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도스토예프스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장 잘 드러내는 네프스키 대로의 한쪽 끝에는 네프스키수도원이 있다. 물론 이 또한 표트르 대제의 섬세한 계획의 일부였다. 1240년 ‘네바강 전투’에서 스웨덴군을 격파해 ‘네바강의 알렉산드르’라는 뜻의 이름을 얻게 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영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깊이 각인된 영웅이자 성자다.
1723년 표트르 대제는 새로운 도시의 영적 구심점으로 삼고자 그때까지 블라디미르에 있던 네프스키 성인의 유해를 모셔왔다. 대제 자신은 별로 종교적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사람들의 삶에서 종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과하지는 않은 것 같다. 심지어 그는 신성종무원을 설치해 러시아정교회를 국가의 한 기관으로 귀속시켜 버렸다. 타협의 여지없이 통치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그런 그가 사람들의 종교적 심성에 대해서는 무척 유화적이었다. 당시로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였을 구교도에 대해서도 대제의 자세는 관용적이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종교를 믿도록 내버려 두라. 정당한 이성으로 그들이 신봉하는 미신을 막을 수 없다면 불이나 칼로도 그들의 미신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을 박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차라리 국가에 쓸모가 있도록 잘 인도하라.”
실제로 그 후 네프스키 수도원은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세르기예프 수도원과 더불어 러시아 사람들에게 영적 쉼터가 되어 왔다.
도심의 번잡을 살짝 비켜난 이 수도원 입구에 내로라하는 별들이 잠든 두 묘지가 있는데, 입구 오른쪽에 있는 타흐빈 묘지에 도스토예프스키를 위시한 뭇 작가와 음악가 등이 잠들어 있다. 루블료프의 <삼위일체>가 진한 색감으로 그려진 입구를 지나 찾아든 묘지에는 푸른 정적이 감돌았다. 크지 않은 묘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도스토예프스키의 묘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이미 한 무리의 여행자가 한참을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묘지 입구에서 곧장 들어가는 오솔길이었다.
문득 크레타 성곽에 홀로 잠들어 있는 니코스 카잔자키스가 떠올랐다. 에게해 햇살이 막 기지개를 켜던 그 새벽, 보잇한 어둠 속에서 보았던 나무 십자가의 실루엣. 홀로 자유로이 운명을 탐닉하던 뜨거운 사람. 도스토예프스키가 죽고 나서 태어난 카잔자키스였지만 그는 이 우울한 작가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그의 《러시아기행》에는 도스토예프스키가 함께했다.
“광신적인 범슬라브주의자였던 도스토예프스키는 하나의 러시아인, 또는 그가 의미 부여한 대로라면 하나의 인간으로 남고 싶어 한다…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러시아가 세계를 구하기 위해 <위에서부터> 운명 지어졌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가 본 유럽은 하나의 묘지, 힘 있는 영혼들이 모두 죽어 버리고 영혼이 없는 껍데기들, 실리적이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식료품상들’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부활의 첫 울음이 터져 나올 곳은 바로 러시아이다.”
분명히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를 사랑하고 러시아인을 사랑했다. 너무나 슬픈 그들의 현실 속에서 구원을 꿈꾸었다. 그 현실이 곧 자신의 불합리한 삶, 잠시도 안정을 구하지 못한 채 하루 벌어 하루 쓰고, 미리 받은 원고료를 도박으로 잃어버리고는 밤낮으로 글을 써야 하던 자신의 어이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초라하고 멸시받는 반미치광이들로서, 이들은 단지 용기만이 아니라 열정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고통을 살아간다. 인간의 의무이자 동시에 인간의 행복이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것, 인류의 고통을 느끼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 이런 사랑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에게 육감―다른 이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 고통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자신을 위로할 줄 아는 능력―을 준다. 그는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매달리기를 갈망하고, 세상의 모든 죄악을 자신이 떠맡아 인류를 구하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모두 뜨거운 사랑을 갖고 있었다. 끊임없는 사랑을 갖고 있었다. 타고난 능력도 비범했지만 담금질도 멈추지 않았다. ‘영혼의 혼돈’이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가 뛰어들어 힘들게 헤쳐 나가는 정신적 시련의 도가니’라고 카잔자키스는 말했지만 정작 그 자신도 그렇지 않았던가. 죽는 날까지 타올랐던 사람들. 자신의 들끓는 불길로 타인과 세상에도 그 불을 나눠주었던 사람들의 뒷모습이 참 말끔하다.
묘지는 단정했다. 기획된 묘지답게 정갈했지만 한편으로는 세월의 층위가 느껴지지는 않아서 약간 단조롭다는 느낌도 들었다. 도대체 알아볼 수 없는 알파벳이어서 묘비명도 누구의 묘인지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에게해 바람 같은 카잔자키스의 묘비명 생각도 나고, 많이 회자되는 버나드 쇼의 연극 대사 같은 한마디도 스쳐갔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아, 죽음만이 아니다. 이 순간도, 순례의 이 순간도 우물쭈물하다 후회막심이 될 수도 있겠지. 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나서보자.