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성당

신생의 시간을 축복하다

by 이아인

거대한 미나레트를 거느린 콘스탄티노플의 아야소피아와는 달리 노브고로드 크렘린에 있는 소피아성당은 순백의 천사처럼 지상에 내려앉았다. 하느님의 거룩한 지혜[Σoφíα]가 이 땅에는 자작나무 수피처럼 하얗게 백색 의상을 드리우고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 하얀 줄기 위로 쿠폴들이 하늘을 향해 촛불처럼 타올랐다.



IMG_8675.JPG



촛불 자체는 러시아의 정신에 흐르는 희생과 죽은 이를 기억하는 표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 둘, 셋, 넷……, 천상을 향하는 촛불인 쿠폴은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네 복음사가를 의미하는 소피아 성당의 다섯 개 돔 가운데 하나는 천상의 초월적 아름다움을 표상하는 황금빛으로 더욱 빛났다.



IMG_8677.JPG






몇 명의 처녀가 옹기종기 제대 앞에 모여 있었다. 두 개의 크라운이 준비된 본당에서 황금빛 제의를 입은 사제들이 분주했다. 저만치 뒤에 예복을 입은 신랑신부가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결혼식이 거행될 모양이었다.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성스러운 예식을 치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IMG_8692.JPG



IMG_8729.JPG



드디어 청아하고 정결한 목소리들이 시공에 울려 스몄다. 그들은 전례복을 입지도 않고 따로 성가대석을 차지하지도 않았다. 종묘에서 거행되는 제례의 빈틈없는 진행보다 그 엄숙함이 덜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성한 약속이 엄중하게 느껴졌다. 너무도 단출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의미에 집중되는 예식이었다.



IMG_8711.JPG


IMG_8727.JPG



곱디고운 신부와 앳된 신랑이 사제 앞에 서서 긴 초에 불을 밝히니 빛이, 조상들도 깃들어 살았을 빛이 새 신랑 신부의 얼굴에 거룩한 설렘으로 깃든다. 그 순간을 지켜보는 거룩한 행운을 누렸다. 천 년의 전례는 아직 채 드러나지 않은 신비의 어둠 속에 계속되었다.



IMG_8718.JPG


IMG_8716.JPG


IMG_8731.JPG



이토록 간결하게 이토록 집중할 수 있다니. 사제의 힘찬 목소리가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젊은이들을 축복의 길로 이끌었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 성당에서, 아름답고도 기쁜 전례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해 조금 아쉽기는 했다.



IMG_8734.JPG



그리고 나오니 또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내 굵게 쏟아지는 비에 나무 아래 새처럼 깃들어 비를 피했다.

종소리가 꽃처럼 쏟아지고 빗방울이 꽃송이처럼 마음에 아롱지는 시간이었다. 슬픔이 번지다가도 영혼으로 스미는 종소리에 어쩔 수 없이 가슴 가득 위로로 가득해진 시간. 노브고로드의 한순간은 참 좋았다. 또 다시 그리워하며 기억하게 될 순간이 되었다.



IMG_8766.JPG


keyword
이전 19화노브고로드 크렘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