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고로드 공국의 자취
다시 갈 수 있을까? 멀고도 먼 곳이었다. 시공이 모두 멀고멀었다. 설렜던 것 같다, 이 도시에 대해.
이미 유리에프수도원에서 그들의 정수를 어렴풋이 느꼈으나 현실에 존재하던 러시아의 근원, 키예프보다 앞서 루시의 터가 되어준 노브고로드 그 오랜 역사의 서사는 크렘린에 있었다. 정문의 철제 문에 859라는 숫자가 붙어 있었다. 오늘날 러시아가 뿌리를 내린 해였다.
이곳에서 러시아가 싹을 틔웠지만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고 법전을 만들며 국가의 기반을 닦은 것이 키예프 공국 때여서 일반적으로는 키예프를 ‘러시아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천년기념탑이 명료한 기록물로 서 있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성 안이었다.
이미 9세기경부터 베체라는 멋진 체제로 공동체가 운영되던 노브고로드였다. 민회 앞에 있던 종을 울리면 누구나 회의를 소집할 수 있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민회에서 제기되고 그들은 때로 싸우는 것처럼 큰소리를 내며 논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도시가, 1478년 이반 뇌제의 모스크바 공국에 복속되면서 쇠락해졌다. 그 종잡을 수 없었던 차르는 ‘노브고로드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종을 들고 가버렸다.
심장을 잃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에 새로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부상하면서 모든 교역 장소가 이동하다보니 오늘날 노브고로드는 화양연화를 간직한 고귀한 왕녀 같은 분위기로 존재한다. 아주 잠시, 겨우 몇 시간 머물렀으면서 도시를 평하는 건 정말 적절한 일이 아니지만 종종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하던 그 도시가 무척 품위 있어 보였다는 얘길 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