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에프 수도원을 가다
‘게오르기오스, 제오르지오, 조지’가 루스 땅에서는 유리에프가 되었다. 게오르기오스라는 세례명을 얻은 왕자가 이 수도원을 지었다고 한다. 영국과 포르투갈,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특히 베네치아와 페라라의 수호성인인 게오르기오스는 동방교회에서도 '위대한 순교자'로 공경을 받는 성인이다. '용을 찔러 죽이는' 이 성인은 서유럽만이 아니라 발칸반도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는데, 러브스토리까지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안드로메다를 구한 페르세우스 같은 주인공이었다.
수도원을 들어서서 구세주성당으로 향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있는 성당들은 처연했다. 이 땅에 살았던 수도승들의 삶을 보는 듯 처연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루블료프>를 보는 심정이었다.
그들은 빛나는 구원의 길에 서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눈부신 타보르 산의 변모를 꿈꾸고, 바로 그곳에 함께 있었던 세 사도처럼 온전한 빛 속에 머물기를, 그 빛을 얻어 신화를 꿈꾸었으리라.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의 수난 너머 부활을 갈망하므로 현세의 그 무엇도 자신들의 영원한 행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갈고 닦았으리라.
이런 유추가 얼마나 힘이 없는지를 알면서도 굳이 생각에 빠졌다. 어쩌면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는 나름의 축복이었다. 좀 슬퍼서, 그들이 너무 슬퍼서 그 길이 행복하기를, 제발 지상에서도 행복하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색하고 감상적이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도생활이, 신을 향해 스스로를 봉헌한 삶이 슬퍼보이는 건 참 당황스러운 노릇이었다. 늘 그랬다. 행복해보이지 않는 수도자를 보는 건 정말 속이 상하는 일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그럴 거면 다른 행복의 길을 찾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 거다. 서방이든 동방이든, 혹은 다른 종교의 수행자든 ‘눈물의 골짜기’를 걸어가는 공동의 순례자로서의 슬픔이고 염려였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행으로서의 기원이었다.
전례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황금빛 문양이 아름다운 초록 제의를 입은 사제가 아름다운 문과 지성소를 오갔다. 2017년 1월, 러시아 사람들의 성탄 때는 푸틴이 이 성당에서 전례에 참례했다고 한다. 의자가 없는 정교회 예식 동안 이제 이 나이든 권력자는 소녀들과 여성들과 다른 남성 신자들과 함께 서서 성탄을 축하했다.
구세주성당의 뒷모습 자체가 묵상으로 이끌었다. 아무 장식이 없는 벽과 몇 개의 단조로운 창들. 소박하지만 장엄한 몇 개의 쿠폴과 그 ‘대지의 촛불’ 위에 우뚝 선 황금빛 러시아정교회 십자가!
한 사내가 수도원 입구를 마주보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새하얀 수도원과는 영 어울리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완벽한 흑백의 실루엣이기도 했다. 게다가 구원의 수도원과 인생의 뒤안길에서 속죄하는 캐릭터스러운 그가 완벽하게 상반된 뉘앙스로 성속의 경계에 선 순간의 절체절명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처음에 그가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정말 뜬금없이 어울리지 않는 조각상인가 생각했다. 아, 그를 찍었어야 했는데, 차마 카메라를 들이밀기에는 그가 너무나 슬퍼보였다. 그가 어떤 대상이 된다고 느낄까봐 애써 시선도 주지 못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도스토예프스키 수사’가 앉아 있었던가. 바로 그 검은 옷의 음울한 얼굴을 한 도스토예프스키 수사가 저 새하얀 길로 걸어 들어갔다. 한 마리 검은 개도 있었던가.
그가 유리에프 성당의 문을 열어주려고 우리의 앞을 걸어갔다. 그는 성당 문을 열어주고는 길고도 창백한 초를 꽂아 불을 켰다. 익랑의 촛대에도 중앙의 촛대에도. 그는 산 이와 죽은 이를 기억하며 촛불을 켜는 듯 했다. 바로 이곳에 그들의 신성한 옛 사람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매장되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그 자신도 기억해야 할 이들을 기억하며 창백한 초에 불을 켰다.
창백한 초가 불을 밝히자 성당의 어둠이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들어앉아 있던 어둠이 금세 사라질 리는 없었으나 정말 오랫동안 오래된 수도원 성당을 응시하고 있었을 프레스코들은 멀리서도 온 순례자들에게 스스로를 드러내주었다. 그러나 이 벽화들은 많은 경우 1902년에 새로 칠한 것이다.
1917년 혁명은 수도원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십 년 후에는 이 수도원의 여섯 개 성당 중 다섯 개가 파괴되었다. 아예 폐쇄되기도 했던 수도원은 1991년 다시 러시아정교회 수도원으로 기능을 회복하고 있다.
일멘 호수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한 여자가 문 앞에 서성였다. 그 문으로 나가봤어도 좋았을 걸 바삐 좇아다니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