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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22. 2023

수탉은 구했답니다

_센 강


가을 저녁. 낮이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다. 바토무슈를 타고 센 강을 지날 때 이미 어둠이 밀려왔다. 시테 섬 쪽으로 들어서서 퐁네프로 향했다. 앙리4세 기마상을 지나며 불타버린 노트르담 성당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도 경건함과 슬픔, 애도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순간, 사람들이 예를 갖추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잠시지만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성당이었다. 노트르담 성당에 가기 전에 내가 충격을 받았던 건 프랑스 혁명 당시 사람들이 성당을 유린했던 일이다. 혁명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었던 마리안, 자유의 신이 성모상 대신 성당에 세워지고 심지어 분장한 배우가 제대에 좌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왜 충격이었을까. 차라리 파괴하는 것보다 더 모욕적이었다. 그들의 행위는 조롱이고 침을 뱉는 것이었다. 그들의 양심에서 벌어지는 온당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그보다 불순한 의도와 욕망이 보여서 좀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것이 혁명의 와중에 프랑스 사람들이 '이성'의 힘으로 한 일이었다.   



...그런 참담함을 겪었던 성당은 좀 지쳐보였다. 그렇다고 파리의 신심이 옛 신앙을 되찾을 것도 아니므로 이 성당이 마치 추억만 간직한 은발의 노인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아름다움, 사라진 것들을 되뇌며 깊이 나이 들고 있는 것처럼 좀 쓸쓸했다. 뭔가 불안정했고 어색했다. 현대와 오랜 옛날이 융화되지 않은 채 나열되어 있었다. 뭔가 강요당하는 기분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불편했다. 어쩌면 시간이 너무 없었던 게 불편함의 진짜 이유, 진짜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어울리지 않음조차 찬찬히 바라보면 질서 속에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질서를 미처 알지 못한 채 떠나와야 했으므로 그렇게 마음 열지 못했을지도.


그런 기억들로 인해 여전히 낯설고 좀 우울하고 슬퍼보이는 노트르담이었다. 그런데 그 성당이 불에 타고 있는 걸 실시간으로 보아야 했다. 성당이 불에 타고 있을 때 프랑스 사람들은 길 가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장면이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가톨릭교회의 모든 것을 내팽개친 것 같았던 사람들인데 그들은 시시각각 상심했다. 보는 사람마저 마음이 덩달아 아팠다. 말하자면 노트르담 성당은 그들의 뿌리, 상징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프랑스의 역사 저 깊은 곳에 닿는 시간의 뿌리가 거기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행이었다. 전소된 줄 알았는데 불길을 잡았다. 그리고 또 천만다행으로, '믿거나말거나' 예수의 가시면류관은 무사하다고 하고, 첨탑 주변에 있던 16개의 조각상이 며칠 전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져서 화마를 피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며칠 후 화재의 잔해에서 ‘수탉’을 구해 가슴에 꼭 껴안고 오는 사진을 봤다. 무너져버린 첨탑 꼭대기에 있던 '수탉'이었다. “수탉을 구했다”고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조금 뭉클해졌다. 이 청동 수탉상 안에는 생 드니와 주느비에브의 성유골도 들어있다고 한다. 이 풍향계가 어떤 정신적인 상징이 되기를 바라면서 당시 파리 대주교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많은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는 다시 언젠가 노트르담 대성당 어느 탑에 세워진 수탉 풍향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수탉이 프랑스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가 된 건 앙리4세 때문이기도 했다. 1598년 낭트 칙령을 공포하며  30년이나 이어지고 있던 위그노전쟁을 끝내고, 어떻게든 가톨릭 세력과 위그노가 공존하는 프랑스를 만들려고 애쓴 왕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왕국의 모든 국민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닭고기를 먹게 하겠다.’며 오랜 전쟁으로 지친 백성들의 마음을 보듬었다. 태어났을 때는 가톨릭, 청소년기에는 위그노, 또 다시 가톨릭과 위그노를 오가야 했던 그는 우여곡절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의 좋은 왕이 되려고 했지만 결국은 1610년 광신적인 가톨릭 신자에게 암살을 당하고 말았다.    


    



어둑해지는 센 강에 프랑스의 역사가 흐른다. 성전기사단장 자크 드 몰레의 단말마도 들린다. 700년 전 봄, 필리프4세는 기어이 성전기사단을 손에 쥐기 위해 그들을 절멸시켰다. 악마숭배와 남색 등의 죄목을 덮어씌워 그들을 화형했다. 앙리4세 기마상이 세워진 자리는 성전기사단의 최후가 불타던 곳이기도 했다. 여기서 기사단장 자크 드 몰레가 불에 타 죽으며 필리프4세와 교황 클레멘스5세의 죽음을 예고했다. 화형장이 있었던 작은 섬은 퐁네프를 건설하며 매립돼 시테섬의 일부가 되었다. 바로 앙리4세 기마상이 서 있는 자리쯤이라고 한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알렉상드르3세 다리와 콩코드 다리와 알마 다리를 지난다. 그 다리들과 함께 러시아와 바스티유 감옥과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도 흐른다. 투르넬 다리를 지날 때 좀 기묘한 조형물로 서 있는 파리의 주보성녀 주느비에브를 만난다. 그는 오늘도 그 옛날 온갖 위기에서 파리를 보듬고 지킨 것처럼 센 강을 굽어보고 서 있다. 그것은 파리라는 도시의 뿌리, 시작, 태동 지점이다. 바토무슈를 타고 파리의 시원을 생각해보게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센 강을 바라보는 건 낭만인 동시에 서사다. 파리의 이야기가 서사로 펼쳐진다.   

   



그때 “수탉은 구했답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수탉을 꺼내 껴안고 오는 사진이 무척 비장해 보였다. 그 순간, “관용은 구했답니다. 선의는 구했답니다. 애정은 구했답니다.” 그런 말의 다른 표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구한 게, 정말 구해야 할 것들을 온전히 구해내면 좋겠다는 기원을 했다. 혹 그들이 잃어버린 게 있다면, 안타깝게도 잃고 살아온 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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