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의 시간을 축복하다
거대한 미나레트를 거느린 콘스탄티노플의 아야소피아와는 달리 노브고로드 크렘린에 있는 소피아성당은 순백의 천사처럼 지상에 내려앉았다. 하느님의 거룩한 지혜[Σoφíα]가 이 땅에는 자작나무 수피처럼 하얗게 백색 의상을 드리우고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 하얀 줄기 위로 쿠폴들이 하늘을 향해 촛불처럼 타올랐다.
촛불 자체는 러시아의 정신에 흐르는 희생과 죽은 이를 기억하는 표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 둘, 셋, 넷……, 천상을 향하는 촛불인 쿠폴은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네 복음사가를 의미하는 소피아 성당의 다섯 개 돔 가운데 하나는 천상의 초월적 아름다움을 표상하는 황금빛으로 더욱 빛났다.
몇 명의 처녀가 옹기종기 제대 앞에 모여 있었다. 두 개의 크라운이 준비된 본당에서 황금빛 제의를 입은 사제들이 분주했다. 저만치 뒤에 예복을 입은 신랑신부가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결혼식이 거행될 모양이었다.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성스러운 예식을 치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드디어 청아하고 정결한 목소리들이 시공에 울려 스몄다. 그들은 전례복을 입지도 않고 따로 성가대석을 차지하지도 않았다. 종묘에서 거행되는 제례의 빈틈없는 진행보다 그 엄숙함이 덜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성한 약속이 엄중하게 느껴졌다. 너무도 단출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의미에 집중되는 예식이었다.
곱디고운 신부와 앳된 신랑이 사제 앞에 서서 긴 초에 불을 밝히니 빛이, 조상들도 깃들어 살았을 빛이 새 신랑 신부의 얼굴에 거룩한 설렘으로 깃든다. 그 순간을 지켜보는 거룩한 행운을 누렸다. 천 년의 전례는 아직 채 드러나지 않은 신비의 어둠 속에 계속되었다.
이토록 간결하게 이토록 집중할 수 있다니. 사제의 힘찬 목소리가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젊은이들을 축복의 길로 이끌었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 성당에서, 아름답고도 기쁜 전례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해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리고 나오니 또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내 굵게 쏟아지는 비에 나무 아래 새처럼 깃들어 비를 피했다.
종소리가 꽃처럼 쏟아지고 빗방울이 꽃송이처럼 마음에 아롱지는 시간이었다. 슬픔이 번지다가도 영혼으로 스미는 종소리에 어쩔 수 없이 가슴 가득 위로로 가득해진 시간. 노브고로드의 한순간은 참 좋았다. 또 다시 그리워하며 기억하게 될 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