년 전에 옛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걸은 셈이다. 


가을 프랑스, 프로방스에는 루오의 그림 제목처럼 ‘성서적 풍경’이라거나 ‘때로는 여정이 아름답기도 하다’라는 표현들이 배어 있었다. 그 자체가 시구이고 그 자체가 어떤 자극이자 감동인 루오의 그림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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