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에프 수도원의 종소리

Ring the bells that still can ring...

by 이아인

무량한 하늘 아래 오래된 수도원을 서성일 때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우리에게. 어쩌면 좋아. 꽃망울처럼 쏟아진 유리에프 수도원의 종소리가 내 안으로 들어와 활짝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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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토록 떨리는 종소리를 들었을 때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전해진 소식이 떠올랐다. 박살나버린 하나의 종이 떠올랐다. 노브고로드에서 그의 생을 위해 자비를 청했다. 말을 참 잘 다뤘던 사람, 기가 막힌 구사로 때로 웃고 때로 울게도 하던 사람 노회찬이 떠났다고 했다. 아무래도 또, 현실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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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고백의 순간에 찾아온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그러셨던가요. 그래요, 흔들려서 부서지고 깨진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고 했지요. 아, 레너드 코언의 찬가(Anthem) 말이에요. 하느님, 당신을 향한 찬가는 부서지고 낮추인 영혼들의 고백이라지요. 깨진 영혼의 탄식. 상처입은 자의 한탄과 회한. 그러나 바로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고 앞서간 이들이 조언을 해요.


부서진 조각들을 다시 붙일 수 없다, 다시 합칠 수 없다. 완벽한 것은 없다. 어디에든 틈은 있기 마련, 빛은 그곳으로 들어온다. "……Forget your perfect offering 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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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는 순간일까요, 빛이 찾아드는 건. 어쩌면, 어리석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딱 거기 세워져 있는 거지요. 바보야, 너 왜 그래? 대체 뭘 찾고 있어? 이 사람아, 왜 스스로 네 존재를 폄하하지? 신을,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내가 너무나 보잘것없다고, 사랑받을 만하지 않다고 말했을 때, 그래요. 들었지요. 목소리가 말했어요. 네 생명의 주인이 누구냐? 정말 너 자신인가? ....그리하여 그토록 집요하게 생으로부터 도망치던 자의 부서진 틈으로도 사랑이 찾아올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지요. 도망자처럼 달아나던 모든 가슴마다 모든 마음속에 사랑이 찾아올 거라고요.


코언의 <앤섬>은 신께 바치는 찬가가 아니다. 오히려 부서진 영혼에게 신이 보내는 고통 이후의 사용설명서다. 상처나 죄의식, 절망에 대처하는 처방전이다. 다른 거 없다. 소리나게 하라. 완벽한 것은 없다. 모든 종을 울려라. 너 자신, 울음이 터지는 존재여, 너 자신을 송두리째 흔들어 소리를 내라. 있는 그대로 깨진 그대로 부서진 그대로.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부서진 것은 다시 합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서진 건 죄가 아니다. 잘못도 아니다. 우리 죄는 상처에 지는 것뿐.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뿐. 구원을 갈망하며 한걸음이라도 떼는 이에게는 모든 여정이 빛을 암시하는 은총의 사다리이다. 완벽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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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흔아홉 개의 결함을 갖고 있다. 때로 당신은 단 하나의 결함뿐인데도 못 견뎌한다. 그냥 우리, 있는 그대로 슬픈 그대로, 어떤 가능성을 믿고 가자. 그대 영혼이 울리는 종소리와 우리의 종소리는 슬픈 존재들의 흔들림이다. 그러나 구원의 가능성으로 가득한 바람의 노래다. 서로를 알아보는 상처들, 눈물방울들이 새벽이슬처럼 톡톡 반짝이며 쏟아진다. 종소리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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